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세상이 망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망하는 세상은 이미 내 앞에 있고 나는 불나방처럼 그 속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걸 그렇지만 세상이 망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일은 없다 나는 여전히 살아 있고 서서히 저물어 어둠이 여물 때에도 우리의 눈동자는 암전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나를 멈출 수 없고 우리가 우리를 막아서지 못하는 시간 속에서 나는 모루와 이월이 그랬던 것처럼 꿋꿋이 발자국을 찍기로 했다 어떤 모양의 어떤 형태로 남아 있을지 모름에도 단 한 가지는 분명하겠지 내가 다짐한 순간부터 우리의 흠집은 무늬가 된다 하나. 더딘 발걸음은 오히려 망해가는 세상에 등을 돌리게 한다 둘. 오래된 것은 세월만큼의 온기가 있다 낯익지만 낯선 말들 지키기 어려운 계명(誡命) 그래도 계명(鷄鳴)처럼 부르짖어야 하는 문장들 잊어버리게 되는 진실이 모래처럼 빠져나간다고 해도 꼭 쥔 손에는 땀에 붙어 남아 있는 것들이 있으니 걱정 말아라 너는 반드시 너에게 도착할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