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코레아니쿠스 - 미학자 진중권의 한국인 낯설게 읽기
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몇일 전에 서점에 혼자 가서 '어떤 책'을 가만히 서서 꽤 오래 봤다, 라는 글을 쓴 적이 있었다. 그 때 본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그러나,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13,000원이라니. 사실 한국인이 '한국인'을 공부한다는 것은 한국어를 쓰는 사람이 '국어'를 왜 따로 배워야 하나, 라는 의문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내가 다 알고 있는데, 내가 바로 한국인인데 왜 더 알아야 하고, 더 알 게 뭐가 있는가, 라는 의문. 하지만 그것은 고등학교 졸업후에 내가 글을 쓸 때에서야 '국어'과목을 배우길 잘했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것과 같이 책을 다 보고 나서야, 알긴 알아야 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에게 진중권은 어려운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비롯하여) '진중권과 지만원의 대결 동영상'을 보고 그를 좋아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상 편집이 그렇게 느끼도록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만원도 좀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스스로가 지식인이고, 그의 말대로 피타고라스가 만든 정의 처럼 자기도 공식 몇개 만들었고, 엘리트였단다. 그때 진중권의 말은 날 웃게 만들었다. 다음에 나올 땐 고등학교 성적표라도 갖고 나와야 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나에겐 어려운 사람이었다. <씨네 21>맨 마지막 페이지에 그의 칼럼이 2, 3주에 한번씩 실렸는데, 말들이 많이 함축적인 느낌이었고, 그가 인용하는 많은 내용들이 내가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가 '발터 벤야민'을 인용할 때, 특히 '아우라'를 인용할 때만은 예외였지만. 그러다 그의 진보성향이 좋아 그의 책을 하나 빌렸었는데, 그게 <폭력과 상스러움, 진중권의 엑스리브스>였다. 얼마 보지 못했다. 3, 40페이지 읽고 더이상 머리에 들어오지 않더라.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차치하고서라도, 왜 어떤 말을 이 내용에서 인용하는지 조차도 나에겐 다가오지 않았다. 그만큼 난 그가 어려웠고, 내 머리는 인문서적이 들어오기엔 많이 경직되어 있었다.

  그렇게 서점에서 한참을 읽다, 비싼 책값에 놀라 그냥 집에 왔었다. 그 때 이글루스를 켰더니, 엘리엇님이 이 책을 봤다는 글을 올리셨더라. 한참 멍했다. 이유는 굳이 서술하진 않겠지만, 나 자신이 초라해보였다, 라는 한 문장으로 모든 의미가 통할 꺼라고 본다. 그래서 몇일 후에 서점가서 이 책을 구입했다. 그게, 오늘에서야 다 보게 되었다(이 게으름이란).

  내가 이 책을 다 볼 수 있었던 것도 큰 이유가 없다, 쉬워서 이다. 진중권도 이렇게 쉽게 말할 수 있구나, 라는 걸 깨닫게 되었으니까. 인문서적을 잘 못읽는 내가 정말 술술 이해하면서도 읽었을 정도니까. 예상 하는 대로, 한국인의 '빨리빨리'문화를 비롯하여 우리가 아는 많은 내용들을 언급한다. 중요한 것은, 진중권은 그걸을 깨서 어떤 인간이 되자! 라고 말하지 않고, '왜'그렇게 되었는지를 말한다. 이것은 또 다른 각성 혹은 환기의 방식이다. 근원을 파악하여 그 근원에서 벗어나는 방식은, 무작정 현상만 갈아 버리자는 방식과는 효과성에서 차이가 드러난다. 그의 원인분석이 무조건 맞다, 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나같은 한 사람을 설득시키기에는 충분했다고 본다.

  난 <캐비닛>보다 이 책을 솔직히 더 추천해주고 싶다. 수준의 차이겠지만, 난 이 책을 통해 얻은 것이 너무 많다. 글을 보는 내내 연습장에 글 쓸 내용과 페이지를 메모하면서 봤으니까. '각성'이란 단어가 어울릴 만큼 날 일깨워줬다고 말하고 싶다. 가령 '체력은 국력'이라는 말의 진중권의 분석은 내 머리를 강하게 쳤다. 많은 이들이 운동을 권하거나, 일을 할 때 밥을 꼭 먹고 해야 한다고 말할 때 '체력은 국력'이니까, 하는 말들을 한다. 나도 가끔은 쓰곤 했다. 하지만, 그 깊이 있는 의미는 퇴색되어 버리고, 우리 머리 속에는 체력이 좋아야 한다, 먹어야 산다, 라는 의미만 머리에 씌어져 있었다. 그러나, 저것은 국가를 향한 충성이 담겨져 있다. 저것은 70년대 산업사회 발전 기조속에서만 의미가 있었다. 난 그 시대를 살지 않았지만, 그 시대 사람들에 의해 나까지도 현재엔 쓸모 없는 사고가 자연스레 뇌리에 박혀 있는 것이다. 단어 하나에도 의미가 다른데, 그것을 보지 못하는 안경이 나도 모르게 씌어 있었던 것이다.

  진중권의 말빨도 나에게 충격을 많이 주었다. 가령 이런 것들.

  얼마 전 주부들을 위한 강연을 했다. 강연 후에 나온 질문은 역시 대부분 자녀교육에 관한 것. 애들 억지로 공부시키지 말랬더니 한 어머니가 말한다. "우리 아이는 5년 전 강제로 과외를 시켜주지 않았다고 지금 저를 원망해요." 자기가 공부 안 하고 왜 남을 원망하는지 모르겠다. 그 어머니에겐 이렇게 조언을 해주었다. "걔한테, 지금 혹시 5년 후에 후회할 것 없는지 생각해보라고 하세요." - 155p 中

  하긴 우리 부모 세대도 우리가 라디오로 '별밤'을 들으며 시험공부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말문이 막힌 그는 결국 구시대적으로 윽박을 지르고 말았다고 한다. "아빠가 하지 말라면 하지 말것인지, 웬 말이 그리 많아?" 진보주의자를 자처하던 그가 딸 앞에서 보수성을 드러내놓고 매우 민망해했다. 그에게 이렇게 대꾸해주었다. "그런데요, 그건 진보냐 보수냐의 문제가 아니라 '진화'의 문제예요." - 219p 中

  그의 예법에 관한 글은 내가 지내온 생활과도 많은 연관이 있어서 생각케 했다. 가령 외국인이, 엘리베이터에서 왜 한국사람들은 인사를 안하냐, 라는 내용. 예전에 아파트에 살 때 아버지는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꼭 내릴 때 그 사람에게 인사를 하곤 하셨다. 그리고 아파트가 13층 까지 있었는데, 그 집 사람들 모두와 인사를 하곤 하셨다. 난 그걸 어렸을 때부터 봐와서 자연스럽게 생각했는데, 알고 봤더니 한국사회는 꼭 그렇지 않나 보다. 남자 여자가 동시에 단둘이 엘리베이터를 타면 꼭 양쪽 벽에 붙거나 엘리베이터 숫자표시를 물끄러미 쳐다보곤 한다. 또한 개그맨 선.후배가 동시에 자리한 적이 있었는데, 군대에 있던 것 처럼 각을 잡고 있더란다. 그러면서 진중권이 왜그러냐, 라고 했더니 자기도 담배한대 펴도 되겠냐고 물었단다. 왕의 머리위에서 놀던 옛 '광대'였는데 그 속에서의 수직 관계라니. 세상을 보는 시각이 이리도 다르다.

  내가 이 책에서 제일 얻은 것은, 한국사회의 발전 과정과 상황에 대한 그의 해석. 사실 난 '전근대', '근대', '탈근대'에 관한 용어를 생각할 때면 그 기준이나 시기가 명확하지 않았었다. 의미도 '전근대' 하면 바로 다가 오는 것이 아니라 '前근대'라고 의미해석을 해야 그 시기가 나에게 이미지로 다가왔던 것이다. 한국현실 자체도 난 '근대'인지 '탈근대'인지 헛갈렸던 게 사실이다. 그게 내가 개념적인 미숙함 때문인지, 현실 상황 때문인지는 그가 확실히 말해준다.

  그는 한국사람의 '몸 변화'에 관심이 많다. 지금 한국인들의 몸은 '산업사회' 때의 몸이란다. 거기서 비롯된 것들 중에 빨리 빨리 문화가 있다. 양적이 문제 보다 '질적인 문제'에 더 집중해야 하고, 신입사원들의 극기 훈련이 아닌, 창의적 발상을 위한 훈련이 필요하단다. 난 스스로가 아직 멀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극기훈련을 통한 마음가짐이 더 나은 창의력을 가져온다는 얼토당토 않는 사고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디스커버리 채널>을 통해 삼성에서 신제품 개발부서의 팀장으로 설치예술가를 영입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러한 '글자 그대로의(literal)' 결합이 실제로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기술과 예술의 융합은 거역할 수 없는 흐름으로 보인다. 미래의 생산은 엔지니어, 아티스트, 인문학자의 삼각 컨소시엄에 가까운 모습으로 변모할 것이다. 이런 구도에서 엔지니어는 기술을 가지고, 아티스트는 상상력을 가지고, 인문학자는 콘텐츠를 가지고 생산 속에서 서로 결합하게 된다. - 228p 中

  미래에 대한 내 마음에 다가오는 내용이다. 사실, 누구나 불안하겠지만, 나는 미래가 더욱 불안하게 느껴진다. 대학에 속해 있는 과의 진로는 거의 정해져 있는 곳이라, 이곳에서 벗어날 궁리를 많이 해야 하는데, 그 진로가 난 걱정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말에 의해 약간의 청사진이 그려지게 되었다. 카이스트에서도 그러한 관련 과들을 하나로 묶으려는 시도를 한다는데, 앞으로 희망적 미래를 상상해 본다, 그 속의 나의 위치도.

  너무 할 말이 많아 두서없어진 글이 된 것 같지만, 그래도 많은 내용들을 쓴 것 같다. 몇몇 사람들은 진중권이 너무 외국에서 살다온 시각만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걸 의식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도 한국사회에 많이 융화되어서 일으키는 많은 오류들을 직접 서술한다. 여기서 '상대주의'를 말하는 것은 이제 진부하다. 그들의 시각도 중요하고 우리의 시각도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그 가운데 혹은 많은 분야중에서도 둘 중에 맞다고 느껴지는 곳도 있을터이다. 그러한 곳을 진중권이 밝혀주려고 노력한다는 모습은 볼 수 있다. 그것도 아주 쉬운 말들을 갖고서.

  우리가 밖에 외출을 할 경우,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은 나가기 전에 꼭 '거울'을 본다. 그것은 나 자신이 남에게 어떻게 비추어 질지를 중요시 여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인의 습속과 그것의 이유를 살펴보는 것도, 비슷한 일이라 본다. 그렇기에, 이책을 권한다. 가려운 곳을 많이 긁어 붉게 될 정도는 아니더라도, 일정한 해소는 충분히 이 책이 해줄것이라 본다.

 

  덧. 예전에 진중권이 추천한 책 중에 <문명화과정>이 있었다. 서점에 갔다가 그 굵기와 가격에 주춤해서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이 책에서 많은 내용들이 <문명화과정>이란 책에 기대어 있더라. 도전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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