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지만 없는 아이들 - 미등록 이주아동 이야기
은유 지음,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 창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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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난민에 대해 아는 것은 많지 않다.

난민의 사전적 정의,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화두가 되는 사회 이슈이며 우리나라에게도 닥친 문제라는 겉핥기식 지식이 전부다.

내게 난민 문제는 수많은 하나의 사회문제 중 하나, 그 세부 갈래로 (이름조차 생소하지만) 미등록 이주아동이 있을 뿐이었다.


'있지만 없는 아이들'은 미등록 이주 아동 본인, 이들의 부모, 인권변호사 등이 자신의 삶에 대해 풀어놓는 형식으로 이뤄진 책이다.

가볍게 읽기 시작했으나 이들의 이야기는 내 삶으로 걸어 들어왔다.

아는 게 없으니 상상조차 해보지 않은 미등록 아동의 삶이 이웃의 인생으로 뜨겁게 변모했다.



이에 대한 느낀 점을 세 묶음으로 나눠 풀어보겠다.




⊙ 미등록, 등록이 되지 않았다는 것


미등록 이주아동은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으로 '불법'체류자다. 등록이 되지 않았으므로 주민번호가 없으며 법의 테두리 밖에서 산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 지 잘 몰랐다. 불편하겠구나, 정도의 소원한 감상평이 전부였다.

책에서는 미등록 아동이 처한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다룬다. 수능,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등 국가 주관 시험을 보지 못한다. 보험 가입이 안 돼 수학여행을 가지 못한다. 은행 계좌를 만들지 못한다. 자연스럽게 카드를 쓸 수 없다...


그들이 불편함을 토로하는 일들은 '임금 체불 사장님의 고소'와 같이 거창한 일이 아니었다. 지극히 일상적인 일들이었기에 그들의 막막함이 더욱 와닿았다.

불리한 일이 있어도 경찰서에 갈 수 없으니 참아야 한다는 현실과 언제 쫓겨날 지 모른다는 불안감의 연속인 나날을 이해한다고는 감히 못하겠다. 알게 되었다, 정도로만 표현하겠다.




⊙ 지분이 많은 존재, 선생님


인터뷰 대상이 아니었음에도 선생님은 이야기 중간중간에 계속해서 등장한다.

- 이름의 뜻을 물어보는 게 그렇게 싫었다

- 선생님이 내가 외국인인 걸 이야기 해서 모두가 알게 되었다.


이름의 뜻을 물어보는 게 누군가에게 싫은 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인지했다. 선생님은 교실이라는 공적 장소에서 일방적으로 말을 선포하는 입장이다. 학생들은 수동적 위치에서 이를 비선별적으로 들어야 한다. 여기에 교사와 학생이라는 수직적 관계가 교사의 발언에 권위를 더욱 부여한다. 같은 말이어도 선생님의 말은 아이들에게는 더욱 크게 느껴지기 쉽다. 나의 말 한 마디는 보통의 말들과는 무게가 다르구나. 새삼스럽게 이를 자각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책에는 롤모델로 삼고 싶은 선생님도 많이 등장한다. 네가 왜 쫓겨나야 하느냐며 시위를 주도하거나 인권변호사를 찾아가는 멋진 선생님들이 나온다. 원래 보험처리가 되지 않아 수학여행에 갈 수 없는 미등록 이주아동을 조용히 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선생님들도 계신다. 자신의 소신을 다하는 사람은 언제나 감동을 준다.

교사만큼 가족관계가 아님에도 상대의 삶에 관여할 개연성을 가진 존재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누군가의 삶에 관여할 권리를 갖는다는 사실은 매혹적이면서도 부담스럽다. 나의 말 하나로 누군가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그렇다.




⊙ 미등록 이주아동을 어떻게 바라보는 것이 바람직한가

이 책을 통해 미등록 이주아동의 열악한 생활환경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이 처한 어려움, 하고 싶은 말을 가까이서 들을 수 있었다. 소외받는 사람들의 삶을 조명하는 이런 책을 쓴 은유 작가님, 그리고 창비 출판사에게 감사를 보낸다. 과연 세상에 필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아직은 한발 물러선 시선 역시 가지고 있음을 고백한다.

책에서 인터뷰한 5명의 아동들은 본인의 의지로 불법체류자가 된 것이 아님에도 한국에서 쫓겨날 상황에 처해있다. 모든 미등록 이주아동이 같은 상황인가? 누가 봐도 억울한 입지에 처한 이들만을 의도적으로 섭외하지는 않았나?


물론 아동들이 어떠한 고의성을 가지고 불법적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설령 부모가 처음부터 불법체류자가 될 각오를 하고 왔다고 쳐도 아이들에게 그 피해가 가는 일은 부당하다. 하지만 아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한국에 머무는 것을 허가하는 등의 혜택이 많아질 때 부모가 아이들을 보다 전략적 수단으로 사용하게 될 수도 있겠다는 걱정 역시 함께 든다.


종교적 문제도 현실적인 대처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종교의 자유를 위해 한국에 망명 신청을 했다면 이는 당연히 받아들여져야 한다. 문제는 이의 악용이다. 이주를 위해 종교를 사유로 드는 경우 진실 판별이 어렵다. 교회 다닌다고 하면 다 들여보내준다, 와 같은 인식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적다보니 법의 악용에 대한 걱정이 대부분이다. 구더기가 무서워서 장을 담그지 못하는 생각일까. 인권을 위해 힘쓰는 이들에게 못을 박는 발언이었을까 염려도 된다.



당장은 미등록 이주아동의 실태와 이들의 겪는 어려움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는 점에 의의를 두고 싶다. 우리 반이나 학교에 해당 아동들이 있다면 책을 읽기 전처럼 허둥대지는 않을 듯하다. 부디 나는 이웃을 외면하는 모진 이가 되지 않기를.






*이 책을 제공해준 '불어라 책바람' 프로젝트에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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