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 - 유교 문명의 새로운 구상과 실천 ㅣ 창비 한국사상선 14
정약용 지음, 백민정 편저 / 창비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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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학문이 그가 살았던 시대를 넘어 오늘의 우리에게까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면, 그것은 무엇 때문일까. 『정약용: 유교 문명의 새로운 구상과 실천』을 읽으며 그 이유를 생각했다. 정약용이 남긴 수많은 저술과 개혁 구상에서 발견한 것은 단순히 박식한 학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기존의 생각을 의심하고, 배운 것을 삶 속에서 실천하며,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를 현실의 변화로 이어 가려는 집요한 태도였다. 이 책은 정약용의 사상을 위대한 옛사람의 유산으로 박제하지 않고, 그가 어떤 문제의식 속에서 자신의 사상을 만들어 갔는지 따라가게 한다.
책에서 특히 주목한 부분은 정약용이 인간의 덕을 타고난 성품만으로 설명하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며 실천하는 과정에서 완성되는 것으로 보았다는 점이다. 이는 인간을 주어진 질서에 순응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주체로 바라보았다는 의미다. 이러한 관점은 자유의지와 책임을 강조하는 서학의 문제의식과 만나 더욱 깊어졌다. 시대와 철학적 배경에는 차이가 있지만, 인간이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선택에 책임져야 한다는 점에서 오늘날 실존주의 사상과도 맞닿는 부분이 있다고 느꼈다. 정약용의 학문은 과거의 경전을 해석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나아간다.
정약용의 실학자적 면모는 이러한 철학을 현실의 문제와 연결했다는 데서 더욱 뚜렷해진다. 그는 내면의 수양과 도덕적 언명만으로는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없다고 보았다. 덕은 실제 행동으로 드러나야 하며, 정치 역시 백성의 삶을 개선하는 결과로 증명되어야 한다. 『목민심서』와 『경세유표』를 비롯한 그의 저술에 담긴 행정과 제도의 개혁 구상은 위민사상이 단순한 연민이나 선의가 아니라 구체적인 사회적 실천이어야 함을 보여 준다. 특히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의 도덕성뿐 아니라 인재를 선발하고 행정을 운영하는 체계까지 고민했다는 점에서, 그의 사상은 개인의 선행을 넘어 공공성의 문제로 확장된다.
이 대목에서 오늘날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된다.위정자와 공직지들을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는가?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는 말이 실제 국민의 삶을 바꾸고 있는가? 행정의 절차와 실적, 조직의 논리가 사람의 어려움보다 앞서고 있지는 않은가? 정약용의 위민사상은 권력을 가진 사람의 선한 마음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정책의 결과를 살피고, 잘못된 제도를 고치며, 공적인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로 읽을 수 있다.
물론 정약용이 살았던 시대의 정치적 이상을 오늘날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의 문제의식은 지금도 현실적인 과제로 남아 있다. 정책을 평가할 때 국민이 실제로 경험하는 변화를 중요하게 여기고, 시민의 목소리가 의사결정에 반영되도록 하며, 사회적 약자가 제도 밖으로 밀려나지 않도록 살피는 일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 책의 의미는 정약용을 위대한 인물로 기억하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의 사상을 통해 우리 사회의 현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한다는 데 있다. 책을 읽고 감탄하는 것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 질문하고 실현 가능한 해결책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 정약용의 사상을 오늘에 이어 간다는 것은 결국 사람을 향한 학문과 책임 있는 실천을 우리의 현실 속에서 다시 시작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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