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읽어야 할 한 권의 책
김영건. 김용우 엮음 / 책세상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나는 40대다. 다시 말해서 이 책이 겨냥하고 있는 독자층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책을 읽었고, 이 책이 좋아졌다. 사실 '20대에',  '읽어야 할'  같은 꽤 거슬리는 말들을 제목에 포함하고 있는 이 책을 처음 대했을 때, 도대체 어떤 책들을 가지고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삐딱한 감정이 일차로 누그러진 건 차례를 훑어보고 나서였다. 소개돼 있는 77권의 책들이 여느 권장 도서 목록들(어떤 근사한 타이틀을 갖다 붙이든 간에)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늘 거기서 거기인, 소위 '고전'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그런 책들 일색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 책에 관심이 가기 시작한 건, 애초에 '독서의 길잡이 책'쯤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이 책이 예상과 달리 내게 독서 자체에 대한 향수를 일깨워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77명의 학자들이 자신의 인생의 한 부분에, 혹은 학문의 길의 한 부분에 깊이 각인돼 있는 책을 한 권씩 소개하는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 때로는 감성적이고 때로는 학구적인 이 글들이 내게 준 것은 꼭 한번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에 대한 '정보'라기보다는, 이 필자들에게서 그랬던 것처럼 어떤 책이 정말 나의 삶과 함께하던 시절, 책이 나에게 길을 보여주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는 기억이었다. 그렇게 되살려진 기억은 그 시절에 대한 감상적 회고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재의 나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졌다. 이제 인생을 알 만큼 아는데 책에서 뭐 그리 대단한 것을 얻을 수 있으랴 하는 다소 냉소적인 생각에 빠져 있었던 건 아닌가, 그래서 열린 마음으로 책을 대할 때 얻을 수 있는 지성과 감성의 크고 작은 울림을 지레 포기하고 살지는 않았는가 하는 반성 말이다.

소개된 77권의 책 중 몇몇은 내가 읽어본 책이고, 몇몇은 읽다 만 책이거나 사놓고 읽지 않은 책이고, 몇몇은 영화나 드라마로 본 책이며, 몇몇은 적어도 들어는 본 책이었지만, 그 밖의 대다수 책은 내가 듣도 보도 못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 책들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사실 내가 뭔가를 읽고자 한다면 그게 꼭 그 책들이어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자기가 교감할 수 있는 책은 각자에게 다 다른 법이니까 말이다.

나는 이렇게 내 식으로 이 책을 읽고 나름의 감동을 얻었으니 제목이 나를 내치더라도 그냥 웃어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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