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먹어서 책의 내용이 내 몸에 흡수된다면, 한약을 먹듯 다려서 마시고 싶다.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을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든 내 생각이다.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책 내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어느 페이지에는 내용을 요약해 놓은 것이 있어서 메모장에 저장을 해놓고 가끔 꺼내보곤 했었다. 좋은 내용인 것은 알겠는데, 이어짐이 없으니 감칠맛이 난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다시 제대로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에 구입하게 된 책이다.

 어느 분야든 일정 수준에 오른 고수들에게는 아우라(Aura) 같은데 느껴지곤 한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묘한 분위기가 있다. 난 그 분위기가 있고, 없음으로 어른이냐 아니냐를 점치곤 하는데 조훈현 기사는 내가 직접 만나보지 못했지만, 만나면 그 아우라라 물신 풍길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유일하게 국수라고 칭해지며, 세계 최다승과 세계 최다 우승 기록일 가진 전설 조훈현. 이 책은 그의 바둑 인생 중에 느끼고 깨달은 책을 한 권으로 엮은 책인데, 각 챕터마다 주옥같은 명언과 삶의 땀이 느껴져서 어느 한 장 그냥 버릴 수가 없다. 밑줄 친 부분만 엮어도 책 한 권이 나올 것 같다.

바둑 고수가 말하는 생각의 법칙, 좋은 생각은 좋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이길 수 있다면 반드시 이겨라, 판을 정확히 읽고 움직여라... '그럴 것 같다'라고 생각되는 일반적인 내용도 많이 포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에 힘이 느껴지는 것 그 말이 그냥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말이 삶을 끌고, 삶이 다시 말을 끌어주는 것. 이것이 진정한 고수의 삶 아닐까.

"장신을 차리자. 아직 바둑은 끝나지 않았다. 나는 다시 정신을 다잡았다. 집중하자. 생각을 하자. 녜웨이핑이 워낙 고단위의 수를 두어서 응수를 하려면 초읽기에 몰리기 일쑤였다. 집중, 집중····. 나는 고요한 생각의 결 안으로 들어갔다. 천천히, 천천히·····. 거칠었던 호흡이 편안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순간 주변의 모든 것이 사라졌다. 녜웨이핑도 보이지 않고 진행요원들도 사라졌다. 조바심도 초조함도, 심지어 이기고자 하는 욕망까지도 사라졌다. 바둑과 나, 단둘만 남았다. 그 절대적인 고요의 순간,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래 여기구나!"

 전설이라는 이름은 그저 타고난 재능과 운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닌 듯싶다. 처절하리 만큼 포기하지 않는 근성이 있었기에 지금의 조훈현이 만들어진 게 아닐까. 엄청난 수를 생각하며 생각에 생각의 꼬리를 물어야 하는 바둑 기사답게 그는 생각의 힘을 강조한다.

그는 생각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그 근성이란, 바로 생각이다. 해결할 수 있다는 긍정성, 반드시 해결해야겠다는 의지, 그리고 해결 방법을 모색하는 데에 필요한 모든 지식과 상식, 그리고 해결 방법을 모색하는 데에 필요한 모든 지식과 상식, 체계적인 사고, 창의적인 아이디어,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개념을 나는 '생각'이라고 부르고 싶다."

 공부를 다시 시작하면서 생각의 힘에 대해 느끼가 바가 많다. 조금 고민해 보고, 모르겠다고 포기하고 쉽게 답을 보는 예전에서 요즘은 어떻게든 공부했던 내용을 떠올려보고,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면서 조금씩 생각하는 근육이 발달하는 것을 느낀다. 그래, 뇌는 쓸수록 발달하는 것이다. 생각을 최대한 이끌어 내야 하는 전장, 그 최전선에 바둑도 있고 우리 삶도 있다고 생각한다. 치열하게 생각할수록 우리 뇌는 더 강해진다.

 조훈현 선생은 바둑 기사인데도 이 책 내용은 교육학 저서로 사용해도 좋을 만큼 교육에 대한 좋은 내용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어쩌면 삶과 교육을 따로 분리하려는 내 생각이 잘 못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혹은 바둑을 배우고 두는 것도 교육의 한 일부분이기 때문일 것이다.

"공식을 외워서 문제를 푸는 건 매우 쉽다. 하지만 그런 방식은 조금이라도 공식에서 벗어난 문제가 나오면 힘을 쓰지 못한다. 반대로 혼자서 실컷 헤매본 사람은 공식 따위는 몰라도 된다. 생각을 하면서 자신만의 해법을 찾아내면 되기 때문이다."

 생각의 자유를 갖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오래 공부하고 있은 이유도 아마 그 시간을 갖지 못 했던 게 그 원인이 있다. 학원에서 가장 빨리 가는 길을 배우기 보다 이곳저곳 헤매고 부딪쳐보면서 스스로 길을 찾아가는 법을 배워야 어느 분야를 공부하더라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 내공을 쌓을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세련된 방법보다 투박한 내공일 즉 경험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삶에 당장 가져와서 써먹어봐야겠다고 생각한 부분은 바로 "아플수록 복기해라"이다. 복기란 사전적으로 '두었던 바둑을 처음부터 다시 두는 것'을 뜻한다. 아니, 시간이 남아돌아서 둔 바둑을 다시 두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금껏 복기 문화가 사라지지 않고 이어져 오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프로기사들이 복기를 하는 이유는 그 편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패자는 어떻게든 자기가 패한 원인을 알아내야 한다. 집에 가서 혼자 끙끙거리는 것보다 앞에 있는 사람한테 물어보는 게 훨씬 간단하다. 하지만 기사들도 사람인지라 대국이 끝난 직후에 복기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승자의 기쁨과 패자의 억울함이 함께 동반되는 쉽지 않은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승자에게도 패자에게도 괴롭기만 한 복기, 그럼에도 우리는 복기를 해야 한다. 복기를 해야 무엇을 잘했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정확히 알고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복기를 잘해두면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고, 또 좋은 수를 더 깊이 연구하여 다음 대국에 활용할 수 있다. 이처럼 승리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습관을 만들어 주고, 패배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준비를 만들어준다."

 난 요즘 평균 8시간 정도를 공부하고 있는데, 그중 1시간가량을 복습하는 시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거의 공부의 끝자락에 복습을 하기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지고 머리에 지식을 넣는 것보다 공부한 것을 빼내는 것에 대한 부담이 커서 점점 그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제대로 이해한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인출하는 연습을 꾸준히 해야 하는데 이것이 어려우니 점점 미루고 안 하게 되는 것이다. 바둑으로 치면 대국만 하고 복기는 미루는 꼴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날마다 그날의 바둑을 복기하는 것이다. 낮에 둔 바둑을 그대로 기억하여 다시 놓아보는 것은 바둑 공부의 기본이다. 그날 둔 바둑은 현재의 내 실력과 수준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이다. 잘못된 게 있으면 지금 고치고 넘어가야 한다."

 조훈현의 바둑 스승인 세고의 선생은 친절히 바둑을 가르쳐주시지는 않았지만, 복기만큼은 엄격히 챙기셨다고 한다. 그 방법을 이어받아 조훈현 또한 제자 이창호를 가르칠 때 복기를 강조했다고 한다.

"다른 건 몰라도 그날 둔 바둑만큼은 꼭 기억하도록 해라. 그걸 알아야 너의 바둑을 방성하며 고쳐나갈 수 있다."

 혹시 지금 수험생 신분이거나 혹은 새로운 분야에 관심이 생겨 공부를 시작한 분이 있다면 함께 "복기"를 실습해보자. 열심히 공부하고, 공부한 것을 하나둘 백지에 적어 보는 것이다. (우리에겐 연습장이 바둑판이요 펜이 바둑돌이다). 이 밖에 인생의 많은 진리들이 숨겨져 있는 이 책을 나는 오랫동안 두고두고 읽을 것 같다. 아직 책을 읽어보지 못한 분이 있다면 일독을 강권하고 싶다. 우리 모두 고수가 되어, 이 무림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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