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랑의 얼굴을 가졌고 - 그림으로 사랑을 말하고, 사랑의 그림을 읽다,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 선정도서
김수정 지음 / 포르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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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정의가 아니라 어떤 사랑을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하는 책. 사랑의 색채에 관한 촘촘한 디테일을 볼 수 있는 책. 멋진 그림들은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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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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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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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최전선 - ‘왜’라고 묻고 ‘느낌’이 쓰게 하라
은유 지음 / 메멘토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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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대한 말들 중 에센스가 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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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시대 - 춘추전국시대와 제자백가 제자백가의 귀환 1
강신주 지음 / 사계절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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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들어 강신주의 제자백가 시리즈를 읽었습니다. 

저자는 '제자백가의 귀환'이라는 시리즈를 내면서 첫 책으로

<철학의 시대>,두 번째 책으로<관중과 공자>를 동시에 출판했습니다.

이 시리즈는 손자와 오자, 묵자와 양주, 상앙과 맹자를 거쳐 노자와 장자,

혜시와 공손룡, 순자, 한비자에 이르러 제국의 탄생까지 이어질 예정입니다.

철학자가 글을 잘 쓴다는 건 강력한 무기를 지닌 것과도 같습니다.

꽤 무거운 주제를 알기 쉽게, 흥미롭게 풀어주어 정리를 잘 해줌과 동시에

역사적 사실의 나열과 짜맞추기가 아닌 시대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주고 있어요.

인간의 삶에 대한 본질적 의문에 대해 파고들어 당시의 정치 상황과 철학적 사유의

인과 관계를 꿰뚫는 시선은 마치 칼잡이의 현란한 칼놀림을 연상케 합니다.

무려 2500년 전 시공간을 거슬러 올라가 당시 정치논리의 단면을 날카롭게 잘라 내보이지요.

 

춘추전국시대는 극도로 혼란한 시대였고 전쟁이 일상화된 시절이었기 때문에

혼란 가운데 제자백가가 출현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인간은 언제 어디서든 그 디테일이 비슷한 존재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어요.

지금과는 외양이 판이한 시대적 환경이었지만 인간의 본성에 이기심과 탐욕이 자리하기에

인간의 삶의 양식과 정치 행태는 결국 비슷할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정치란 결국 기득권 층의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고

그런 맥락에서 춘추전국 시대의 제자백가를 숙고하는 고찰하는 일은

지금 여기의 정치 현실에 대한 응시와 통찰로 이어져 반복되는 실수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저자의 생각입니다.

 

'제자백가의 귀환' 첫 책인 <철학의 시대>는 프롤로그의 성격을 띤 책이예요.

중국 고대사를 간략히 살펴보면서 제자백가가 출현하는 시대적 배경을 알게 하죠.

갑골문자(甲骨文字)로 알려진 잔혹한 신정국가(theocracy) 상나라와 그에 대한 반동으로

인간적 가치를 중시했던 주나라를 살펴보고 주역, 춘추, 시경같은 당시의 텍스트를 살펴봅니다.  

주나라의 예(禮)는 후일 공자의 정치철학의 모델이 되지요.

<관중과 공자>편에서는 제자백가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국가주의(statism), 아나키즘(anarchism), 실재론(realism), 유명론(nominalism)에서

논리학(logic), 수사학(retoric)까지 온갖 사유들을 종횡무진 넘나들었던 제자백가의

이러한 사유들은 사변적 관심을 넘어 그들이 처한 삶의 상황에서 입은 근본적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나온 고육지책 이었습니다.  

안정된 통치체제를 갖춰 안정된 삶을 살고자 하는 욕구를 반영한 시대사상이었죠.  

우리에게 관포지교로만 알려진 관중에게 저자는 스포트라이트를 집중적으로 비춥니다.

시대의 탁월한 정치가 관중은 춘추시대에서 전국시대로 나아가는 과도기에

제나라 환공을 첫 번째 패자(覇者)로 만든 인물이죠. 

변절자 관중을 포용한 제나라의 환공은 전국시대 오패(五覇)중 최초의 패자가 되었습니다.

 

철저히 현실적이었던 관중은 정치적 입장을 바꾸면서까지 살아남아 승리한 정치가가 되었고

그에 비해 주나라의 예(禮)를 회복하는데 일생을 바친 공자는 사후에야 빛을 보게 됩니다.

중국 대륙에서 강력한 단일 제국 체제의 형성 이후 지배층의 통치논리로

공자의 정치철학이 채택되었고 이는 현재까지도 유효한 사상이 되어 명맥을 유지하지요.

강신주는 공자의 사상이 어느 정도 왜곡되어 평가 되어있음을 번번이 지적합니다.

당시 철저히 지배층의 통치논리였던 공자의 인(仁)에 대해 의심하지요. 

당시 민(民) 이라는 글자는 노예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한쪽 눈을 찔러 상해를 입힌

노예를 묘사한 글자이며 이는 인(人)과는 철저히 구별되어 사용되었습니다.

인(人)은 지배층을 민(民)은 피지배층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인(人)을 다스리는 논리는 예(禮)이었으며 민(民)을 다스리는 논리는 형(刑)이었지요.

그러므로 공자의 인(仁)은 그 자체로 배타적인 개념이었다고 주장합니다. 

공자에게 인(仁)은 오직 애인(愛人)이고 민(民)은 사민(使民)일 뿐인 개념입니다.  

우리가 알고있던 보편적 사랑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사상이라는 거죠.

기본적으로 기득권층을 옹호한 바탕에서 출발한 논리의 태생적 한계를 지적합니다.

이후 유학은 세습 귀족이나 기득권 계층의 자기 정당화 논리로 충실하게 작용하지요.

공자의 사상은 그의 생전에 군주의 책사가 되어 현실 정치를 도모하는 것에 실패한 이후

현실에서 초연한 철학 학파로 변신합니다.   하지만 기존 정치가들은 공자를 알뜰히 이용했고

공자는 자신의 생애동안 극도로 초연히 살며 예(禮)의 기원과 정당성을 묻기보다는

그것을 내면화할 수 있을지만 고민한 순진한 사상가였다는 게 저자가 공자를 보는 시각입니다.

 

고대 상나라나 주나라의 역사는 조금 낯선 시대의 이야기로 들리지만

공자의 등장은 우리에겐 매우 익숙하게 다가옵니다.

그건 우리나라가 중국보다 충실하게 공자의 유학 사상을 이어받은 국가이기 때문이죠.

중국 대륙을 지배해온 거대 담론인 유학은 중국의 간섭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던

조선시대 사상가들의 골수까지 스며들었기에 제자백가를 이해하는 것은 지금의 우리를

이해하는 것과 같은 베이스에 있습니다.   조선의 유학사랑은 중국에 못지 않았으니까요.

춘추시대에서 전국시대로 넘어가며 제후국들이 패권을 다투는 동안 길고 긴 전쟁은 계속되었고

이런 참혹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온갖 사유를 펼쳤던 제자백가 중 관중과 공자까지를 다룬

이 두권의 책은 생각보다 드라마틱 했습니다.  

그 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더듬어본 저자의 치밀함과 동양 철학에 대한 내공은

연이어 등장할 손자와 오자, 묵자와 양주를 기다리게 하네요.

 

지난 연말 6시간에 걸친 제자백가의 귀환에 대한 저자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2500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넘은 공간을 종횡무진 탐색하며 인간의 행복에 대해 고민한 흔적을

내보이는 저자의 강의는 흥미진진함을 넘어 잔잔한 감동마저 있었지요.

저자는 국가주의에 많은 희망을 걸고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아나키스트의 면모가 돋보인 장자나 양주를 특히 편애한 걸 보면 말이죠.

한동안 철학과 시를 버무린 책이 반복되어 출판되는 듯한 느낌에 강신주의 책을 집어들며

잠시 머뭇거렸던 적이 있습니다만 이 제자백가 시리즈는 목을 빼고 기다리는 책이 될 것 같네요.

네, 제게는 웬만한 무협지보다 재미있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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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리라이팅 클래식 4
강신주 지음 / 그린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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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莊者)에 관한 책을 읽었습니다.
노자(老子)에 대해서는 도덕경을 띄엄띄엄 읽다 만 적이 있으나
장자는 아예 접해본 적이 없는 책이예요.
노장사상이 속세를 초월하여 신선놀음을 하는 도교와 비슷한,
현실 도피형 철학이라 생각하는 막연하고 섣부른 선입견만 있었습니다.  
노자의 무위가 뭔지도 몰랐고 장자의 호접몽은 꿈과 생시를 오락가락하는
신선같은 도인들의 도통한 이야기려니 했구요.
강신주의 이 책은 이런 총체적 무식에서 약간은 벗어나게 해준 책이었습니다.

저자는 이전까지의 노장사상에 대해 심각한 왜곡이 있었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춘추전국시대의 상황은 갈등과 살육의 시대였고 거기에서 살아남는 것과
그 갈등을 종결짓는 것이 지상 최대의 목표였던 바 노자와 장자의 사유가
섣불리 현실을 떠난 사상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거죠.

노자에 최초로 주석을 붙인 사람은 법가(法家)의 한비자(韓非子)였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합니다.
우리가 표면적으로 알고 있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노자, 도(道)를 말하는 노자는
알고보면 국가주의(statism)를 지향하고 있는 정치철학자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이에 반해 장자는 국가라는 초월적 존재에 의해 포획되는 삶을 단호히 거부한  아나키스트입니다.
국가에 대한 저항과 비판의식, 그리고 새로운 삶의 양식을 꿈꾸는 실존적 고민을 한 철학자...
그러므로 도가나 노장을 한 묶음으로 이해하는 시도는 그 자체로 심각한 왜곡이며
국가주의를 아나키즘으로 독해하려는 황당무계함이라 합니다.

유가(儒家)와 묵가(墨家)의 사유는 개체의 삶보다는 초월적 가치와 이념을 긍정하는  철학입니다.   하지만 장자는 개체의 삶을 부정하며 초월적 이념을 표방하는 모든 태도를  '꿈'이라고 비유하며 이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장자의 꿈은 개인의 삶을 억누르는 모든 것을 뜻해요.
이렇듯 급진적인 장자의 정신은 노자의 국가주의에 오염되고 이어 도교라는 종교에 의해  철저히 은폐되었다는 것이죠.

나의 삶에는 한계가 있지만 앎에는 한계가 없다.   한계가 있는 삶으로 한계가 없는 앎을 따른다면 위태로울 것이다.   그런데도 계속 앎을 추구한다면 더욱 위태로워질 것이다. [장자 양생주]

吾生也有涯 , 而知也无涯,, 以有涯隨无涯 殆已.  已而爲知者, 殆而已矣.
오생야유애,  이지야무애,  이유애수무애 태이.  이이위지자, 태이이의.

우리의 삶은 '타자'와의 마주침 속에서 영위됩니다.  
타자란 나의 규칙과는 다른 규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죠.  
그러므로 타자와의 우발적 마주침에 있어  나의 규칙과 타인의 규칙 사이에서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소통은 타자의 규칙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의미하는데 장자는 그것을 성심(成心)이라  표현합니다.   저자는 이러한 장자의 성심을 부르디외의 아비투스(habitus), 들뢰즈의 아장스망(agencement)과 동일선상에서 이해하고 있어요.
성심은 타자와 소통하는 가운데 일종의 흔적이나 주름을 만들고 이것은 결국 들뢰즈의 표현대로 배치를 새롭게 하여 관계를 새롭게 하고 있다는 거죠.

타자를 관조의 대상으로 보지만은 않겠다는 결연한 장자의 의지가 '꿈에서 깨어나라' 입니다.
타자와 직대면 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죠.  
강신주는 장자의 꿈에서 깨는 것을 일상으로부터의 초월과 도피로 이해하는 건  완벽한 오독이라고 외치고 있어요.   타자와 마주치는 지점에서 계속 나의 규칙을 주장하면  꿈 속에 사는 것이고 타자의 규칙을 수용하여 그것을 배우면서 새로운 주체로 변형되는 것이 꿈에서 깨는 것이라구요.   즉, 성심으로  새로운 주름을 만들어 새로운 배치를 형성하는 게 꿈에서 깨는 '삶의 길' 입니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특정한 공동체에 내던져진 우리는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규칙을
아비투스로 내면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타자와의 조우가 불편하고 낮설게만 느껴질 때 성심에 근거한 자의식은 무력감을 느끼게 됩니다. 
장자는 이 지점에서 '판단중지'라는 것을 조삼모사(朝三暮四)편의 '양행(兩行)'으로  설명합니다.  
이 양행의 논리에서 비움(虛)이나 망각(忘)의 개념이 나옵니다.  
판단중지의 상황, 망각의 상태가 되어야 타자성을 느낄 수 있다는 거죠.  
내 것을 비우는 삶의 공백과 망각은 타자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됩니다.  
이는 각자가 타자의 소리에 민감하게 역동적으로 대응하여 타자를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새로운 관계 속에서 새로운 삶의 양식을 구성하라는 것입니다. 

장자에는 노자사상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매우 혁명적인 사유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것은 망각과 연대의 실천 철학이라고 불릴 수 있을 만한 아주 근본적인 사유이지요.   망각과 연대는 간명하게 표현하자면 소통(疏通)이라는 말로 정리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소통이라는 개념을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라는 용어와 혼동하지는 마십시오.   커뮤니케이션은 어원 그대로 어떤 공적인 (communis) 영역의 권위를 전제하는 개념입니다.   그래서 이 개념은 자유로운 혹은 야생적인 개체를 주어진 공동체의 규칙으로 몰아넣는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이와 달리 소통은 글자 그대로 '막힌 것을 터 버린다'는 뜻의 '소'(疏)와 '새로운 연결'을 뜻하는 통(通)의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 개념입니다.   결국 이 개념은 기존의 고정된 삶의 형식을 극복하여 새로운 연결과 연대를 모색하려는 의지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수적인 의미를 갖는 커뮤니케이션과는 달리 소통이란 개념이 혁명적인 뉘앙스를 갖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서문 7쪽)

마음으로 하여금 타자를 자신의 수레로 삼아 그것과 노릴 수 있도록 하고, '멈추려 해도 멈출 수 없는 것'(不得已)에 의존해 중(中)을 기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다. ...[인간세]

且夫乘物以遊心, 託不得已以養中, 至矣. 
차부승물이유심, 탁부득이이양중, 지의.   (69쪽)

장자가 말하는 모든 슬로건은 소통(疏通)이라는 개념으로 압축됩니다.
트일 소(疏)가 의미하듯 타자로의 개방을 상징하는 '소'의 개념은 비움이라는 망각의 수양론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타자와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의 시작입니다.  
망각이 삶과 현실에서의 도피가 아니라 차이를 횡단하여 타자에게로의 연결을 도모하기 위한
망각이었음을 읽어내야 하지요.

노자의 도는 모든 개체들 위에 미리 존재했으나
장자의 도행지이성(道行之而成)은 개체가 만드는 것입니다.  
도는 걸어가는 데서 이루어진다는 말인데 그러므로 걸음을 멈추면 도는 끝납니다.
길로부터 역사적 의미를 제거하고 형이상학적으로 절대화시킨 노자에 반해
장자는 길이 원인이 아니라 만들어낸 결과라고 본 것이죠.  
자신의 삶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되찾는 것.  
새로운 연대를 통해 타자로 하여금 삶을 되찾도록 하려는 장자의 정신은 스피노자를  닮았습니다.
삶과 유사한 것을 살지 말고, 삶을 살라는 정신을.

장자라는 텍스트를 접하지 않은 상태에서 읽은 책입니다.
그러니 제가 장자를 이해하지도 못했는데 오해를 할 이유도 없고 처지도 아니지요.
하지만  그동안 어설프게 알았던 노장사상에 대해 이해의 실마리를 준 책이었어요.  
알기 쉽게 풀어쓰는 저자의 능력과 인용한 노장 텍스트가 흥미로운 책이었습니다. 
강신주의 책은 항상 그렇듯 잘 읽히지요.
그리고 저는 그에게 항상 잘 설득 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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