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와 세계 - 인간 우주의 신경생물학적 기원
미겔 니코렐리스 지음, 김성훈 옮김 / 김영사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4년 브라질 올림픽 축구 개막식에서 하반신 마비 환자가 축구 시축을 한다. 뇌 신경 과학자와 그를 돕는 전 세계에서 모여든 로봇 공학자, 신경 과학자, 재활치료사들이 자발적으로 연구에 참여하여 이루어낸 성과였다. 인간의 뇌가 기계와 연결되어 마법처럼 인간의 생각만으로 무생명체를 움직이게 했다. 연구를 이끌었던 듀크 대학교의 신경생물학 교수인 저자 미켈 니코렐리스는'뇌와 세계'를 통해 뇌의 탄생부터 진화, 생물학적 작동 원리, 우주론적 뇌 이론 등을 설명한다.

아울러 사회적 관점에서 공동체가 집단적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국가, 민족, 사회 등 추상적 개념을 이루어 낼 수 있었던 이유로 '브레인 넷'이라는 가설을 내세운다. 인간의 뇌는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어도 상호 교감 작용을 통하여 목적 달성의 보상을 위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내용이다. 다른 생명체들과 다르게 인간은 뇌의 결합으로 사회적 행동을 만들고, 새로운 보상을 찾아 미래를 생각하고 행동한다. 현실과 실존하지 않는 미래 사이에서 공동체와 추상적인 개념들을 공유하고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행동한다.

이 책에서 놀라운 것은 저자가 수 십 년 동안 몸담았던 신경생물학 분야에 대한 과학적 접근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현상에 대한 깊은 성찰이다.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인공지능에 대한 편협한 기대감은 빼앗긴 일자리와 부의 쏠림에 의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교육, 의료의 불평등으로 이어져 인류의 본성을 침해하는 아찔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또한, 돈과 결탁한 인공지능은 사회적 판단 기준을 경제적 가치로만 여길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인간의 존엄성은 무시되고 기계를 위한 무가치한 판단 기준이 우리의 미래를 불확실성이 가득한 곳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가치판단 기준을 이익의 여부만으로 판단하는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은 부의 양극화를 심화 시킬 것이 분명할 것이고, 인공지능이 기업의 일자리를 대신하게 된다면 기업의 생산하는 제품을 소비하는 소비자도 그만큼 줄게 되어 결국 기업과 사회가 공멸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한 문장 안에 많은 내용을 담으려는 저자의 의도 때문에 몇 번을 되감기 하면서 읽다 보니 책 읽는 시간이 상당히 소요되었다. 칸트의 문장처럼 난해하여 이해하기 상당히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아마도 자신의 논리를 독자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 정도다. 이 책을 펴내기 위해 수 십 년을 준비했다는 저자의 말처럼 생명과학, 신경학, 역사, 사회, 정치 등 다양성이 책 전반에 담겨있다. 문단을 이해하기도 어려워 행간이 길기도 했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문장의 연속성은 책을 쉽사리 내려놓을 수 없게 하였다.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읽어봐야 할 책인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히틀러 시대의 여행자들
줄리아 보이드 지음, 이종인 옮김 / 페이퍼로드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치가 전쟁을 일으키기 전 독일을 여행한 수십만의 여행자들이 경험했던 제3제국 나치의 실상은 전쟁으로 유럽을 몰아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여행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독일의 발전된 경제와 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독일인들의 안타까움에 뒤엉켜 보이지 않는 히틀러의 잔혹성을 모른체했다. '하이 히틀러'의 충성 맹세와 반유대주의가 만연했던 1930년대 독일 여행에서 여행자들은 왜 나치의 잔혹성을 애써 모른체 했을까?

'히틀러 시대의 여행자들'1차 세계대전부터 2차 세계대전 직후까지의 역사적 사건들을 당시 외국 여행자, 외교관, 언론인, 유학생, 독일 현지인 등의 편지들을 사건의 곳곳에 끼어 넣어 현실감을 준다. 나치 히틀러가 총통이 되고 독일 청년들이 횃불을 들고 행진하는 리얼한 모습을 외국인의 시각으로 표현하였다. 당시 여행자들은 독일의 정치, 사회적 상황에 대한 우려만 있었을 뿐 2차 세계대전에서 겪게 될 죽음의 공포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나치가 잔혹성을 철저히 숨기고 구호와 선전을 통해 깨끗하고 질서 있는 독일의 모습과 과하게 친절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히틀러가 총통으로 집권한지 채 백일도 되지 않아 프로이트, 헬렌 켈러 등 유대인과 관련된 책들을 모조리 불사르고 박해했는데도 불구하고 유럽인들은 동요되지 않았고, 독일인들은 모른체했다. 반공산주의와 경제 발전에 대한 나치의 기여가 상당했기 때문에 독일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유대인, 공산주의자 등의 소수의 희생은 받아들 일 수 있다는 생각들이 만연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들은 히틀러의 선동과 정치적 구호 등 대규모의 행사와 라디오 방송을 통해 독일 국민들에게 끊임없이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정치나 사상의 프로파간다가 기득권을 등에 업고 공동체를 좌지우지해도 되는가?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소수의 희생은 과연 공정한가?라는 질문을 당시 독일 국민들은 왜 애써 외면했을까.

[1차 세계대전 직후의 독일]

1차 세계대전 후 반유대주의가 확산되었다. 전쟁 동안 유대인들은 군인으로 참전하기를 주저했다. 패전 후 연합국이 주도하는 정부가 세워졌을 때 80%가 정부 관료로 채워졌다. 전쟁에 참전했던 군인들이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힘없는 정부의 모습을 보고 실망과 노여움들이 반유대주의로 확산된 것이다. 군인들은 1차 세계대전의 패전은 나약한 정부 때문이었지 참호에서 전투에 참전했던 용감한 군인들의 탓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참전 군인들이 많았다. 그들은 언제라도 다시 전쟁으로 독일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는 자신감이 강하게 내면에 자리 잡아 있었다.

또한, 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연합국 측인 소련에 대한 두려움이 번 볼셰비키로 이어졌다.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과 독일 내 공산당 조직의 반란이 국민들로 하여금 위기와 공포의 대상으로 부각되었다. 패전으로 이한 국경 봉쇄로 식량 부족과 석탄 부족으로 난방이나 기차, 배 등의 운항이 원활하지 않았다. 공급이 달리다 보니 초인플레이션으로 독일 국민들은 고통의 하루하루를 살아야 했다. 이런 극단적 상황은 부풀어 오르는 풍선과도 같았고, 누군가 풍선에 손만 된다면 터져버릴 시한폭탄과도 같았다.

전쟁의 패전 책임과 보상을 담은 베르사유 조약은 독일인들을 패배자인 동시에 악으로 규정하고, 식민지를 빼앗고, 산업체와 시민을 감시하는 등 통제 정치로 몰아갔고, 독일인들은 폭압적인 억압으로 불만이 쌓여만 갔다. 특히, 암담한 현재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들은 젊은 청년층에게 혁명적 사상으로의 길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연합군에 대한 복종과 두려움, 전쟁을 일으킨 것에 대한 사죄는 없고 적개심과 복수심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런 사회 현상은 2차 세계대전의 씨앗이 되었고, 히틀러와 같은 선동가가 나타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간 것은 아니었을까.

[양차 세계대전 사이의 독일 문화 예술, 정치, 사회]

1920년대 독일의 문화는 모차르트, 베토벤, 바그너와 같은 음악가들의 연주회와 오페라, 영화관람이 드레스덴과 베를린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외국 여행자들은 예술 작품의 품질에 경탄을 금치 못하였고, 자체 극단을 가지고 있는 독일 도시가 백 군데가 넘고 영국 오페라 극단이 운영하는 곳도 40여 곳 가까이 될 정도였다. 그러나, 유태인 예술인에 대한 히틀러의 박해의 시곗바늘은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1929년 미국 증권가 붕괴로 대공황에 접어들면서 식량, 연료 부족이 극심해졌고, 유럽 전체가 힘들었지만 독일은 전쟁 배상금까지 갚아야 하는 상황이라 정부, 공산당, 유대인에 대한 국민들의 증오가 깊어진다. 유대인 폭행과 상점 파괴 등이 만연하게 되었다. 나치당이 1932년 총선에서 제1당이 되고, 그로부터 1년 후 히틀러가 총리로 임명되어 절대 권력을 행사하게 된다. 유대인들에 대한 박해와 공포 정치가 극에 달하고 유대인 저자의 책을 불사르게 된다. 책을 불사르는 자는 결국 사람도 불사른다는 말이 있다. 진시황이 그랬듯이 히틀러도 지옥의 문으로 걸어 들어가게 된 것이다.

히틀러의 집권 이후 독일 중산층들은 독일이 한 단계 성장했다고 생각했으며 깨끗하고, 가게에 물건이 많고, 차려입은 사람들이 다량의 맥주와 와인을 소비하고, 호텔에는 항상 뜨거운 물이 나왔다. 여자들이 담배를 피우거나 공공장소에서 화장을 하는 것은 비난받았지만 희생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매주 각 마을마다 개최되는 청년 나치 당원들의 정치적 구호와 횃불 행진이 만연했다. 바그너의 작품으로 친 나치 행사가 있었고 농민들의 축제에서 히틀러가 등장하면 엄청난 관심을 이끌었다. 대포와 전투기가 동원된 모의 전쟁을 보여 주는 등 정치적 행사들이 주기적으로 개최되었다. 반면 유대인, 공산주의자, 집시, 동성애자를 수용소에 가두고 교화시키고 외국의 정치가와 언론인들을 초청해 견학시키면서 나치는 자신들이 하는 일들을 정당화했다. 과거 대한민국의 군사정권이 히틀러를 모방했었다는 사실에 몸서리가 쳐진다.

나치는 영국의 1차 세계대전 재향군인회장, 현직 고위 장교와 정치인들을 독일로 초청하여 그들의 노동 현장, 수용소 등을 시찰하게 하고 환대한다. 죄인들 대신에 교도관을 위장시킨지도 모른 체 영국의 고위 관리자들은 반유대주의에 우려를 하면서도 독일인의 혁신, 근면 성실함에 감동을 받는다. 미래에 다가올 전쟁의 악몽은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장님이 되어버린다. 왜 영국인들은 애써 외면하고 미리 대처를 하지 않았을까? 나치의 전략에 완전히 속은 것일까?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통해 독일의 발전된 모습, 건강한 사회 질서, 반유대주의의 가면을 외국인들에게 보여준다. 전쟁 준비와 인종차별을 숨긴 채 사람들을 동원하여 철저하게 악마의 발톱을 숨긴다.

1938나치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하는 독일 국민투표에서 99.7%의 찬성이 있었고, 합병이 이루어지자 독일 국민들은 축포를 쏘며 축하했다. 그 시각 오스트리아의 유대인들은 돈을 빼앗기고 어디론가 기차에 몸을 싣고 이동하고 있었다. 왜 독일 국민들은 나치에 동조하고 말았을까? 대한민국의 전직 대통령에게 일부 국민들이 그랬듯이 말이다.

19389월 독일은 체코슬로바키아 중 독일어를 쓰는 지역을 전쟁 없이 흡수합병한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의 대표들이 뮌헨에서 승인하고, 영국 수상 체임벌린은 결과를 귀국 후 영국 국민에게 기자회견을 통해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라는 히틀러의 서명이 담긴 서류를 보여주며 연설한다. 영국은 왜 독일에, 히틀러에게 쉽게 속았을까? 전쟁 전 영국 지도층을 초청해 보여줬던 독일의 긍정적인 면들이 영국의 눈과 뤼를 멀게 하지 않았을까? 가장 중요한 언론들조차 히틀러의 마약에 취하지 않았다면 전쟁은 없었을 것이다. 편협하고 무비판적인 언론의 행태가 악의 뿌리를 단단히 고정하는 데 한몫을 한 것이다. 결국, 뮌헨 조약 후 한 달 뒤 '수정의 밤'은 독일 내 유대인에 대한 상점과 집에 대한 대규모 파괴와 백여 명의 넘는 유대인 살해로 이어졌다.

암흑으로 부터 독일을 구해낼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았던 히틀러의 선동 정치는 끝내 수 많은 인류에게 고통과 죽음을 남기고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마감했다. 그리고, 그 선동에 이끌려 희망의 고삐를 쥐었던 독일 국민들은 인종차별과 살육을 통해 지옥으로 달려가고 말았다. 또한 주변국들의 정치가와 언론인들은 나치의 프로파간다에 현혹되어 냉철함을 잃어버림으로서 지울 수 없는 댓가를 치르고야 말았다.

선동과 편협함은 재앙의 발걸음이라는 것을 경험한 인류이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 일부는 고여서 썩어 가는 물처럼 변화하지 않고있는 것이 현실이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소수를 배려하고 돌봐야 하는 자연의 질서가 사람들 가슴속에 끊임없이 이루어지도록 해야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숫자는 어떻게 진실을 말하는가 - 넘겨짚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는 71가지 통찰
바츨라프 스밀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가 생활하는 것을 쪼개거나 더해서 관찰한다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진실을 왜곡이나 선택적 편향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다. 또한, 객관성과 보편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정성적인 막연함 보다는 정량적 분석과 정리가 필요할 것이다. '숫자는 어떻게 진실을 말하는가'라는 에너지, 수송, 식량, 환경, 휴먼 등 사회 이슈와 국가 정치, 공학과 과학 등 우리 주변에 넘쳐나는 다양한 현상들을 숫자를 통하여 분석하고 진실은 무엇인지 우리들을 일깨워 준다.

한 사람이 이동하는 데 필요한 중량을 비교해 보면 자동차가 비행기나 배보다 훨씬 비효율적이다. 나 홀로 운전자가 많은 것을 감안하면 1명의 자동차 운전자가 이동하는 데 필요한 차량의 중량은 1톤에서 3톤 사이다. 그런데, 비행기나 배는 1인당 중량이 자동차 보다 가볍다. 비행기는 거의 좌석을 다 채워서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연료 부담을 줄이기 위해 비행기 동체의 무게를 적극적으로 경량화하기 때문이다. 물론 5인승 자동차에 사람을 다 태우고 이동한다면 비행기 보다 1인당 이동 중량은 적을 것이다. 환경문제를 고려했을 때는 카풀이나 공유 차량 서비스, 택시의 합승 등의 제도가 다소 의무적으로 시행될 필요성도 있는 것 같다. 물론 범죄에 악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수립하고, 불편함은 감수해야 할 것이다. 한 사람의 이동을 위한 비용을 계산하여 환경과 에너지 관점에서 어떻게 정책을 펴야 할지 정책 입안자들의 보조 수단으로 활용하면 좋지 않을까.

미국의 영아 사망률이 한국 보다 훨씬 높다는 통계 자료에 당황스러웠다. 부의 편중과 양극화 문제가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 교육, 의료 등 다방면에서 속속 드러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영아 사망률이 높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상당하다. 미국은 전 지구에서 가장 의료 기술이 발달된 곳인데도 영아 사망률이 높다는 것은 교육과 의료에 대하여 기본적인 혜택을 받지 못하는 빈곤층이 상당하다는 것을 입증한다.

또한, 약자를 보호하는 사회 안전망이 탄탄하게 엮여 있지 않다는 것으로 금번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1918년 스페인 독감을 넘어선 67만여 명이 된다는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상위 10퍼센트가 전체 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심각한 부의 편중, 사회적 기부 문화가 가장 활발한 문화, 다양한 민족으로 이루어진 이민 국가, 25퍼센트 이상 낭비되는 지나친 식량 소비 등 혼란스러운 사회 현상들이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혼재되어 있는 용광로 같은 미국이다.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영유야 사망률이 얼마나 되고 있는지 알고 있을까.

2013년 미국의 영유아 사망률은 전 세계 51위로, 새로 태어난 1000명의 아이 중 7명이 1년 안에 사망했다고 한다. 이 숫자는 북유럽의 2배이고, 크로아티아와 비슷한 수준이다. 미국은 크로아티아 보다 1인당 GDP가 세 배이다. 이런 사실들을 보면 GDP는 행복과는 관련성이 적어 보인다. 1인당 GDP는 국내 총생산량을 인구수로 나눈 것으로 얼마나 많은 경제 활동을 하고 재화를 생산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에 벌어들인 수익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 생산된 재화가 곧바로 건강, 보건, 사회안전, 교육으로 재생산되는 것이 아니므로 막연하게 GDP로 행복지수와 연관 지을 수는 없다. 약자와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정책이 수반되어 하지 않을까.

저자는 우리들이 때로는 깊고 넓게 봐야 한다는 걸 입증하려고 애썼다고 한다. 숫자가 상당히 신뢰할 만하고 나무랄 데 없이 정확하더라도 더 넓은 맥락에서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절대 가치를 정확한 근거 아래 평가하려면 때로는 상대적이고 비교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어림수와 근사치가 부적절하고 불필요할 정도로 정밀한 것보다는 낫지만 복잡한 현상을 계량화하려는 고집스러운 시도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산에 다니면서 자연과 가까워지고, 사회생활의 보폭이 길어지다 보니 무질서같이 보이는 자연, 사회적 현상에서도 어떤 규칙이 있다는 것을 요즘 막연하게 나마 체험하고 있다. 140억 년 전 빅뱅으로 시작한 미세 입자들의 활동으로 우주가 생성되고, 어떤 특정 조건에 부합되어 지구에 물이 만들어지면서 생명의 기원이 자연 발생적으로 발현되었듯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이치도 분해하거나 종합해서 보면 어떤 맥락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화와 축제의 땅 그리스 문명 기행
김헌 지음 / 아카넷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대 그리스 문명은 전쟁과 삶 속에서 어떤 축제를 즐겼을까? 올림픽이 4년마다 치러지는 것도 그리스 축제 중 하나였는데, 어떤 축제들이 있었고 그들은 왜 전쟁 중에도 축제를 즐겼을까?

나의 버킷 리스트가 지중해 역사 문화 탐방인데 그리스, 터키, 이집트, 튀니지, 이탈리아의 주요한 역사적 장소를 방문한 저자는 정치, 외교보다는 문화적 관점에서 그리스 유적을 통해 문명을 여행한다. 특히,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와 같은 신화적 이야기들을 끄집어 내어 곳곳에 흩어진 파르테논 신전과 같은 역사적 유물에 투사하여 여행의 참 의미를 일깨워 준다. 이탈리아 역사 여행을 코로나 초기인 20204월에 다녀왔고 다음 여정으로 터키, 그리스를 가려고 하는데, 이 책에서 얻은 문화 지식과 작가를 통한 간접 경험을 체험하고 싶은 바램이 앞선다.

김헌 교수님의 책은 '천년의 수업' 이후로 두 번째인데,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가 책 곳곳에 넘쳐난다. 신들의 신 제우스, 저승의 신 하데스, 태양의 신 아폴론, 계절의 변화를 만드는 대지의 여신 테메테르,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는 고대 그리스 문명 곳곳에 드러나 있다. 그리스 동쪽 에게해를 따라 펼쳐진 수 천 개의 섬들이 흩어져 있는 지리적 여건 때문인지 아름다운 천혜의 경관들을 신들의 창조물로 신격화하고, 크고 작은 전쟁으로부터 승리하기 위한 간절한 마음이 신들의 제단에 제물을 바치는 의식으로 발전하면서 다양한 신들의 이야기를 창조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이렇듯 수 천 년 전 지중해 동쪽에서 만들어진 신화가 르네상스의 예술 작품과 다양한 문학적 소재로 이어졌고 신화에서 유래한 단어들이 현대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뮤즈는 '무사'라는 음악, , 무용의 여신의 이름에서 유래했고, 뮤직은 '무사케'로 뮤즈들의 기술 즉 음악을 뜻한다. 뮤지엄은 뮤즈들을 위한 신전으로 '무세이온'에서 유래했다. 이렇듯 그리스 신화는 인류 문명사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앞으로 수 천년이 흘러도 이어져야 할 보물임에 틀림없다.

'그리스 문명 기행'에서는 역사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페르시아와 그리스 전쟁 중 살라미스 해전은 그리스 380척과 페르시아 1200척의 싸움이었는데, 그리스가 좁은 바다로 페르시아를 유인해서 크세르크세르의 대군을 물리쳤던 역사적 사건이다.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패권 싸움이었던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스파르타의 승리로 돌아갔지만 그리스가 멸망하는 결정적인 소모전이었는데, 극단적인 승리 주의가 만든 패망의 지름길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때마침 TVN에서 방송되는 벌거벗은 세계사에 김헌 교수님이 이번주에 그리스 신화를 주제로한 강연이 있었다. 책과 영상을 통해 접하는 그리스 신화와 역사 덕분에 수 천년을 뛰어넘는 시간 여행 속에 푹 빠져든 기분이다. 오래된 신화라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생각하기 쉽겠지만, 김헌 교수님의 이야기 처럼 서구 문명의 시작점이 그리스 문명이고 그 역사가 오늘날 까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소홀히 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

그리스 신화와 역사의 현장을 볼 수 있는 날을 고대하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가사키의 종 - 원자폭탄 피해자인 방사선 전문의가 전하는 피폭지 참상 리포트
나가이 다카시 지음, 박정임 옮김 / 페이퍼로드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차 세계대전의 종말을 알린 신호탄이었던 일본 원자폭탄 투하의 폭침 속에서 구호대로 활동했던 의대 교수가 두 아들에게 평화 헌법을 목숨이 끊어지더라도 반드시 지켜내라고 유언을 남긴 이유는 무엇일까? 19458월 미국의 B-29 폭격기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했을 당시 5백 미터도 채 안 되는 한 의과대학 건물에서 학생을 가르치던 교수는 부상과 방사선 노출에 따른 고통 속에서도 얼마 남아 있지 않은 동료와 학생,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헌신한다.

일본 황제의 무조건 항복 선언에 큰 실망을 하게 되고 부인마저 저 세상으로 떠나 보내게 된 상황에서 자신도 며칠 동안 혼수상태로 위험을 겪게 된다. 화재와 시체 들 사이에서 간절한 구호의 손길을 울부짖는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어 몇 명 남아있지 않은 의과대학 학생과 교수, 간호사들로 구호대를 꾸려 사람들을 치료한다.

국가와 가정이 파괴되고 내 이웃과 나의 몸 조차도 성치 않은 지옥 같은 상황에서도 사람들을 도와주는 한 교수의 따뜻한 마음이 책을 읽는 동안 안타까움과 감동을 준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변 국가에 엄청난 피해를 준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하다 가도 원자폭탄의 참상을 마주하면 나가사키 시민들이 겪은 고통에 안타까운 동정의 마음이 든다. 제국주의 헛된 사상에 물든 일부 리더들의 잘 못된 선택으로 무고한 시민들이 전쟁의 피해자로 내몰리는 상황은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연속되고 있다.


국가나 민족, 종교라는 허상 때문에 실존이 파괴되는 인류적 아이러니는 도대체 언제나 끝이 날까. 의대 교수가 오죽하면 자신의 유언으로 일본이 앞으로 절대 전쟁을 하지 않겠다고 헌법에 명시한 평화 헌법을 어길 경우에 두 아들이 목숨 걸고 지켜내라고 했을까. 방사선 피폭으로 짧은 생을 마감하면서 미국에 대한 복수심은 전혀 없고 다시는 참혹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평화만을 추구해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후손들에게 남기는 유언장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상대방에게 날카로운 발톱을 보이면, 상대방은 더 강력히 방어하기 마련이다. 타인이나 다른 국가와 민족에 대한 경멸과 공격은 반드시 나에게로 돌아오게 되어있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이해하고, 책의 저자가 이야기하듯 오직 평화만이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진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타인에게 주는 상처는 나를 멍들게 하고 나의 의식과 의지를 곪아 터지게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이 책의 저자인 나가이 다키시 교수는 원폭 투하 10년 후 48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한다. 10년 동안 평화주의자로서 자신의 고통을 떨쳐버리고 남은 생을 살았다고 한다. 평화 헌법을 깨려고 하는 시도가 머지않은 미래에 닥쳐올 것을 예단한 교수는 두 아들에게 목숨 바쳐 평화 헌법을 수호하라는 유언을 할 정도로 평화에 대한 갈망이 상당했다. 일본의 극우주의자들이 벌이는 개헌과 주변국에 대한 도전은 점점 더 심화되고 격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다카시 교수의 책이 주목을 끌고, 평화가 평화를 이어간다는 의식이 일본 국민들에게 뿌리내렸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