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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잔혹사 - 도난과 추적, 회수, 그리고 끝내 사라진 그림들
샌디 네언 지음, 최규은 옮김 / 미래의창 / 2014년 6월
평점 :
품절
미술품 도난에 대한 내 첫인상은 지은이가 밝힌 것과 같이 범죄지만, 낭만적이고, 우아하고, 절도행위가 예술과 같다 라는 잘못된 생각이었다. 그 이유는 이 책의 후반부에도 등장하는 두 개의 영화 중 하나인 토마스크라운어페어 때문이었다. 이 영화는 DVD까지 소장하고 있을 정도로 그 당시 피어스브로스넌의 그 번뜩이는 두뇌와, 부, 대범함을 넋 놓고 좋아했었다. 꽤나 오래된 영화임에도 몇몇 부분은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을 정도인 걸 보면 얼마나 인상 깊게 봤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토마스크라운어페어 이후 그런류의 영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자 절도를 소재로 한 영화는 꽤나 많았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도둑들의 시점에서 그려졌고 보는 이들에게 마치 지키려는 자가 악인인 듯한 착각을 심어주곤 했다. 이러한 영화는 케이퍼 무비 하이스트 무비라는 장르로 분류되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데, 아마 앞서 고가의 예술품에서 금괴, 돈에 이르기까지 무언가를 훔치는 가운데 벌어지는 스릴과, 그 속에서 느껴지는 왠지 모를 통쾌함, 절도 과정의 극적인 요소 때문이 아닐까 싶다. 누구나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동경과 함께, 그것들을 지키려는 자들인 기득권들을 멋지게(?) 속여 넘기고 그것을 완벽하게 손에 쥐는 주인공에 대한 동경도 같이 있는 것이리라.
하지만 현실은 영화와 다르다. 이 책은 그것을 너무나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영국 테이트 미술관에서 실제로 윌리엄 터너의 유증작인 두 작품이 도난당하고 그 이후 회수과정을 기술한 책으로 지은이 샌디 네언은 현재 영국 국립 초상화 미술관 관장으로 테이트 미술관의 프로그램 기획부장인 지은이의 실제 체험담이 담겨 딱딱한 스토리를 예상했던 내 선입견을 깨고 오히려 소설 같은 긴장감을 주었다. 미술에 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어, 남들도 다 아는 유명 작가와 작품밖에 모르는 미술과 예술에 대한 문외한이 읽더라도 미술품의 가치를 충분히 느끼고 알 수 있도록 잘 기술해 놓아서 윌리엄 터너의 두 작품을 도난당하고 회수하기까지의 과정에서 지은이가 얼마나 가슴 졸였을지 조금은 감정 이입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딱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1부 후반, 윌리엄 터너 두 작품의 추적과 회수과정이 상세히 기술되지 않았다는 점이나, 그것은 지은이가 직접 관여한 초반부와는 수사상황이 달랐고 시간이 오래 지났다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바는 앞서 내가 가진 생각처럼 절도 행위를 예술처럼 생각하거나, 도둑들을 동경이라는 달콤한 시선으로 보는 것 자체이다. 1부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벌어진 미술품도난 사건들을 기록한 2부에서도, 미술품 도난에 대한 왜곡된 시선과 실제 범죄를 과장되게 보도하는 언론을 가장 경계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런 절도는 우리가 영화에서 접했던 것만큼 우아하고 예술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마약 매춘 인신매매 등 반드시 해결해야하는 범죄와 직접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며 그런 범죄 집단이 연루되지 않았더라도 미술품, 고가품 범죄는 단순히 돈이 목적으로, 영화에서처럼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혹은 예술품을 소장하기 위해 벌이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모나리자나 뭉크의 절규처럼 유명세를 타 한번쯤은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작품들도 범죄에 노출되었던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생각보다 미술관, 박물관은 보안에 취약하며 영화에서 봤을법한 기상천외한 방법은 필요도 없다는 사실은? 또한 미술품 범죄 후 범인에게 몸값(범인이 요청하는 댓가)을 지불하는 것이 불법이며, 회수 과정을 투명하게 하기 위해 수많은 승인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은?
이 책에서는 미술품 범죄의 다양한 실제 사례들 들고 있으며, 아직 한 점도 회수하지 못한 사례도 있다고 말한다.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작품으로 감상하지 못하고 욕망의 수단이나 소유물로 보려고 하는 개인과 집단이 있는 한 이런 범죄는 아마도 계속 일어날 것이라 생각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러한 범죄를 어떤 방법으로 예방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 이 책의 끝머리에는 미술품 도난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은이가 제시하는 몇몇 방법이 나타나있다. 이대로 실행된다면 지은이가 꿈꾸는 그런 미래가 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하세계와 연관된 지금의 기득권층이 기득권을 유지하는 한 이런 미래는 오지 않을 확률이 더 크다. 이 책의 마지막 대형 보험사의 수장인 로버트 히스콕스가 밝힌 것처럼 오늘날의 미술시장은 고가의 상품이 아무런 통제나 법적 제재 없이 거래되는 마지막 거대 시장이기 때문이다.
미술품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고, 박물관이나 유명 미술관에 가더라도 그저 훑듯이 휙휙 지나쳐온 내게 있어 이 책은 미술의 가치에 관해 알려주고 그 애정이 얼마나 깊은 것인지 알 수 있게 해준 책이었으며, 미술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해준 책이었다고 말 할 수 있겠다. 또한 그 모든 것들에 관심이 없더라도 읽어볼만 하다라고 말 할 수 있는 이유도 있는데 그건 아주 단순하게 재미. 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