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울 슈퍼 이야기 걷는사람 에세이 21
황종권 지음 / 걷는사람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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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울슈퍼 이야기
-과자하나에 울고 웃던 8090 추억소환장

황종권 에세이/걷는 사람

전라도 여수에 있는 국동이라는 마을에는 뒷배처럼 든든한 구봉산과 돌산대교가 자리를 지키고 섰다고 했다. 그는 그 동네를 두고 산해진미를 차려놓고도 젓가락이 가지 않는 밥상같은 동네라고 불렀다. 무언가, 빠진 것이 있다면 바로 흔해 빠진 구멍가게가 없다는걸 예로 들면서.

📍10. 여자의 능력은 막걸리를 주문할 때 나오는 김치였다(...)지구는 못 구해도 한 세월을 구하기에는 충분한 맛이었다. 잘난 자식들한테 김치만 담가 줄 줄 알았지, 한 포기의 대접을 못 받던 할머니들한테 여자의 김치맛은 막걸리 잔을 넘치게 했다. 여자는 딸 같기도 며느리 같기도 했으며 할머니들의 애인같았다. 애인을 부르듯 언젠가부터 여자를 방울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방울이라 부를 때마다 기분좋은 바람에 흔들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바야흐로 할머니들의 사랑방, 훗날 추억의 고춧가루로 눈시울을 뜨겁게 할 방울 슈퍼의 탄생이었다.

슈퍼집 아들로 그가 누린 호사는 그닥 대단한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소풍을 하루 앞두고 동네 아이들이 슈퍼로 몰려와 신중하고 행복한 표정으로 과자를 고를때 그가 가진 지위를 은근히 뽐내는장면을 보고 있으면 그만한 호사가 어디있을까 싶다. 은근한 참견을 하며 날씨처럼 소풍의 맛을 결정하던 어린 소년은 늘 마지막에 주인공처럼 소풍가방을 열어 자신을 향하던 기대에 부응하듯 자랑스레 과자를 꺼내곤 했다.

📍37. 내가 근사하도록 선택한 과자는 오직 사브레였다. 사브레에 유독 손이 갔던 이유는 어린 맘으로 함부로 손댈 수 없는 과자였기 때문이다. 사브레는 과자 이상의 기품이 있었다(...)슈퍼집 아들에게 사브레란 소풍에서 신분을 증명하는 여권이었다.

책의 가운데로 파먹듯 읽어가는 동안, 나는 내가 좋아하는, 좋아했던 과자나 사탕의 이름이 호명되길 군침을 다시며 기다렸다. 따조가 필요했던 그가 치토스 한 번 실컷 먹어보고싶다던 친구를 위해 아홉봉지를 딱 하고 열었을때, 그 고소한 튀김냄새가 가득한 과자봉지에 입을 대고 한 번에 털어넣고 싶은 그런 마음으로.

문창과시절 짠내나는 일상을 버티게 해준 논두렁 과자와 어릴적 나처럼 당신의 아이가 먹는 걸 보는게 여전히 재밌고 신기한 아폴로 까지, 그가 읊는 과자리스트는 곧 지난 시절에 대한 이해고, 즐거움이겠지. 음식과 부록처럼 따라 들어오는 옛 이야기들. 함께 나눈 시간안에는 나눠먹던 음식이 빠지지 않는다. 조금 해롭고 몸에 이롭지 않아도 그 만큼은 감당되던 시절과 이야기들이 따숩고 보드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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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손에 토카레프
브래디 미카코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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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손에 토카레프

브래디마카코/김영현옮김/다다서재

표지의 두 소녀는 물그림자처럼 서로를 비춘다. 어딘가를 바라보는 소녀들. 소설은 미아가 우연한 계기로 후미코의 이야기가 실린 글을 읽으며 시작된다.
엄마와 동생 찰리, 그리고 미아. 미아가 기억하는 엄마는 언제나 힘없이 축 늘어진 모양이다. 약을 하거나, 또는 술을 하면서.
껍데기만 남은 인간..미아는 엄마가 반짝하고 기운을 내고 자신과 자원봉사를 하며 카페에서 즐겁게 밥을 나눠먹은 일을 떠올려보지만, 그가 다시 남자를 만나고, 한껏 취해있다가 다시 절망하는 순서를 되짚으며 인간이 어떻게 이런 사소한 것에 힘없이 나동그라지는지 번번히 목격한다. 어른 역시 언제든지 나약해질 수 있는 가여운 존재라는 걸 미아는 너무 어린 나이에 알아버린걸까.

미아가 읽는 후미코의 이야기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호적에 오르지 못한 여자아이의 삶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가파르게 하강한다. 아버지의 무책임, 매달리는 엄마, 배다른 동생과, 성씨없는 아이로 숨어다니며 글을 배우는 후미코. 미아는 후미코의 이야기에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자주 입을 달싹이며 말한다.
📍61."이 마음 나도 안다"

토리헤이든의 소설 예쁜아이가 떠올랐다. 함묵증의 아이를 모든 선생이 달려들어 그의 입을 벌려보려고 하지만 끝끝내 수포로 돌아간 일. 아이와 결국 통하게 된 그가 복지사 선생과 다투면서 사랑과 돌봄이 어떤 선을 넘지 못하는 것을 경험하는 장면들이 책속의 그를 돕는 누군가와 닮아있다. 계속해서 미아는 후미코의 이야기에 몰입한다. 삶에서 영영 도망치려는 엄마차럼, 자신도 언젠가 엄마와 비슷한 세계에 살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떨쳐내기에 아이라는 감옥은 미아에게 커다란 경계석이다. 한번도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을 하지 못했던 미아에게 동생을 뺏기고, 이름을 뺏기고, 엄마를 잃어가는 후미코의 이야기는 어딘선가 같은 방식으로 재생반복되는 또 다른 미아일터. 미아는 궁금해 한다. 후미코도, 자신도 다른 세계로 넘어갈 수 있을까. 이 곳 말고 다른 곳으로 넘어가 다른 인생을 살게 될까.

📍211. 미아는 불현듯 생각했다. 엄마는 내게도 좀비가 되라고 하는 것 아닐까. 좀비는 다른 인간을 좀비로 만들기 위해 습격한다. 엄마는 나도 자기처럼 되길 바랐기 때문에 이런 연기를 오랬동안 해온것이 아닐까.

📍201. 어린시절, 내게는 도와주는 어른들이 있었어. 그러니까 어른이 된 내게도 너를 도와줄 기회를 주면 좋겠어. 이런식으로 말하는 소셜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미아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책속의 후미코는 큰 결정을 한다. 미아 역시, 후미코처럼 찰리와 함께 어디론가 떠날 결심을 하고, 둘은 100년을 사이에 두고 끊임없이 대화한다. 너도? 그래 나도.
이야기의 끝으로 이어지는 사이에 미아와 윌의 노래가 배경음악처럼 깔린다. 저자 자신이 좋아하던 그 밴드음악을 들려주는 것 처럼. 호수에 비친 물그림자는 후미코에게 말한다. 흔들리는 나뭇잎과 힘차게 울어대는 매미소리가 호수에 비친 후미코를 흔들어 깨운다.

브래디 마카코의 전작을 모두 읽은 셈이다. 그의 다른 책들이 모두 그의 일터와 아이와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빚어진거라면, 완전히 허구의 세계인 소설에서 그가 어떻게 새로운 인물들을 창조해낼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다. 다자라지 못한 아이는 불안전한 어른이 되고, 다시 얼마간의 시간차를 두고 되풀이되는 과정을 섬세하고 촘촘하게 그려냈다. 추천해준 다른 작가들의 평대로 한번도 손에서 놓지 않고 읽어내려간 책. 우연인지, 그날밤은 밤새도록 배를 타는 꿈을 꿨다. 미아와 후미코도 함께 하면 더 좋았을 그런 작은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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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하는 책읽기 - 나를 다독여주고 보듬어주세요
서유경 지음 / 리더북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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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글을읽다 마주하게 되는 거대한 지도들.

문학이라는 먼여정을 떠나는 이들에게는 나침반같은 그이의 안내서가 꼭 필요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중, 일생중 마딱뜨리게 되는 수많은 감정과 일들사이에서 그 사이마다 점을 찍고 쉴자리를 내어주는 그의 글솜씨도,가까울것 없어보이는 단편들이 한줄로 꿰어져 긴 호흡을 만들어내는 그

경이로움도, 모두 아깝지 않게 글 속에 녹아있는 듯하다.

 

열렬한 독서가가 되기가 두려운 당신에게, 일상에 허둥대는 당신이라면 더더욱.

이 작은책이 이끄는대로 당신의 컬렉션을 꾸며도 좋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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