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유곤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보던 중에 병원을 갈 일이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책을 보다 문득 고개를 들었더니, 일본인 여성 두명이 보였다. 그러다가 내가 '일본 작가'의 소설을 읽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두 일본인이 '책'이라는 것을 많이 읽는지, 혹은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는지, 혹은 한글판 표지만 보고도 자기나라의 작가가 쓴 책이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찌되었든 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 나라의 사람이 그 나라의 책을 다른 나라에서 본다면 어떤 느낌일까, 반가울까?  


  이 책이 다른 책들에 비해서 약간 크기가 작은 느낌이었다. 또한, 예외적으로 앞 부분에 독서감상에 관한 글이 미리 나와 버린터라, 연작소설을 하나로 묶어주는 끈을 미리 알 수 있었다. 보통 이런 소설은 다 보고 나서, 그리고 감상을 보고나서 좀더 깊이 있게 알게되곤 하는데, 미리 이 책은 감상을 보여주어 속았다는 느낌을 약간 받았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보는 내내, 하루키 책을 읽을 때 나에게 다가오는 뭉퉁함이 많이 제 모습을 갖추고 다가오는 느낌이 들더라.

  하루키의 말에 따르면, 그는 책 표지도 중요시 한다고 한다. 그런데, 분명 한국어 판으로 발매될 때는 이 책이 어떻게 번역될지를 비롯하여, 표지도 어떻게 될지 참고할 텐데, 왜 문학사상사의 책들은 좀 성의가 없어 보이는 것일까. 예전엔 겉 모습보다 내용으로 평가받겠다는 자신감으로 봤지만, 요즘은 먼저 보기가 좋아야 먹기 위해 시도라도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만든 신에 의해 인간은 버림 받는다' 라는 구절을 본 기억이 나는데, 어느 페이지 인지 확실히 찾을 수가 없다. 다른게 아니라, 난 이런 말들을 좋아한다. '부재의 존재'(억지스러울 수도 있지만, '부재'한다는 것 자체를 '존재'한다는 의미로 쓰임) 같은 말이나 '반대를 위한 반대' 같은, 얼핏 보면 말이 안되는 듯도 하지만, 그런 말이 안될것 같은 말에서 좀더 생각후엔 깊은 의미를 이끌어 내는 말들이 난 좋다. 예전에 노무현 대통령이 연설에서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단어를 썼을 때, 알고는 있었지만 이 사람도 보통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나 자신의 어휘적 수준이 떨어져서 일 수도 있겠지만.

  난 이 연작들 중에 <벌꿀파이>가 제일 마음에 들더라. 주제보다는, 이야기 방식이 마음에 들더라. 화자가 중간에 꼬마에게 '곰 이야기'를 들려 주는데, 그 이야기는 마지막에 주제와 맞물려 또 다른 하나의 이야기와 상징이 된다. 이러한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전체 이야기와 연결되는 구성을 잘 보진 못하지만, 많은 통찰력이 없다면 쉽게 만들 수 없는 이야기다. 누가봐도 이건 얼핏 하루키 자신의 이야기 같지만, 그래서 긍정하는 모습 자체가 어색하기도 하지만, 좋은 건 어쩔 수 없으니까.

  소설의 기본은 누가 뭐라 해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건 시작일 뿐이고, 중간은 '허구'다. 그러나, 난 그걸 '사실'로 가정해 보고 나 자신을 시험해 본다. 소설 읽기의 이유 중 하나가, 삶을 재평가 하고 재구성 하며 미래의 삶을 설계하는 바탕이 될 수 있다는 한 선생님의 말이 생각난다. 그러한 이유를 나에게도 적용하여 많은 것들을 나에게 적용해본다. 그러면, 난 많은 부분을 (소설이지만) 화자와 같은 행동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벌꿀파이>에서도 자기가 좋아했지만, 친한 친구와 결혼을 해버린 여자와, 그 여자가 이혼후에 다시 내가 그녀와 사랑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난 할 수 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어쩜, 내 소설읽기 방식에서 유래할 수도 있다. 소설읽기는 하나의 또 다른 세계속에서 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의 현실감각은 무뎌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반복되면 현실이 가상이 되고, 가상도 현실이 된다. 이러한 복합적인 것들이 내 삶을 지탱한다. 그게 어느 순간부터 애매모호해져서 내 삶을 받치는 기둥이 되곤 한다. 그래서 난 쉽게,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생각도 하고 세계도 간직하는 지도 모른다. 그러한 세계관에 하루키가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이젠 피해갈 수 없다. 하지만, 난 그 영향에서 벗어나고 싶진 않다. 난 주인공들 처럼 양을 쫓아 떠날수도, 춤을 출 수도 있을테니까,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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