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
임성순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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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10년 장편소설 <컨설턴트>로 세계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바 있는 임성순 작가의 단편모음집,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을 소개해볼까합니다.




임성순 작가는 2018년 이 책의 제목이 된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로 제 9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바 있는데요, 동 작품 외에도 아래의 다섯편의 단편소설을 함께 묶어 이번에 단편소설모음집을 출간하였습니다.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단편소설에 대한 흥미로운 말을 합니다.

개인적인 견해일 뿐이지만 단편소설이란 기본적으로 도넛만큼이나 유통기한이 짧다 생각하는데 - 도넛의 유통기한은 일반적으로 열두 시간에서 스물네 시간 사이입니다 -

그 동안 써둔 단편집들이 게으른 악덕 점주 (작가)를 만나 묵은지 마냥 푹 익어가고 있던 것이 마음에 걸렸던 작가는 밀린 숙제를 하는 기분으로 기존 단편 4편에 두 편을 추가로 써서 이 책을 묶었다고 합니다.

아래 6편의 작품 중에 기존 단편 4편이 어떤 작품인지, 새로 쓴 작품이 어떤 것인지는 책을 다 읽고 작가의 말을 보시면 발견하시게 되는 기쁨이 있으실 거에요.



사실 전 주로 일본 작가들이나 영미작가들의 단편소설 모음집을 주로 즐겨 읽던 터라 우리나라 작가들의 단편소설집은 접해본 적이 잘 없는데요, 이 책의 경우 강렬한 제목에 끌려 읽게 되었어요.

게다가 소설을 통해 자본과 부조리에 잠식되어 무감해진 사회와 시스템, 그것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인간 군상을 풍자하고 있다는 광고 문구가 인상적이더라고요.

출판사의 책 소개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유쾌하고, 강렬하고, 절절하고, 기묘한 이야기의 향연은 우리가 외면해왔던 현실과 잊혀져가는 아픈 기억들을 끌어올린다. 블랙코미디, 디스토피아, 오컬트, 패러디 등 다양한 소재와 장르로 집약된 다채로운 단편들은 감각적인 위트와 풍자로 무장한 가운데 피할 수 없는 묵직한 한 방을 날리며 독자들의 뇌리에 강렬한 여운을 남길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위의 책 설명이 더 와닿게 느껴지는 거 같아요.

이 책은 우리 사회에서 외면하며 힘써 잊고 싶었던 현실들을 아프지만 끌어올리는 그런 절절하고 강렬함이 묻어나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소설을 읽다보면

저 깊은 우물 속 숨겨진 백골 시신을 함께 끌어올리고 있는 듯한 같은 으스스함과 기묘함이 함께합니다.


사실 블랙코미디, 디스토피아, 오컬트, 패러디 등의 장르가 무엇인지 제가 다 이해하진 못하지만,

그만큼 강렬하고 다양한 향기를 풍기는 작품들이 함께 엮여 있는 단편소설집이란 점에서 공감하고 있습니다.


이열치열이란 말도 있듯이, 아픈 현실에서 위로받고 싶을 땐 때론 그 아픈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거울 속 내 얼굴을 바라보듯 즉시해야하는 순간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이 소설책을 읽고 난 느낌도 그런 것 같아요.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선 아프지만 잠시 그 상처에 약을 뿌리는 과정도 필요하듯이,

책에 패러디되어있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상들을 바라보며 제 마음도 그렇게 아프고 여무는 과정을 함께하게 되는 듯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어온 작품은 세 작품이었습니다.



"몰:mall:沒"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

그리고

"계절의 끝"


그리고 이 세 작품은 모두 배경, 주제, 분위기에서 모두 다른 개성을 풍기며 독자를 사로잡습니다.



<몰:mall:沒>


"몰"이란 작품의 시작은 누이의 봉선화 꽃의 향기와 파스 향기가 어울어지며 시작됩니다.

누이라는 단어가 주는... 먹먹한 따스함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사실은 제목에서 그 주제를 숨기고 있습니다.

mall 그리고 沒이라는 동음이의어가 어떤 단어를 떠오르게 하시나요?

사회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분개하게 했던 두 개의 사건,

그 시점은 떨어져있으나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감을 안겨준

두 개의 '인재'를 주제로 작가는 이 이야기를 썼다고합니다.

그리고 작가의 말에도 밝혔듯,

혹시나 사고의 유가족들이 읽게 되었을 때 얻게될 상처를 고려하며...

또 본인이 글 쓰는 작가로 얼무나 무력하고 무능한가를 실감하게 한 소설이었다고 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각을 돌아돌아 쓰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신다고 하네요.


독자의 저의 생각도 같습니다.

이런 주제를 이런 단편소설이란 그릇에 훌륭하게 담아주셔서

우리 머리와 가슴에 더 오래도록 이 사고들을 기억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 속에서 느껴지는 콘크리트의 분진이 오래도록 희뿌옇게 제 가슴에

뿌연 앙금처럼 침잠해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

작품 중 이 대사가 이 작품을 설명해주고 있지 않은 가 싶습니다.

바스키아나 키스 해링까지는 그래도 뭐 따라갈 수 있었어. 매튜 바니나 로버트 고버부터는 이게 뭔가 싶더니 이제는 뭐가 뭔지 모르겠더라고

파텍 필립 시계를 손목에 찬 선배의 손에 이끌려,

신인 작가들을 발굴하여 몸 값을 부풀리며 자산가들의 자산 세탁을 위한 패키지를 마련해주는 에이전시를 운영하던 주인공.

모든게 인지상정이란 단어로 굴러가는 모습.

신인 작가에겐 화려한 데뷔를, 평론가에겐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할 기회를, 구매자에겐 돈을 안겨주는 성공의 공식 속에 살던 주인공은, 한 미술 창고의 개방과 함께 몰락의 길을 갑니다.

그리고 한국 현대미술을 세계시장에 선보이겠다는 포부와 함께 뉴욕으로 향하는데요,

그 끝은 어디일까요.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위기 속에서 자본과 다시금 손을 잡으며 "방탈출"에 성공하는 주인공의 스토리가 궁금하시다면

이 스토리를 추천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그로테스크하면서도 현대적이고 깜찍한 작품이 아니었나싶네요.

몰입감도 뒤로 갈수록 상당하여 숨을 멈추고 읽었던 것 같습니다.



<계절의 끝>

계절의 끝은 한 편의 지구대종말 영화를 보는 듯한 작품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이 단편에는 세계를 멋지게 구해주는 주인공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어둠 속에서 횃불이 타는 소리를 들으며 한 때 동거했던...

이 사태를 예견했던 과학자 애인을 추억하는

강인하면서도 연약한 여자 주인공만 있을 뿐입니다.



읽다보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고양이>란 소설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혼돈의 시기에 이 지구를 지배하게 되는 건 과연 누구일까요?

우리 인간이 이룩한 것들이 자연의 대재앙 앞에서는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져버릴까요?

계절의 끝에는 과연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단편 소설이기에 가능한 오픈 엔딩의 대재앙의 모습이 매력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이렇게 제 마음에 제일 들어왔던 세 작품을 간단히 소개해보았는데요,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이런 말을 합니다

아마 모르셨겠지만 이 소설집의 콘셉트는 ‘니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닥치는 대로 준비했어’입니다. 쓰는 사람은 재밌게 썼던 글이니 어쨌거나 재밌게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여섯 작품의 매력이 다 다르니 읽으시면서 어떤 작품이 제일 마음에 드실지 기대하며 읽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흡인력 넘치는 재치가 가득한 상상력 가득한 작품들.

긴 여운이 남는 단편소설집을 찾으신다면 추천드리고싶습니다.

*상기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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