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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 문명 - 원자에서 양자컴퓨터까지, 세계를 움직이는 양자의 힘
한정훈 지음 / 김영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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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일상을 둘러싼 현대 문명은 과연 어떤 힘으로 굴러가고 있을까. 물리학자 한정훈의 새 책은 증기와 전기를 넘어 양자라는 새로운 동력이 어떻게 인류 문명을 혁신하고 있는지, 물리학자의 시선으로 흥미롭게 풀어낸다. 복잡한 수식 대신 생생한 역사적 일화와 직관적인 사고실험을 통해 낯선 양자의 세계를 친절하게 안내하는 훌륭한 교양 과학서다.

1. 도구가 이끈 과학, 적층되는 문명

책은 질문 하나로 시작한다. "과학을 이끄는 것은 개념인가, 도구인가?" 프리먼 다이슨이 던졌던 이 오래된 논쟁에서, 저자는 분명히 '도구' 쪽에 선다. 망원경과 현미경을 가능하게 한 유리라는 물질이 서양 과학의 눈을 틔워주었고, 프라운호퍼의 분광기가 별빛 속에 숨은 원자의 지문을 읽어내며 과학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이 믿음을 밑돌 삼아 저자는 문명을 하나의 지층처럼 그려낸다. 열에너지를 기계적 힘으로 바꾼 증기 문명, 발전기와 모터로 동력을 자유롭게 전달한 전기 문명 위에, 인류는 세 번의 양자 문명을 차곡차곡 쌓아왔다. 첫 번째는 원자핵 속 에너지를 길들인 시대다. 페르미의 원자로(1942)와 원자폭탄(1945)이 그 출발점이었다. 두 번째는 반도체와 레이저의 시대다. 벨 연구소에서 태어난 트랜지스터(1947)는 거대했던 진공관 컴퓨터를 개인의 책상 위로 옮겨왔고, 타운스와 숄로가 완성한 레이저는 광섬유를 통해 방대한 데이터를 빛의 속도로 실어 나른다. 양자 고체물리학으로 무장한 과학자들에게 자율적인 연구 환경을 제공한 벨 연구소 같은 조직은, 단순한 도구 개선을 넘어 인간이 물질을 원자 수준에서 설계하고 합성하는 존재론적 전환을 이끌었다. 세 번째는 지금 우리 눈앞에서 열리고 있는 양자컴퓨터의 시대다. 확실성 대신 확률성을 계산의 원리로 받아들이는, "악마와의 거래" 같은 도전이다.

폼페이의 도시 구조가 2천 년이 지나도록 크게 변하지 않았듯, 문명의 틀은 유지되고 그 속을 채우는 기술만 달라진다는 것이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통찰이다.

2.미시 세계의 마법, 중첩과 얽힘

이 책의 백미는 고전역학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양자역학의 본질적 특성, 중첩과 얽힘을 풀어낸 대목이다. 저자는 수식 대신 '양자 구슬'과 '톰과 제리의 사과·귤 봉지', 닫힌 상자 속 전자 같은 사고실험을 동원해, 관측 전에는 여러 가능성이 겹쳐 존재하다가 측정이 이루어지는 순간 하나의 상태로 붕괴하는 양자의 기묘한 문법을 직관적으로 붙잡게 안내한다. 그러면서도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 슈뢰딩거의 파동방정식 같은 물리학사의 핵심 장면을 놓치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은 비국소적인 원거리 상호작용에 "소름 끼치는 원거리 작용"이라는 철학적 불만을 제기하며 양자역학의 불완전성을 지적했지만, 훗날 벨 부등식과 이를 입증한 실험들(2022년 노벨 물리학상)을 통해 이 기묘한 현상이 물리적 실체임이 증명되었다. 당시엔 철학적 논쟁거리였던 얽힘 현상이 오늘날 양자컴퓨터와 양자 암호 통신의 가장 강력한 자원이 되었다는 반전이 이 책의 극적인 순간이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인물들의 개인사다. 노벨상을 받지 못한 리제 마이트너와 우젠슝, 아내를 잃은 슬픔으로 전신기 개발에 매달린 새뮤얼 모스, 벨 연구소의 조직 문화 속에서 갈라선 바딘과 쇼클리 — 과학의 발전이 얼마나 인간적인 드라마였는지를 함께 보여준다.

3.계산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양자컴퓨터

파인먼은 자연계가 양자역학의 지배를 받는다면, 자연을 완벽하게 모사하기 위해 컴퓨터 역시 양자역학적으로 작동해야 한다고 통찰했다. 고전컴퓨터가 비트로 한 번에 하나의 상태만 순차적으로 계산한다면, 양자컴퓨터는 큐비트를 활용해 기하급수적으로 많은 가능성을 동시에 탐색하는 '양자 병렬성'을 지닌다. 수많은 상태 사이의 보강 간섭과 상쇄 간섭을 영리하게 조작해 원하는 정답만 추출해 내는 쇼어 알고리즘 등은, 양자컴퓨터가 암호 해독 같은 특정 분야에서 기존 슈퍼컴퓨터를 압도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양자 상태를 오래 유지하기 어렵고 잦은 오류가 발생하는 기술적 난관은 여전하지만, 초전도 소자와 이온 트랩 등을 이용한 '인조 원자' 조작 기술은 꾸준히 한계를 돌파하고 있다. 책의 후반부는 IBM과 구글의 초전도체 경쟁, 아이온큐와 큐에라의 이온·중성원자 방식, 그리고 2025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클라크·드보레·마티니스의 이야기까지 현재 진행형인 양자컴퓨터 산업의 지형도를 다룬다. 저자 역시 응집물질물리학 이론가로서 이 분야의 연구자들과 직접 교류해온 배경이 이 대목에 생생함을 더한다,

4.기계와 인간이 함께 현명해지는 미래

증기 문명이 강력한 역학 엔진의 산물이라면, 현대 문명은 정보를 처리하는 연산 엔진의 진화에 기대어 있다. 확실성을 추구하던 기존 컴퓨터와 달리, 확률성에 기반을 둔 인공지능과 양자컴퓨터는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또 한 번 뒤바꿔 놓을 것이다. 저자는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여 '보편적 예리함'을 제공하는 인공지능 시대에, 그 보편성을 넘어서는 인간의 독창적 통찰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 강조한다.

책의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 똑똑해지는 만큼 인공지능도 똑똑해지고, 인공지능이 현명해질수록 인간도 그 도움으로 더 멀리 생각하는 세상이 이미 열렸다." 이 책 자체도 AI와의 대화를 통해 쓰였다는 저자의 고백은, 세 번째 양자 문명이 우리 삶 속에 얼마나 깊이 들어와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증거다.

나 혼자만 현명한 세상보다 기계와 인간이 서로의 한계를 보완하며 함께 현명해지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이 책은, 물리학을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 "양자컴퓨터가 대체 뭔데 다들 난리인가" 궁금했던 사람에게도, 기술이 바꿀 미래를 내다보고자 하는 이에게 나침반이 되어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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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탄생 - 태초부터 고대 그리스·로마의 등장까지 지중해의 역사
사이프리언 브루드뱅크 지음, 이청규 옮김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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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델을 넘어, 지중해가 태어나는 순간을 만나다

며칠 전, 개인적으로 무척 의미 있는 책 한 권을 발견했다. 고대 지중해사를 다룬 책이다.

지중해 문화사와 관련된 국내 번역본은 웬만하면 다 소장하고 있지만, 기존의 책들은 대부분 인물과 사건 중심이었고 다루는 연대 역시 기원전 1000년을 거슬러 올라가지 못했다. 게다가 지리·지형적 접근을 시도한 책은 더더욱 찾기 어려웠다.

10여 년 전쯤 마포 창비 건물에서 열린 강연에서 어느 교수가 나의 이런 오랜 갈증을 풀어줄 만한 책을 언급한 적이 있다. 강연이 끝난 후 찾아가 제목을 물어보았고, 그때 알게 된 책이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의 저자 페르낭 브로델이 쓴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와 지중해 세계》였다. 당시엔 번역본이 없어 원서를 읽을 엄두를 내지 못하며 안타까워하다가, 다행히 번역본이 출간되어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 근본적인 갈증을 온전히 채워주기엔 살짝 미흡했다.

그런데 이번에 찾은 책은 그야말로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격이다. 사이프리언 브루드뱅크(Cyprian Broodbank)의 《The Making of the Middle Sea》 — 이번에 번역된 따끈따끈한 책, 《지중해의 탄생》이다. 952쪽에 달하는 46배판의 웅장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도대체 이 책의 어떤 점이 오아시스라는 것일까.

브로델과 갈라서는 네 갈래 길

1. 다루는 시간적 범위와 선사시대의 비중 브로델의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는 16세기라는 고도로 발달한 역사 시대에 초점을 맞췄다. 그가 훗날 고대 세계의 지중해를 집필하긴 했지만, 주된 관심사는 이미 완성된 형태의 지중해 네트워크였다. 반면 브루드뱅크는 인류의 기원부터 기원전 500년 고전기 이전까지 — 즉 선사시대를 중심에 둔다. 브로델이 묘사한 상호 연결되고 역동적인 지중해가 영원불변한 것이 아니라, 빙하기 이후부터 청동기 시대를 거치며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애초에 어떻게 빚어졌는지 그 근원을 치밀하게 추적한다.

2.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이라는 과학적 혁명 브로델이 고대 지중해를 서술하던 1960년대 후반은 과학적 연대 측정법이 확립되기 전이었다. 그래서 그는 몰타의 거석 신전이나 서유럽 문화가 이집트·근동에서 파생되었다고 보는 동방 전파론의 오류에 갇혀 있었다. 브루드뱅크는 이 혁명을 적극 수용해, 이베리아나 몰타 같은 지중해 중서부 지역이 동방의 영향을 받기 훨씬 이전부터 독자적이고 자생적인 문명을 발전시켰음을 증명하며 옛 연대기적 오류를 명쾌하게 바로잡는다.

3. 기후를 바라보는 완전히 다른 시선 브로델에게 지리·환경 요인은 아주 느리게 변하는 장기 지속의 구조, 즉 인간의 역사가 펼쳐지는 고정된 무대 배경에 가까웠다. 반면 브루드뱅크는 빙하 코어와 해저 퇴적물 분석이라는 현대 기후학의 성과를 바탕으로, 지중해의 기후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극적이고 빈번하게 요동치는 능동적 요인이었음을 강조한다. 기원전 2200년경의 급격한 건조화, 기원전 1200년경의 기후 변화 같은 단기적·극단적 변동이 인류의 생존 전략과 사회 붕괴, 대이주를 촉발한 핵심 변수로 다뤄진다.

4. 목적론에서 벗어난 '야만인의 역사' 브로델의 시각에도 유럽 중심적 뉘앙스가 일부 남아 있었다면, 브루드뱅크는 문명의 변방으로 취급되던 이들의 역할에 주목하는 '야만인의 역사'를 표방한다. 문명이 동방에서 출발해 그리스·로마라는 종착지로 향한다는 일직선적 역사관을 단호히 거부하고, 지중해 전역의 다양한 토착민들이 각자의 파편화된 환경을 극복하며 서로 거대한 그물망처럼 얽혀갔는지를 동등한 비중으로 서술한다.

요약하면, 브로델이 이미 완성된 지중해 네트워크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구조적으로 보여주었다면, 브루드뱅크는 현대 고고학과 과학의 힘을 빌려 그 복잡한 세계가 애초에 어떻게, 누구에 의해 탄생했는가를 요동치는 기후와 변방 사람들의 관점에서 재구성해 낸다. 이 지점이 가장 큰 차이이자 이 책의 압도적인 매력이다.

지중해사의 지형도 위에서

이 책을 지중해사 서가 전체 맥락에 놓아보면 위치가 더 선명해진다. 호든과 퍼셀의 《The Corrupting Sea》(2000, 국내 미번역)는 미시생태와 위험 분산이라는 이론적 메커니즘으로 지중해를 해부하고, 데이비드 아불라피아의 《The Great Sea》(2011, 국내에 《위대한 바다》로 번역)는 상인과 군주들이 벌인 인간 드라마로 같은 바다를 복원한다. 브루드뱅크는 이 두 책이 다루는 시대보다 훨씬 이전, 즉 '지중해라는 무대 자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다룬다는 점에서 이 지형도의 가장 밑바닥에 놓이는 책이다. 여기에 주강현의 《해양실크로드 문명사》까지 얹으면, 지중해가 유일한 해양 네트워크의 정답이 아니라 여러 대안적 아키텍처(고밀도 메시형 지중해, 병목형 유라시아 초원길, 계절풍 펄스형 동남아 몬순 항로) 중 하나였다는 더 넓은 그림도 함께 보인다.

인류사의 네트워킹이라는 관점에서, 지중해사가 중요한 이유

브루드뱅크의 이 책을 개인적 감동으로만 남겨두기엔 아깝다. 지중해사는 단순한 지역사가 아니라, 인류사에서 '연결과 이동'이 어떻게 문명을 가속하는지를 보여주는 압축 실험실이기 때문이다. 이를 네 가지 축으로 정리할 수 있다.

1. 지형·생태 결정론의 가시화 테티스해의 잔해가 빚어낸 험준한 지형과 극단적으로 파편화된 미시생태는, 인류에게 자급자족의 환상을 깨고 '연결과 이동'을 생존 조건으로 강제했다. 브루드뱅크가 추적한 선사시대 지중해는 바로 이 강제가 처음 작동하기 시작한 현장이다.

2. 전근대 프로토-글로벌화의 고속 믹서 챔버 대양이 거대한 단절선으로 작동하던 시절, 지중해는 가시거리 섬 건너기(island-hopping)와 해류를 타고 유전자, 흑요석, 알파벳, 질병까지 초고속으로 교류된 현장이었다. 다른 대양권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훨씬 촘촘하게 '연결'이라는 현상이 실험된 곳이다.

3. 위험 분산과 회복력의 동역학 단일 지역의 흉년이나 생태적 충격을 광역 재분배망과 항해술 혁신으로 돌파해낸 패턴은, 복잡계가 어떻게 충격에 적응하는지를 보여주는 실증 모델이다. 이 회복력의 원형이 브루드뱅크가 그린 선사시대 미시생태 네트워크에서부터 시작된다.

4. 문명 '운영체제'의 교차 증류소 페니키아의 상업 자본, 그리스의 폴리스 네트워크, 로마의 법·인프라가 충돌하며 범세계적 인프라 표준이 갱신된 용광로가 바로 지중해였다. 이 모든 후대의 '증류' 과정이 가능했던 것은, 브루드뱅크가 보여주듯 그보다 수천 년 앞선 시기에 이미 연결의 토대가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지중해가 인류 진화의 유일한 필수 경로는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메소포타미아-인더스, 황하-양자강, 안데스-메소아메리카 등 여러 문명 진앙에서도 독립적으로 압축적 도약이 일어났다. 지중해가 특별한 것은 '더 우월해서'가 아니라, 거대 단일 제국 대신 독립적인 행위자들이 약한 유대로 촘촘히 엮이며 시스템 복잡도가 비선형적으로 상승한 파편화된 다원성(fragmented polycentrism) 때문이다. 그 결과 알파벳, 화폐, 계약법 같은 '가벼운 표준'이 국가 주권과 무관하게 빠르게 생성·전파될 수 있었고, 적당한 해양 마찰력 덕분에 혁신과 실패의 검증 주기도 극적으로 단축됐다.

결국 지중해사가 인류사 전체를 대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복잡계가 네트워킹을 통해 어떻게 가속하는가'를 가장 선명하게 뜯어볼 수 있는 벤치마크 해부대라는 점에서, 지중해사는 인류사 네트워킹 연구의 원형 사례로 다룰 가치가 충분하다.

학계의 반응 — 단순한 호평이 아니었다

이 책이 나왔을 때 학계의 반응은 예사롭지 않았다. 브라운 대학의 존 체리는 이 책이 곧바로 랜드마크급 저작이 되어 분야 전체에 변혁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 평했고, 또 다른 서평자는 이 책을 브로델의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이후 지중해사 연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성취라 부르며, 학자들이 자기 전공을 사고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놓을 것이라 단언했다. 무엇보다 Journal of Mediterranean Archaeology가 2014년 단행본 한 권을 두고 저자 본인에 더해 그레임 바커, 린 폭솔, 스터트 매닝 세 명의 중진 고고학자를 초빙해 공식 원탁 토론 코너를 편성했다는 사실이, 이 책이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는지를 보여준다. 브루드뱅크 스스로 "지식의 게토화"라 부른 문제의식 아래, 이집트학과 메소포타미아학처럼 분리돼 있던 고고학 전통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냈다는 점, 그리고 자료가 희소한 북아프리카에까지 이례적으로 공을 들여 지중해사를 유럽 중심 서사에서 끌어냈다는 점은 이후 연구자들에게 실질적인 방법론적 전환점이 되었다.

유려한 번역이라는 또 다른 미덕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번역이다. 원저자가 방대한 분량을 독자가 따라가기 쉽게 쓴 글을, 번역자가 매우 유려하게 다듬어 주었다. 번역을 맡은 이는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의 이청규 교수로, 전공이 고고학이라는 점도 이 책의 결을 정확히 짚어내는 데 큰 몫을 했을 것이다.

마치며

지금 장안의 화제인 《오디세이아》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지중해를 알아야 한다. 고대 그리스의 저 눈부신 서사시도 지중해라는 무대가 없었다면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생명현상이 그렇듯, 인간현상 또한 결국 지질적 표현이다. 언젠가 지중해에 갈 일이 있다면, 이 책을 읽고 가는 것과 읽지 않고 가는 것은 그 바다를 바라보는 눈이 전혀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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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언어를 듣는 순간 - 중력파: 100년의 기다림, 그 후 10년 ㅣ 지속의 과학 3
오정근 지음 / 책과바람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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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우주의 언어를 듣는 순간』- 우주가 속삭이는 소리를 듣기까지 /오정근 지음/책과 바람 간행
우주를 떠올리면 흔히 고요하고 텅 빈 공간을 상상한다. 하지만 우주는 우리의 상상조차 뛰어넘는 거대한 사건들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역동적인 곳이다. 별이 장엄하게 폭발하고, 거대한 천체들이 서로 충돌하며 얽히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격렬한 사건들의 연속이다.
이러한 우주적 사건들은 결코 소리 없이 사라지지 않으며, 저마다의 흔적을 남긴 채 아득히 먼 지구로 다가온다. 그 사건의 흔적들은 크게 전자기파의 형태로 날라오는 빛의 춤사위,별이 내뿜는 입자들의 운동, 항성 내부나 초신성 폭발에서 날아오는 중성미자 같이 검출이 극히 어려운 입자, 그리고 시공간의 떨림이 파동의 형태로 전달되는 중력파로 나뉜다.
물론 인간의 빈약한 육안과 감각만으로는 이 미세하고 거대한 움직임들을 결코 감지할 수 없다. 그러나 인류는 과학 기술을 통해 스스로의 감각을 확장해 왔고, 그 확장된 감각으로 미지의 물질과 현상들의 정체를 하나씩 밝혀내고 있다. 우주에서 오는 빛은 거대한 망원경으로 포착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중성미자와 같은 입자는 지하 깊은 곳의 거대한 중성미자 검출기로 파악하며, 시공간의 미세한 흔들림인 중력파는 고도로 정밀한 중력파 검출기로 감지해 낸다.
이 우주의 흔적 중 시공간의 미세한 떨림을 '중력파'라 부른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중력파를 "듣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다.
1.우주에서 가장 조용한 신호
중력파는 질량을 가진 물체가 가속운동을 할 때 발생하는 필연적 현상이다. 아인슈타인의 등가원리에 따르면 중력은 가속도와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공을 던지거나 차를 타고 다니는 사소한 움직임도 중력파를 만들어낸다. 문제는 그 세기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미약하다는 점이다. 달 위에 놓인 10kg짜리 물체 두 개가 1m 떨어져 회전한다고 가정해도, 지구에서 잰 세기는 10⁻⁴⁶ 수준이다. 그래서 감지 가능한 중력파를 만들려면 시공간을 뒤흔들 만한 극한의 사건 — 별의 폭발, 블랙홀의 병합, 중성자별의 충돌, 중성자별과 블랙홀의 충돌 — 이 필요하다. 이런 사건들에서조차 지구에서 측정되는 길이 변화는 최소 100해분의 1(10⁻²²) 수준에 불과하다.
1960~70년대에는 중력파가 정말 물리적으로 실재하는지를 두고 논쟁이 계속됐다. 리처드 파인먼과 헤르만 본디는 '끈적한 구슬 논증'으로 중력파가 실제로 에너지를 전달한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그리고 1974년, 러셀 헐스와 조지프 테일러는 서로를 도는 두 중성자별(펄서 PSR B1913+16)의 공전주기가 일반상대성이론의 예측대로 매년 조금씩 줄어드는 것을 확인했다. 중력파의 존재를 처음으로 '간접 증명'한 이 발견은 1993년 노벨물리학상으로 이어졌다. 참고로 이 두 중성자별은 아직도 서로를 돌고 있으며, 실제로 병합해 가장 강력한 중력파를 내기까지는 앞으로 3억 년이 더 필요하다.
직접 검출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1987년 대마젤란은하에서 초신성이 폭발했을 때 인류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하지만 당시 검출 장비는 초기 개발 단계였고, 유일하게 가동 중이던 조지프 웨버의 검출기가 신호를 포착했다고 발표했지만 학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인류는 그 기회를 그대로 흘려보내야 했다.
2. 하마터면 놓쳤을 첫 발견
그리고 2015년 9월 14일, 어드밴스드 라이고는 관측을 시작하자마자 첫 신호(GW150914)를 포착했다. 그런데 이 신호는 하마터면 단순한 잡음으로 기각될 뻔했다. 한 연구자가 특정 채널의 오류라고 이의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5분도 지나지 않아 상황은 반전됐다 — 문제로 지적된 채널이야말로 검출기 특성팀이 놓친 결함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인류는 처음으로 두 블랙홀이 충돌하는 소리를 들었다. 이 미약한 신호를 잡음 속에서 건져 올린 무기는 '정합필터'였다. 아인슈타인 방정식으로 미리 계산해둔 이론적 파형과 실제 데이터를 대조하는 방식으로, 완성까지 1970년대부터 이어진 오랜 계산과학의 역사가 있었다.
이후 10년간 라이고·버고·카그라 협력단은 390건의 중력파원을 확인했다. 그중 몇 가지는 특히 인상적이다.
- GW170817 (2017년): 중성자별 충돌을 중력파와 빛으로 동시에 관측한 최초의 사례. 다중신호 천문학의 시대를 열었고, 금과 우라늄 같은 무거운 원소의 기원까지 밝혀냈다.
- GW190521·GW190814 (2019년): 이론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고 여겨진 '질량 간극' 구간의 블랙홀들이 발견되며 미스터리를 남겼다. 라이고의 한 과학자는 이를 두고 "팩맨이 작은 점을 삼켜버린 것 같다"고 표현했다.
- GW250114 (2025년): 관측 10주년에 맞춰 검출된, 역대 가장 선명한 신호. 스티븐 호킹이 예측한 블랙홀의 면적법칙과 '무모 정리'를 실험적으로 검증했다.
- 초저주파 배경 중력파 (2023년): 초거대질량 블랙홀 쌍성들이 방출하는, 파장이 10광년에 이르는 우주의 낮은 콧노래.
책은 이 모든 신호를 하나의 거대한 교향곡으로 그려낸다. 초기 우주의 배경복사가 베이스처럼 낮게 흐르고, 초거대질량 블랙홀 쌍성이 저주파 리듬을 두드리고, 밀집 쌍성계의 병합이 고주파의 역동적 멜로디를 연주한다. 더 넓은 대역을 더 정밀하게 들을수록, 우주의 하모니는 소음에서 음악으로 변해간다.
3. 발견 뒤에 숨은 40년의 도박
이 모든 성과 뒤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1990년대 라이고는 미국과학재단(NSF)이 단독으로 추진한 가장 위험한 프로젝트였다. 학계의 반발은 거셌고, 암흑물질을 처음 제안한 천체물리학자 프리츠 츠비키는 이 프로젝트를 두고 노골적인 독설을 남기기도 했다.
NSF는 '선택과 집중'이 아니라 '씨뿌리기' 전략을 택했다. 1975년 라이너 바이스에게 2년간 9만 7,500달러를 지원한 작은 시작이, 수십 년의 검증을 거쳐 2억 5천만 달러 규모의 어드밴스드 라이고로 성장했다. 그 사이 예산은 의회에서 거부당하고, 관리팀이 통째로 교체되고, 800만 달러가 삭감되는 굴곡을 겪었다. 초기 라이고는 목표 감도의 10~20%에 불과한 수준으로 오랫동안 침묵했고, 외부에서는 "검출은 불가능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 지루한 기다림을 견디게 한 인물 중에는, 1973년부터 2002년까지 NSF에서 이 프로젝트를 정치적으로 옹호해온 리처드 아이작슨이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중력파 연구의 정치적 후원자이자 과학적 옹호자"라 칭했다.
라이고가 오늘날 중력파 검출의 표준이 된 것은 단 하나의 행운 때문이 아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아이디어에 씨를 뿌리며, 연구자와 함께 위험을 나누고 검증해온 시스템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 의미에서 라이고는 중력파가 검출되기 40년 전에 이미 성공한 프로젝트였다 — 황금을 낳는 닭이어서가 아니라, 그런 닭을 키워낸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위험을 감수할 용기가 없는 사람은 인생에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 무하마드 알리
4. 물리학과 조직론이 만나는 자리
이 책의 독특함은 서로 다른 두 층위의 이야기를 하나로 엮어낸다는 점이다. 별의 탄생과 죽음, 중력파가 만들어지는 물리학적 원리는 "어떻게 이런 신호가 만들어지는가"를 답한다. GW150914부터 GW250114까지 10년의 발견은 "우리가 무엇을 들었는가"를 보여준다. 그리고 NSF의 40년에 걸친 리스크 관리는 "이 모든 것이 어떻게 가능했는가"를 설명한다.
물리 법칙이 예견한 미세한 시공간의 떨림이, 한 세기에 걸친 이론과 기술, 그리고 제도의 축적을 통해 마침내 인간의 감각으로 확장되어 들려온 것 — 이것이 이 책이 그리는 가장 큰 그림이다. 100년의 기다림 끝에 인류는 마침내 우주의 미세한 떨림을 들을 수 있는 새로운 귀를 얻었다. 그리고 그 귀는, 과학적 발견만큼이나 끈질긴 인내와 도전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이 책은 조용히 들려준다. 저자 오정근 박사는 수리과학 연구소에서 중력파 발견에 참여한 과학자이다. 2015년 라이고 이 후 낸 책 '중력파-아인쉬타인의 마지막 선물' 이 후 후속 연구로 이어진 결과물을 이 책에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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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사박물관이 세계를 구하는 법 - 대멸종의 시대, 자연의 기억보관소가 들려주는 전시실 너머의 이야기
잭 애슈비 지음, 제효영 옮김 / 김영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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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자연사 박물관이 세계을 구하는 법>
주말 나들이나 여행 코스로 한 번쯤 방문해 보았을 자연사박물관. 그곳에 들어서면 맨 먼저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마 중앙 홀을 차지한 거대한 공룡 골격 표본이나 맹수들의 실감 나는 박제가 아닐까? 우리는 흔히 박물관이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객관적인 공간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현직 동물학 박물관 큐레이터인 잭 애슈비가 쓴 《자연사박물관이 세계를 구하는 법》은 이러한 우리의 환상을 깨고, 유리 진열장 너머의 숨겨진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1. 우리가 보는 자연은 만들어진 자연이다
책의 1부에서는 박물관의 전시물이 사실 인간의 욕망과 편견, 사회적 통념에 의해 철저히 기획되고 조작된 인공물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드러낸다.
생생하게 박제된 동물은 동물의 가죽을 벗기고 특수 처리한 뒤, 인간이 만든 인공 뼈대 위에 덧씌운 조형물일 뿐이다. 관람객이 열광하는 거대한 공룡 뼈 또한 완벽한 한 마리의 뼈가 아니라 여러 마리의 뼈를 섞어 만든 복제품인 경우가 흔하다. 더 나아가, 과거 사냥꾼들의 과시욕 덕분에 박물관의 표본은 화려한 수컷이 압도적으로 많고, 동물의 성행동 중 동성 간의 행동은 부적절하다는 인간의 잣대로 오랫동안 검열당해 왔다. 지구 생물다양성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곤충과 식물은 덩치 큰 포유류와 공룡에 밀려 변두리에 방치되거나 디오라마의 배경 소품으로 전락해 버린 현실도 날카롭게 지적한다.
2. 수집의 어두운 그늘, 사라진 이야기
2부에서는 박물관을 채우고 있는 방대한 소장품들의 출처를 추적한다. 17세기에서 20세기 사이의 과학적 탐사는 순수한 학문적 목적이라기보다 제국주의에 기반한 식민지 자원의 착취 과정이었다. 이 과정 속에서 수많은 동물과 광물, 심지어 사람까지 약탈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를 자연을 깊이 이해하게 해준 귀중한 발견들은 부유한 백인 남성의 독창적인 업적으로만 찬미되어 왔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수많은 여성과 유색인종, 그리고 기록조차 남지 않은 부족민들의 전문 지식과 희생이 있었음을 강조하며, 박물관이 그동안 무시해 온 모든 이야기를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3. 두 큐레이터의 엇갈린 시선: 낭만의 수장고 vs 고발의 수장고
자연사박물관의 뒷모습을 생생하게 다룬 리처드 포티의 《런던 자연사 박물관》과 비교하면 애슈비의 시각이 얼마나 파격적인지 알 수 있다. 포티는 박물관을 평생 바친 무대이자 헌신적인 학자들이 담긴 낭만적이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는 박물관을 순수한 학문적 호기심이 숨 쉬는 경이로운 지식의 성전으로 묘사한다.
반면 애슈비는 그 낭만적인 성전의 밑바닥을 가차 없이 드러낸다. 포티가 현미경 너머의 표본과 열정적인 학자들에게 찬사를 보냈다면, 애슈비는 그 표본이 어떻게 수장고까지 오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누구의 지식이 지워지고 착취되었는지를 날카롭게 묻는다. 박물관을 순수한 과학의 전당으로 회상하는 것을 넘어, 제국주의와 차별의 역사를 반성하고 큐레이팅 권력을 해체하려 한다는 점에서 두 책은 완벽한 대조를 이루며 훌륭한 보완을 이룬다.
4. 자연사박물관이 진정으로 세계를 구하는 법
과거의 조작과 편향성을 고발하는 데 그쳤다면 이 책은 그저 비판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박물관의 진짜 무대인 수장고로 시선을 돌려, 자연사박물관이 어떻게 현재와 미래의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전시되지 않은 수십억 점의 표본들은 단순한 과거의 흔적이 아니다. 표본 하나하나에는 특정 생물이 언제, 어디서 살았는지에 대한 시공간의 기록이 담겨 있으며, 이는 기후위기, 생물다양성 감소, 감염병 등 현재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전 지구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수적인 근거 데이터가 된다. 과학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과거의 표본은 멸종을 되돌리거나 질병의 단서를 찾는 거대한 타임캡슐이자 생물학적 기억 장치로 기능하게 된다.
마무리하며: 한국의 척박한 현실을 돌아보다
어느 나라를 방문하든 박물관을 반드시 찾는다. 장구한 시간 속에서 역사와 무언의 대화를 나누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특히 자연사박물관이 있다면 언제나 1순위 필수 코스가 된다.
세계 여러 나라의 자연사박물관 중에서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도심 한복판에 있는 라 브레아 타르 핏츠와 몽골 자연사박물관은 지각의 변동과 생명 진화의 장대한 서사를 직접 목격할 수 있는 잊지 못할 장소다. 라 브레아는 화려한 도시 한가운데서 천연 아스팔트가 지금도 끓어오르는 활성 발굴지라는 점에서 경이롭다. 수만 년 전 타르에 갇힌 검치호와 매머드부터 미세한 꽃가루까지 빙하기 생태계가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어, 기후 변화 속에서 생명이 겪어온 궤적을 눈앞에서 보는 듯한 묵직한 감동을 준다.
또한 몽골 자연사박물관은 척박한 고비 사막이 수천만 년 동안 품어온 백악기의 시간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갑작스러운 모래폭풍에 덮여 죽음을 맞이한 순간이 관절 하나까지 온전히 보존된 공룡 화석들은 유라시아 대륙의 판구조론적 지각 변동과 거대한 지리적 환경이 생태계에 미친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어 깊은 전율을 안겨주었다.
인류 미래를 위한 최전선의 연구 인프라로 기능하는 해외의 훌륭한 자연사박물관들을 떠올리면, 한국의 현실은 씁쓸하기만 하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처럼 지자체에서 운영하거나 일부 대학에서 수집하여 운영하는 곳이 전부일 뿐, 국가를 대표하는 국립자연사박물관은 아직 존재하지 않으며, 구체적인 건립 계획도 요원하다. 이는 한국의 경제 규모와 문화적 위상을 고려할 때 부끄러운 일이다.
《자연사박물관이 세계를 구하는 법》은 박물관이 단순한 구경거리가 있는 장소가 아니라, 미래를 대비하는 최전선의 공간으로 인식을 완전히 뒤바꿔놓는다. 훗날 한국에도 한반도의 장대한 지질학적 역사와 생태계의 흐름을 담아낼 국립자연사박물관이 세워지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다시 박물관을 방문한다면, 유리 진열장 너머의 생물들이 우리에게 완전히 새로운 목소리로 말을 걸어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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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어려워 정리해 보았습니다
최낙언 지음 / 예문당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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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감정이란 무엇일까?

감정이란 키워드로 책을 검색해보면 천여권이 넘게 나온다. 대부분은 심리학과 교육학 분야의 감정 조절과 감정 다루기류의 책들이 대부분이다. 감정을 과학적으로 정리한 책들은 의외로 드물다. 대략 10여권 정도 보인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는 감정을 5개의 캐릭터로 표현한다. 동양에서는 5욕 7정으로 구분한다. 감정은 뇌의 작용이라 본다면 어디에서 관장될까? 우리 뇌에 감정의 문이 있다 한다. 변연계의 편도체가 그곳인데 인사이드 아웃이나 칠정의 원초적 감정이 관장되는 곳이다. 그러나 인간의 감정은 이런 5~7개의 분류보다는 훨씬 복잡하다. 영어의 감정 표현은 2,600개이며 한글은 430개 정도라 한다. 아니 그렇게나 많다고?

기쁨, 슬픔,분노,두려움,혐오 같은 원초적 감정은 감정의 문인 편도체가 콘트롤하지만 좀 더 복잡한 감정인 수치심,부끄러움,갈등,감동,걱정,경멸,경외,고뇌,감사함,공감,관심,만족,낙담,경악,망연함.,무기력,복수심,모멸감,욕망 등등의 고도화 된 감정은 전두엽이 콘트롤한다.

감정도 진화하는가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요새 웃프다란 말이 유행인데 이런 감정도 만들어 진 것이다.

이 책 "감정이 어려워 정리해 보았습니다"의 저자인 최낙언 샘은 식품학자다. 응? 식품학자가 어떻게 감정을 주제로 썻을까? 궁금증이 일겠지만 이전에도 이런 시도의 경력이 잣다. 식품학자가 맛의 본질을 탐구하다 보니 맛이란 단지 감각의 영역이 아니라 뇌가 일으킨 작용임을 알고 뇌의 영역을 깊게 추구하여 나온 결과다. 우리가 느끼는 맛 또한 감정의 표현이고 그 감정을 쫒다가 나온 책이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감정의 원리를 정리해보면 이렇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라 하지만 감정이 결정하고 이성은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것에 불과하다.

-행동을 일으키는 것은 감정이며 반복된 행동이 습관과 중독을 만든다

-이성의 뇌와 감정의 뇌가 따로 있지 않다.

-우리는 감정보다 이성을, 욕망보다 절제를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인간다움은 감정이 만든다.

-감정이 없다면 이성은 멀쩡할 수 없다. 감정이 이성이 지휘자다.

-우리 삶에 가장 일상적이며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감정이다.

-인간의 감정은 오랜 진화의 역작이며 그것은 우리의 신체가 항상성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뇌를 지배하는 것은 의지가 아니라 화학물질(신경전달물질 & 호르몬) 패턴이다.

-감정은 원천적인 것이 아니라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회가 없으면 감정 또한 있을 수 없다. 감정의 다양성은 사회성에서 온 것이다. 단순한 감정이 사회성을 만나 복잡하게 진화한다.

-행복이란 없다. 화학물질의 작용인 행복감만 있을 뿐

-좋은 사회란 이성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좋은 감정이 충만한 곳이다.

-감정을 다스리는 사람이 될 것인가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이 될 것인가는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감정을 쪼개면 콘트롤이 가능하다.


욕망을 알기 전에 감정을 알아야 한다. 욕망이란 감정의 드러남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는 잊어버려도 내 말과 행동 때문에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는 절대 잊지 않는다.

보통 힘들 때 제일 도움이 되는 것은 조언이나 해답이 아니라 공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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