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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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가족 소설은 그 끄트머리쯤에서 항상 우리들의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기곤 한다.

빅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또한 가족이야기를 담고 있는 500여페이지가 조금 넘는 장편 소설이다.

마치 60부작으로 끝나는 대하 드라마 같이 소설 또한 진하고 묵직한 작품을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편이다.

하지만 정작 이 소설의 내용은 두께에 비해 몇일간의 이야기와(한 사람의 일대기를 다루고도 남을 분량이지만)

묵직할 사이도 없이 터지는 유머때문에 묵직해질 사이도 없이 읽어 내려갔다.

멕시코인 특유의 여유와 웃음과 찐한 성적 농담과 표현까지..태양이 뜨거운 나라의 사람답게

그늘지고 우울함 보다는 툭 뱉는 욕 한마디로 무거움을 털어버리는 유쾌함이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인 빅엔젤은 일흔을 앞두고 자신이 암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어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 그의 생일을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가족들과 함께 보내며 잊지 못할

생일 파티를 하겠다는 일념으로 오래전부터 계획을 세우고 미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가족들에게

생일 파티에 참석하라는 연락은 넣었다. 그런데 생일 몇일전에 빅엔젤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게 되었고

어머니의 장례식을 미뤄서 자신의 생일 파티와 같이 치루고자 한다.

 

 

 

 





워낙 미국이라는 땅덩어리가 크다보니 장례식에 왔다가 생일 파티에 또 올수 있을 만큼의 거리가

못되기도 하고 다들 형편들이 그렇게 넉넉치 못하다보니 가족들은 다들 이 이상한 계획에 동의를 하게 된다.

동방예의지국인 우리네 사고방식으로는 뭔 어처구니 없는 일인가 싶다.

아무튼 이렇게 모인 가족들이 가관이다.

털어서 먼지 안나오는 사람 없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 식구들은 참 먼지가 많이 나온다.


배 다른 동생은 돌아가신 어머니와 사이가 안 좋았고,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듯 소외감을 느끼고 있고

이혼2번, 결혼 3번째인 동생도 참 못말리겠고, 불법체류자인 아들에, 미쳤나 싶을 정도로 메탈에 빠져

있는 손주에.. 안그래도 등장 인물들도 많아서 정신 바짝 차리고 읽고 있는데

이 정신없는 가족들의 정신 나간 이야기를 듣다 보면, 주인공인 빅 엔젤이 암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자라는 사실도 잊게 된다.

그래서 할머니의 죽음과 주인공의 불치병, 결혼생활에 대한 회의와 어려움, 이민자들의 힘겨움

가족들의 불화와 고충, 세상 모든 우환과 걱정거리도

이 시끌한 가족들의 유쾌함과 유머 앞에선 그다지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빅 엔젤은 결코 늦는 법이 없었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그는 가족들이 ‘멕시칸 타임’이라고 말하며 느릿하게 구는 꼴을 두고 수없이 싸워왔다. 가족들 때문에 미칠 지경이었다. 6시에 저녁을 먹자고 말을 해봤자, 저녁 식사는 9시까지 시작도 못할 게 뻔했다. 느지막이 모인 식구들은 오히려 자기네들이 일찍 온 것처럼 굴었다. 더 심하게는, 마치 이쪽이 문제라는 듯 “뭐가요?”라고 반문하곤 했다. 멕시코 사람이면서 왜 이러세요. 점심 먹자 하면 보통 다들 밤 10시쯤 모이는 거 아시면서.
--- p.14

그는 허공에 손을 저었다.
“미안하다.”
“그러니까 뭐가요, 아빠?”
“다 미안해.”
그는 눈을 뜨고 딸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네가 아기였을 적에, 내가 널 씻겨주었는데.”
미니는 눈이 따갑지 않은 베이비 샴푸를 짜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네 아버지였어. 그런데 지금은 네 아기가 되었구나.”
빅 엔젤은 훌쩍였다. 물론 딱 한 번뿐이었다.
그녀는 눈을 빠르게 깜박이고는 손바닥에 샴푸를 짰다.
“괜찮아요. 모두 다 괜찮다고요.”
그는 눈을 감고 딸의 손에 머리카락을 맡겼다. --- pp.310-311​



생각보다 두꺼워서 진도가 잘 나가진 않았지만, 남미의 정열과 세상사에 진지하는 않은

낙천적인 남미인의 기질 덕분에 무거운 주제임에도 비교적 가볍게 읽어 내려갔지만,

그럼에도 가족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어딘가 부족하고 모자르고, 교양없이 무식한듯 하지만 가족이기에 용서가 된다.

나이가 좀 더 들어서 마음이 좀 허하게 느껴지는 어느날..

나는 이 북적부적, 왁자지끌한 이 가족들이 그리워질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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