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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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부터 직접적으로 말하면, 요런 책들이 날 더욱 더 책을 보게 만들고,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지 않나 싶다. 사실 책을 제대로 한권도 읽지 못한 사람이 이 책을 읽으면, 이게 뭐야, 라고 분명히 말할 것이다. 책 중간 중간에 빨간 색으로 표시도 되어있고, 갑자기 글들이 한 페이지에 한 줄만 나오고, 중간 중간에 알 수 없는 문 손잡이 사진 들도 나오고, 텍스트들이 오류난 것처럼 마구마구 뭉쳐져 버린다거나. 여튼, 이 책은 소설 이라는 형식을 약간 바꾸지 않았나 싶다, 그게 또한 좀 잘 들어 맞았던 것이고.  


  예술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한마디로, 그것도 아무런 준비도 없이 예술이란 무엇이다 라고 말하는 것은 너는 왜 사냐 라는 질문에 답하는 거랑 마찬가지다. 교양 시험 때 예술이란 어떠 어떠한 것이고, '사이버 펑크'도 어떠 어떠한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사이버 펑크'도 예술로 인정 할 수 있다, 라고 썼는데 A+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예술이란 것을 설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난 예술이란 삶을 바꿀 수 있고, 이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쉽게 설명할 수 없지만, 예술이란 어느 수준 이상의 것이어야만 인정 할 수 있다고 보는데, 그 위치의 가능성은 삶을 이끌 수 있는냐 없느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나 싶다, 순전히 내 생각으로만. 그리고 예술중에서도 한 가치를 창조해 내어 인정받기 위해선, 새로움에 대한 무서움이 없어야 한다고, 그 도전정신이 튼튼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한 새로움을 바탕으로 기존과의 융합을 통한 좀 더 발전적인 것을 내어 놓는다면, 그게 한 단계 발전 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 않을 까 싶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봐도, 이 소설은 꽤나 신선한 시도였고, 그게 잘 아귀가 맞아 떨어졌다. 중간 중간에 텍스트와 연관된 사진들을 나열하고, 그 사진을 꼼꼼히 살핌으로써 더욱 소설을 직접적으로 받아 들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사실은, 내가 반했던 부분은 이런 부분보단, 그의 창조적 언어 선택 능력이다. 아, 이 사람은 어쩌면 천재 일지도 모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글 하나하나가 섬세하면서도 진득하다. 그게 좀 도가 심해져서, 사실 이게 9살이 말할 정도의 수준의 이야기는 안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할 정도니까. 만약에 주인공 오스카가 이렇게 생각한다면 얘가 진짜 천재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또한 내가 좋아 하는 일상의 못 보던 모습들 혹은 연관 없어 보이던 것들을 끌어들여 연결시키는 그의 방식은 날 황홀하게 만들었다. 왜 이별하는 데 지금까지 다 낡아 빠져서 버리게 된 '구두'들이 생각이 났을까. 그 낡아 버린 구두의 아련함과 옛 기억들이 상기시키는 회상이 이별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그러나 그렇게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이미 가슴으로는 다 이해하고, 그게 더욱 슬펐던 게 이 책의 장점이었다.

 

  나 : 죽은 자들을 대신하여..[나는 머리에서 해골을 벗는다. 종이 반죽으로 만든 것이지만 아주 단단하다. 그것을 지미 스나이더의 머리에 내리치고 또 내리친다. 그는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진다. 내가 그렇게 힘이 세다니 믿을 수가 없다. 온 힘을 다해 그의 머리를 다시 내리친다. 피가 그의 코와 귀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에 대해 일말의 동정심도 느끼지 않는다. 그가 피를 흘렸으면 좋겠다. 그래도 싼 놈이다. 그 밖에는 아무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빠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엄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관객도 이해가 안 된다. 셰익스피어도 무슨 소린지 도통 못 알아먹겠다. 체육관 천장 바깥에 있을 별들도 하나도 말이 안 된다. 그 순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내가 지미 스나이더의 얼굴을 후려치고 있다는 사실 뿐이다. 그의 피. 그의 이빨이 부러지도록 때린다. 부러진 이빨이 목구멍으로 넘어갈지도 모른다. 온통 피바다다. 해골로 그의 골통을 계속 후려친다. 그것은 론 아저씨의 골통이며(엄마를 계속 버티게 살게 해줬으니까), 엄마의 골통이고(계속 살아가고 있으니까), 아빠의 골통이고(죽었으니까), 할머니의 골통이고(할머니 때문에 망신살이 뻗쳤으니까), 페인 선생님의 골통이고(아빠가 죽어서 좋은 점이 있느냐고 물었으니까),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의 골통이었다. 관객들은 모두 환호하며 갈채를 보낸다. 내 행동이 온당하니까. 그들은 내가 그를 패고 또 팰 때 기립 박수를 보낸다. 그들의 외침이 들려온다.] - 201p 中

 

  한 어린 소년, 오스카의 상상이다, 연극중에. 마음이 아팠다. 아빠의 죽음이 한 소년에게 미치는 영향력이란, 그리고 자기처럼 슬퍼하는 것 같지 않는 엄마와 세상에 대한 분노, 그것을 저렇게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아이. 난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그러나, 이 소설이 9.11 테러를 비난 하는 말투를 쓰진 않는다. 작가는 정치적인 말하기를 배제하고 한 개인, 한 가족의 얘기를 담담히 말할 뿐이다. 난 그러한 부분이 좋았다. 이미 일어나 버린 일이고(슬프겠지만), 중요한 건 그 속의 하나하나의 개인들이라는 것. 그들의 삶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그것도 접사렌즈를 가지고서 말이지. 작가는 한 소년의 상실에 대한 반응과 행동들에 초점을 맞추고, 그의 집안에 뻗쳐 있는 전쟁과 상실에 관한 관계를 담백하게 말한다, 자극적인 말을 절대 쓰지 않으면서.

  그리고 작가는 언어의 연관성을 끊어 버리고, 예를 들어 A->B->C로 가야 될 것을 A->C로 그냥 가버리고 한참 뒤에 B를 언급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챕터들 하나 전체가 편지글이기 때문에 그러한 자연스러운 말투와 사고의 난잡함을 표현해 주기도 하지만, 처음엔 조금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왜 이렇게 얘기가 왔다갔다 하는 건지, 내가 전후 관계 연결능력이 떨어지는 건지 자책하면서. 그래서 나 자신이 나름대로 소설은 좀 읽었다 생각해서, 소설을 잘 접하지 않은 사람이 바로 읽기는 힘들지 않나, 라고 생각한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글을 전개할 수 있는 능력도 작가 자신의 능력이다, 그래서 천재인줄 알았다니까.

  이 책을 읽고 쓴 글들을 읽어 보면 꽤나 칭찬을 많이 하면서도 분석적인 방식을 도입했는데, 난 그렇게 쓰질 못하겠다. 그냥 난 내가 좋았던 부분을 내 삶과 연결시켜서 말할수 있는 능력밖에 없나 보다. 그냥, 좋은 게 좋은거지, 라는 생각을 난 소설을 읽을 때 적용시켜 버렸으니까. 더 이상 소설에서 큰 의미를 찾자면 복잡해져 버리니까. 여튼, 너무 좋다니까요, 이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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