서울대 인문학 글쓰기 강의
이상원 지음 / 황소자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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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년 동안 교단에 서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설명을 하자니 생각처럼 전달이 제대로 안된다고 느낄 때였다. '이렇게 되는 거야'라고 설명하고 뒤돌아서면 모두 '무슨 말씀이시온지...'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아이들. 그때마다 고민에 잠긴다. '어디서부터 못 알아들은 걸까, 뭐부터 다시 설명해야 할까?' 아마 내가 경험한 학교가 일반 특성화고였기에 학력 수준이 높지 않아서 선수 학습이 많이 부족한 탓도 있을 것이고, 미숙한 내 경험 탓도 있을 것이다.

 나처럼 특성화고에서만 경력을 쌓은 사람들이 상위 내신성적 20% 내외의 학생들이 모여있는 마이스터고 가기를 두려워하는 경우가 있다. 그 이유가 아이들이 똑똑해서 질문한 걸 제대로 답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인데, 그 확장판이 명문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것 아닐까.

 가끔 대학 강단에 서서 내가 좋아하고 열심히 공부한 학문을 학생들에게 강의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아직 방향을 잡지 못해 방황하고 있지만, 그 상상만으로 가슴이 뛴다. 그런데 '서울대 인문학 글쓰기 강의'를 읽고 난 위 소위 SKY를 비롯한 명문 대학에서 강의를 진행한다면 어떤 느낌일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재미도 있겠지만, 엄청 긴장한 하루하루가 될 것 같다. 날카롭게 들어오는 질문들에 내가 잘 반응할 수 있을까, 실력이 금방 들통난다면...

 서론이 길었다. 이 책 '서울대 인문학 글쓰기 강의'는 서울대 수강 과목 중에 매년 가장 듣고 싶은 강의로 뽑히며 수강신청과 동시에 자리가 매진되어버리는 빡세고(?) 인기 있는 과목이라고 한다.

이상원 교수는 자신의 글쓰기 강의를 이렇게 표현했다.

"글쓰기 수업이니 모든 학생들이 글을 써야 한다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다만 우리의 글 놀이 판에서는 글의 내용과 형식이 자유롭다는 점, 쓴 글을 온라인 강의실에 올려 모두에게 공개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나를 소개하는 글은 은사님에게 보내는 편지가 될 수도, 나의 진짜 모습을 두고 다툼이 벌어지는 법정 기록이 될 수도, 나라는 존재의 사용설명서가 될 수도 있다. 감상 에세이와 주제 에세이에서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시도와 실험이 이루어진다."

 단언컨대 대학 4년 동안 강의 계획대로 100% 진행됐던 강의는 거의 없었을 뿐더러 그 강의라는 것이 그리 재미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여기에서 재미란 몰입도를 의미한다. 뭔가 계속 준비하고, 그 준비를 수업시간에 쏟아낼 수 있는 강의를 경험한 적이 없는 것이다. 수업을 재미있게 빡세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만 했을 분 교사로서 그런 수업을 만들지 못한 데에는 스스로가 겪은 경험의 없다는 것도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그에 반해 이상원 교수의 수업은 강의계획에 따라 아주 짜임새 있게 구성되고 학생들이 한 학기를 마치기 전까지 몰입이 떨어지지 않도록 이끌어간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적절히 활용하여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수업에 참여하고 만들어가는 멍석을 깔아준다는 점에서 배울 점이라 생각한다.

" 학생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가 쓴 글 외에 24편을 읽고 답글을 달아야 하고 또 자기 글에 달린 동료들의 답글 24개를 만나는 셈이다. 그리고 이 과정이 세 차례 반복되므로 학생 한 명이 한 학기 동안 읽고 답글을 달아야 하는 글은 모두 72편이다. 다 함께 읽고 다 함께 쓰기는 모두 수업 시간에 앞서 이루어진다. 수업 시간 75분은 글쓴이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이다. 자기 글에 붙은 동료들의 비평 답글을 읽고 글쓴이들은 답글에서 제기된 질문에 답변을 한다. 답글에 제시된 의견에 동의하지 않은 경우 왜 그런지도 설명한다. 그리고 다시금 묻고 대답하기가 이어진다. 더 좋은 글을 만들기 위해, 글에서 시작된 생각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것이다."

 이 정도 양이니 학생들이 딴짓을 할 틈이 있겠는가. 고등학교에서는 이와 같은 수업 양식을 "거꾸로 수업"이라고 명칭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수업내용을 교사가 미리 동영상 등을 이용하여 학생들에게 공부할 기회를 마련해 주고, 본 수업시간에는 강의를 들으며 몰랐던 부분이나 질문사항 등을 토론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생각해보면 수업시간에 모든 내용을 다 나간다는 건 힘들고, 각 기 다른 수준을 가진 학생들 모두에게 맞는 수업을 한다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 아닐까. 이렇게 미리 공부한 뒤에 수업이 이루어진다면, 반복 학습 효과도 있고 더 능동적으로 수업에 참여한다면 훨씬 재미있고 질적으로 뛰어난 수업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안에는 지금까지 강의를 진행하면서 고민했던 흔적들과 학생들의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내가 즐겨 듣는 팟케스트 '서울대는 어떻게 공부하는가'의 진행자 한재우님의 에피소드(서울대는 어떻게 공부하는가 E193 남을 공격하면 내가 해를 입는다)도 포함되어 있다. 그 이외에도 재기발랄 혹은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는 글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으니 글쓰기에 관심이 있거나 수업 계획이나 진행에 관심이 있는 분들도 보면 유익한 책이라 추천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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