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구두 > 박병상 : 후손은 생명공학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 03

최근 국가에서는 노벨상에 근접한 과학자 10인을 선정해 이들을 지원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뒤늦긴 했지만 이런 정책이 도입된 것에 대해 환영한다. 하지만 생명공학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좀더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오래전부터 생명공학 문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온 박병상 박사의 글을 통해 이 문제를 함께 고민해보도록 하자. - 바람구두

후손은 생명공학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 03

생명공학은 안전할까

특정 제초제에 내성을 갖도록 유전자 조작된 콩과 땅콩 유전자가 주입된 콩을 먹자 알레르기가 발생된 사례, 퇴비를 빨리 만드는 박테리아가 토양미생물을 몰살시킨 사례, 제초제 저항성 곡물을 심자 제초제 내성이 주변 잡초에 전파되어 제초제에 내성을 갖는 소위 슈퍼잡종이 발생된 사례, 심지어 변이 박테리아에서 추출한 L-트립토판이란 아미노산을 먹은 수십 명이 죽은 사례도 있다(다른과학 2호, 1997년 3월). 이상은 현재 상황이다. 앞으로는 어떤 상황으로 나타날지 현재로서 전혀 예측할 수 없다.

“과거의 실수였던, 이미 사과와 배상을 마친 L-트립토판 이야기는 더 이상 꺼내지 말자, 당신들이 지적하려고 하는 사례는 극히 미미한 현상에 불과하다, 생명공학 처리하지 않은 전통 농산물의 경우에도 그 정도의 사고는 늘 있어 왔지 않는가!” 생명공학자들은 그렇게 외치고 싶을 지 모른다. 그러나 현재 상황이 생명공학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앞으로 어떻게 번질지 현재로서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사고의 원인을 바로 알 수 있고 대책도 쉽게 세울 수 있는 전통 농산물의 경우와 생명공학 농산물은 크게 다르다. 현재 환경에 주는 충격이 미미하다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프리온이란 단백질에 의한다고 알려진 크로이츠펠트 야콥병은 광우병 걸린 쇠고기를 먹은 사람에게 발병되지만 불안하게도 언제 누구에게 발현될지 모른다. 광우병은 병에 걸린 양의 내장을 사료로 먹은 소에게 나타난다고 한다. 문제는 양의 내장을 먹인 소나 광우병에 걸렸는지 알 수 없는 쇠고기를 먹었던 사람에게 대책 없는 질병이 무작위로 발생된다는 것이다. 나중에 어떤 문제가 발생될지 당시로서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크로이츠펠트 야콥병과 같은 맥락으로 생명공학 안전성을 평가해야 한다. 슈퍼미꾸라지나 백신과일의 유전자가 내 몸에 들어와 당장 뚜렷한 이상이 없다고 앞으로도 이상이 없으리라고 확신할 수 없다. 내 몸에 이상이 없으므로 당연히 내 아이에게도 이상이 없을 것으로 믿을 수도 없다.

유전자 조작으로 새로 생긴 변형 유전자는 일종의 돌연변이 유전자로 보아야 한다 후손의 처지에서 평가해야 할 생명공학, 박병상, 1998년 9월 11일 ‘생명공학 육성법’ 개정 관련 시민단체 연대모임 토론회 자료집. 

돌연변이 유전자는 현재 환경에 불리하다. 환경에 불리한 유전자가 생명공학으로 인해 과잉 축적되면 생태계에 어떠한 일이 초래될까? 현재로서 전혀 예측할 수 없다. O-157 대장균처럼 해가 없던 대장균이 병원성으로 변화되어 출현한다면 당장 문제가 발생되겠지만 병원성을 유발시키는 조작된 유전자가 보인자 상태로 발현되지 않다가 환경이 바뀌면 병원성으로 돌변할 가능성도 있다. 환경은 누구에게 언제 어떻게 바뀔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생물학적으로 서로 다른 종의 유전자를 인간의 목적으로 치환하는 연구 과정에서 부장용이 나타나지 않아 안심하고 생태계에 방출한 이후 예기치 않던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 혼란은 세대를 건너뛰고 발현할 수도 있다. 현재 환경에 침묵하다가 환경이 바뀌면 발생될 수도 있다. 듣도 보도 못한 질병 과거의 질병이 창궐하는 이유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듣도 보도 못한 질병, 잊혀진 질병 창궐이 던지는 의미, 박병상, 월간 그린스카우트 1996년 5월호, 92-95.

생명공학은 유전적 획일성을 초래할 수 있다. 특정 제초제 저항성 씨앗을 뿌린 농토에는 해마다 그 제초제에 내성을 갖는 같은 품종의 씨앗을 뿌리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는 농산물의 단순화에 이은 영양분의 단순화로 연결될 것이다. 사람의 모유와 똑같은 우유를 생산하는 젖소와 같이 고부가가치를 양산하는 고가의 가축을 대량 복제하여 농가에 공급했다 하자. 이런 동물은 까다로운 환경을 요구할 것이다. 온도 습도 사료의 선택 등, 최적의 환경 상태를 유지하는데 많은 비용이 들어가겠지만 만일 정전이나 부주의와 같이 약간의 문제라도 발생되는 날이면 보통 젖소와 달리 전멸의 위험을 감수해야 할지 모른다. 유전적인 다양성이 결핍된 개체들은 환경 변화에 매우 취약하다. 복제된 동물은 유전적으로 안전히 동일하다.

생명공학은 유전자 차별을 견인할 것이다. ‘휴먼 게놈 프로젝트’의 대성공으로 사람의 유전자가 완벽하게 밝혀지고 개인 개인의 유전자를 훤히 들여다 볼 시대가 도래했다고 하자. 40세 이전에 폐암 걸릴 확률이 60%로 나타나는 사람은 20%로 나타나는 사람보다 생명보험 부담금이 많아 불만이겠지만 사태는 거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직장에서도 불이익 받을 것이 분명하다. 돈이 없어 머리를 좋게 해 주는 유전자, 특별한 재주를 발현시킬 유전자를 주입시키지 못한 부모의 아이는 늘 허드렛일로 지쳐야 할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리 실버가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소위 ‘좋은 유전자’로 치장된 선남 선녀들만의 선택적 결혼은 인류를 분화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자연인’들이여 낙담하지 말자. 환경은 변하는 법. 유전적으로 동일한 개체들은 미래 환경에 약할 가능성이 높다. 즉, ‘부유유전자 계층’이 ‘자연인’보다 도태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생명공학의 대안

그린피스와 같은 국제 환경단체는 생명공학을 핵 산업 반대와 같은 기조로 맹렬히 반대하고 있다. 생명공학을 어쩌면 핵보다 더 위험하다고 평가할 지 모른다. 생각하기도 끔찍한 13년 전의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 사고도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지고 있다. 세월이 지나면서 피폭자의 고통도 사라질 것이며 수 천년이 걸릴지 수 만년이 걸릴지 몰라도 오염 지역도 정상으로 회복될 것이다. 종말을 향한 핵무기의 자폭 행위가 연출되지 않는 한, 핵 사고로 인한 피해 지역은 국지적으로 그칠 공산이 크다. 그러나 생명공학으로 인한 피해는 다르다. 안전을 확신할 수 없다. 현재 이렇다 할 피해가 나타나지 않음으로, 나타난다고 해도 알레르기와 같이 미미한 정도에 지나지 않으므로, 앞으로 계속 안전할 것으로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생태계에 광범위하게 유포된 이후 문제가 확산될 경우, 아무도 피해자 목록에서 예외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 환경에 이상이 없던 조작된 유전자가 환경이 바뀌면 악성으로 돌변할 가능성을 현재 과학기술로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현재의 생명공학은 무수히 많은 유전자 조작된 생물을 생태계에 방출시키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 실버가 예상한대로 생명공학의 고삐를 아무도 잡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미 누차 경험했던 바와 같이, 유전자 조작의 도입 초기 사회의 지탄을 받을지라도 세월이 흘러가면 용인될 지 모른다. 1978년의 시험관 아기의 탄생이 당시 종교적으로 윤리적으로 많은 비난을 받아야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불임 부부의 복음으로 추앙 받고 있다. 대리모도 떳떳해진지 오래다. 지금은 반대 일색이지만 인간 복제 역시 불임 부부를 위한 선의의 프로그램으로 각광받을지 모른다. 막대한 돈, 광활한 면적, 엄청난 인원, 어마어마한 장비가 요구되는 핵 산업과 달리 생명공학은 세무 당국과 인공위성으로부터 충분히 자유로울 수 있다. 더구나 많은 인원도 필요 없다. 한 건만 잘 성사시키면 큰돈이 보장될 지 모르지 않은가.

지금 이 시간 누군가 어디에서 인간 복제 연구를 몰두할 지 모른다. 이미 미국의 한 물리학자는 인간 복제를 공언하고 나섰다(국민일보, 1998년 1월 8일). 미국에서 연구를 허용하지 않으면 통제가 없는 제 3 국 행을 고려하겠다고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그가 염두에 두는 제 3국은 어디일까? 아직 인간 복제에 대해 아무 대책 마련도 없는 한국은 아닐까?

8억의 제 3 세계 인구는 원래부터 굶주리지 않았다. 생명공학이 늦어 굶주리는 것도 아니다. 오랜 세월 자급자족하던 생활 터전을 제국주의자들이 「총, 균, 쇠」(제레드 다이아몬드, 1998년 문학사상사)로 파괴시키고 부존 자원을 강탈해 간 이후 굶주리게 된 것이다. 그들은 생명공학도, 제 2 녹색혁명도 원하지 않는다. 공급자에 충성하는 제 2 녹색혁명보다 남아 돌아가는 식량의 분배를 우선 요구한다. 생크림 파이를 집어던지며 노는 제국주의자의 직계 후손들은 선조들의 만행을 사죄하고 식량 분배부터 충실히 수행하면서 배상의 순서를 찾아야 할 것이다.

부자 늙은이를 양산할 생명공학이 이 시대의 대안이 아니다. 맑은 물 한 바가지를 구하지 못해 수인성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에게 유전자 조작과 복제가 복음일 수 있을까? 자급자족하며 건강했던 그들 본연의 환경을 복원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아들인지 딸인지 궁금해하던 산모는 최근 “우리 아이 괜찮아요?” 하고 묻는다고 한다. 유전병이나 선천성 기형이 그만큼 늘었기 때문이다. 이는 돌연변이 유전자가 증가했다는 반증이다. 이 시점에서 인류에게 생명공학이 시급한 사항일 수 없다. 생명공학보다 생명공학이 필요하다고 믿게 된 원인을 찾아 그 근본부터 해결하려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지구 환경이 오염된 원인, 한편에는 식량이 남아돌고 한편에는 굶주리는 원인, 듣도 보도 못한 질병과 과거의 질병이 창궐하는 근본 원인을 찾아 그 해결책을 먼저 모색해야 한다.

나가는 글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과 환경단체의 헌신적인 노력은 시민들의 환경 의식을 크게 끌어올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정부나 기업에서 어떤 개발 계획을 발표하면 “그렇다면 환경은?” 하고 의아해 하는 시민이 늘어났으며, 환경단체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문제가 있는 계획의 취소를 정당하게 요구하고 아울러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성숙한 시민운동을 전개해 왔다. 풀어가야 할 환경문제가 아직도 산적되어 있지만 환경운동은 이제 체계를 잡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서구 환경단체에서 시민운동의 주요 의제로 생명공학의 윤리 및 안전 문제를 부각시키는 바와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생명공학을 환경운동의 차원에서 대처해야 옳다고 믿지만, 아직 이렇다 할 문제가 발생되지 않은 시점에서 시민들은 생명공학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과학기술은 좋은 것으로 막연히 기대하고 거의 비판 없이 수용되는 분위기에서 생명공학의 문제를 거론하는 것조차 어색한 형편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인간 복제 염려하면서도 인간을 위한 동물 복제는 찬성하고, 식량 증산을 위해 생명공학을 육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할 가능성도 높다. 여기에 생명공학에 관한 시민운동의 어려움이 있다.

과학기술의 혜택이나 위험은 최종적으로 시민에게 돌아간다. 그러한데도 과학기술의 정책 결정에 시민들은 거의 참여할 수 없다. 생명공학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복제 양 돌리 사건이 발생된 이후 우리 사회에도 각성의 밝은 빛이 비치기 시작한다. 작년 가을 발족된 참여연대의 ‘과학기술 민주화를 위한 모임’은 시민의 참여 없이 정책 결정권자와 관련 전문가 위주만의 결정으로 정책이 기획되고 수행되는데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과학기술 정책 결정에 시민의 참여를 촉구하는 시민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는 1998년 6월 ‘인간 게놈과 인권에 관한 보편 선언’을 채택하고 1998년 11월에는 유전자 조작 식품의 안전과 생명윤리를 시민에게 직접 물어 시민의 의견을 모으는 참여 민주주의를 새롭게 모색하는 작업을 시도한 바 있다.

한국에도 예외 없이 유전자 조작된 농산물을 수출하고 있다는 다국적 곡물상 카길의 언론사 질의에 대한 답신이 한겨레 신문에 보도된 이후(한겨레, 1998년 8월 24일), 환경단체를 비롯한 시민 사회단체는 ‘생명안전?윤리 연대모임’(이후 연대모임)이라는 이름으로 모였다. 시민들의 환경 인식과 소비자 의식을 끌어올리는데 앞장서 온 환경단체와 소비자 운동단체에서 시민들의 생명공학 문제를 인식시키기 위해 뭉친 것이다. 연대모임은 이후 유전자 조작 식품의 수입을 규탄하고 유전자 조작으로 니코친 함양을 늘인 담배를 수출하는 미국 담배 회사를 성토하는 집회와 성명서를 채택 발표하였고, 생명공학의 윤리나 안전보다 육성에 중점을 두려는 생명공학육성법 개정안에 문제를 제기하고 그 대안을 제시한 토론회와 유전자 조작 식품 도입에 따른 소비자 권리에 관한 토론회 등, 생명공학의 안전성과 윤리 의식을 촉구하는 토론회를 연이어 개최하고 있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지만 연대모임의 노력에 힘입었는지 생명공학에 대한 시민 인식이 서서히 확산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흔히들 다음 세대를 위해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해서 거듭 발전된 과학기술은 편의를 넘어 이제 「위험사회」(울리히 벡, 1997년 새물결)를 유발시켰다. 과학기술은 언제까지의 후손을 후손이라 지칭하는가. 다음 세대를 말하는가 아니면 지구의 자원이 완전히 고갈되고 환경이 돌이킬 수 없도록 황폐된 이후의 후손까지 연장하는가. 후손은 다음 세대로 종료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최소한 우리가 위대한 조상이라 일컫는 시절 이상의 세월만큼 충분히 연장시켜야 한다. 지금 추구되는 과학기술은 후손의 기준으로 볼 때 과연 바람직할까? 환경적으로 건전하고 지속가능할까?

현재의 돈벌이를 위해 후손을 포함한 타자의 생명과 안전을 희생시킬 우려가 큰 과학기술은 전혀 윤리적일 수 없다. 그러한 과학기술의 맹목적 추구는 역사 앞에 부끄러울 줄 아는 선조가 취할 자세가 결코 아닐 것이다. 현재 다국적 기업에서, 대기업 집단에서, 그들의 지원을 받은 과학기술자들에 의해 경쟁적으로 수행되는 생명공학은 지속가능한 미래를 결코 보장하지 못한다. 위험사회를 앞당길 공산이 커질 따름인 것이다.

이 시간에도 전문가주의의 우산 속에서, 육성 일변도로, 돈벌이에 여념이 없는 생명공학에 어떻게 제동을 가해야 할까? 시급한 것은 연대모임과 같은 시민운동이다. 생명철학을 바탕으로 한 윤리와 안전 의식을 생명공학에 심어 주는 시민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이후 생명공학 정책 결정에 시민이 참여하는 참여민주주의가 이어져야 할 것이다.

후손은 20세기말부터 불어닥친 생명공학을 어떻게 평가할까? 우리의 의지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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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상 - 1957년 강화에서 태어나, 인하대 생물학과 및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했다.2004년 현재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풀꽃 세상을 위한 모임 대표로 있으며, 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한 환경운동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굴뚝새 한마리가 GNP에 미치는 영향>이 있으며, 공저로는 <생명의료윤리>, <진보의 패러독스>, <한국환경보고서 2000>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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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다오얀 > 전기는 역사의 법정이다
홍대용 - 위대한 한국인 5 위대한 한국인 5
김태준 / 한길사 / 1998년 2월
평점 :
품절


책표지에 표지문구로 써놓은 이 구절은 유감스럽게도 이 시리즈와는 모순된 것으로 보인다. 시리즈의 이름 자체가 '위대한 한국인'이라는 타이틀로 훌륭한 인물이라는 평가부터 내려놓고 있기 때문이다.

홍대용을 쓴 김태준은 30여년 홍대용을 연구한 학자이고 그런 만큼 글의 내용이나 깊이에 신뢰가 간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300년 전의 인물에 대한 전기를 쓰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의 증언을 들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오로지 의지할 만한 자료라고는 서지자료뿐이다.

홍대용 자신이 쓴 저작과 그의 주위 친구들이 그에 대한 평한 글들, 그와 서로 주고 받은 편지 등등으로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오래 전에 살았던 한 인물에 대한 평가는 아무래도 그 당시 사람들의 평가를 그대로 따오거나 글을 쓴 저자의 관점이 많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

이 글은 대체적으로 긍정 일색이다. 홍대용이 활동하던 시기는 영조와 정조에 걸친 시기다. 대체적으로 영조 시대다. 조선 후기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던 현군들이다. 당시 과거는 허학, 시험만을 위한 시험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해서 뜻있는 선비들은 과거를 포기하고 오롯하게 자신의 뜻을 닦기 위한 공부에만 전념하였다고 한다.

홍대용은 북학파를 이끈 유명한 실학자로 그 자신이 깊이 있는 경학자이기도 했고 혼천의 등을 만들 정도의 박학한 과학자이기 했으며 음율에도 능한 음악가이기도 했다.

그의 인생을 특징지우는 또 하나는 [건정동회우록]이라는 저술이다. 그가 연행을 가서 중국의 선비들과 의기상통하여 우정을 쌓은 기록이다. 고미숙은 [열하일기]를 논하면서 박지원이 '우정의 철학자'라고 평한 바 있지만 그 우정의 기원이야말로 홍대용에게 비롯한 것이라고 김태준은 말한다. [열하일기]는 박지원의 천재와 영감이 기록한 것이지만 그 동기는 솔찬하게 홍대용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조선이 아닌 중화사상에 물들어 있었을 중국의 선비들과 깊은 친교를 쌓았다 함은 홍대용의 비범한 능력을 보여주는 반증일 것이다.

이 책은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계보를 파악하는 데도 큰 도움을 준다. 30년이나 홍대용에 천학해온 학자의 내공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글이 나이드신 분의 예스런 느낌이 좀 많고 대체적으로 완벽한 사람이 없을진대 너무 완벽한 사람으로 서술해놓은 점은 좀 아쉽다.

중간중간 겹치는 부분이 좀 있다. 홍대용의 일생을 탄생부터 죽음까지 시간 흐름대로 서술하고 있다. 조선 후기 북학파의 계보나 관련성을 파악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책이다.

자료는 비교적 충실하게 정리되어 있지만 저자의 독창적인 관점이나 날카로운 평가는 없다. 평전이 객관적인 팩트에 근거해서 오늘날의 관점에서 냉철한 평가를 요한다면 이 책은 객관적인 팩트에서 멈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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