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일 때도 괜찮은 사람
권미선 지음 / 허밍버드 / 2019년 10월
평점 :
품절


 

가을이라기엔 아침 저녁으로 제법 쌀쌀하다.

오색으로 물들었던 단풍들이 다소 초췌한 색깔로 바뀌더니 만추의 끝에 달려있다.

저 잎이 낙엽이 되어 떨어질 때 쯤이면 겨울이 되어 있겠구나..

가을의 막바지에 서면 나는 항상 힘에 겹다.

정제되지 못한 내 감정들이 길 위를 뒹구는 낙엽같이 느껴질때 나는 에세이 집을 꺼내 읽곤 한다.

장편 소설처럼 첫페이지부터 차곡히 읽어나가지 않으면 어느 순간 맥락을 잃어버리는 소설이나 정신 바짝 차리고

읽지 않으면 뭔 소린지 금방 멍해버리는 인문 지식책과 다르게 에세이 집은 마음 내키는 대로 펼쳐서 읽어도 좋다.

길지 않은 글이지만 간혹 나의 시린 마음이 닿았을 때 왠지 모를 온기를 느낄때가 있다. 격한 공감과 감동으로 작은 등하나 켜진 듯한 느낌이 드는 그런 책을 만나면 시린 계절도 잠깐 잊게 된다.


얼마전 읽은 [혼자일때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에세이는 읽다가 작가의 약력을 다시 들춰보았다.


내가 이렇게 책 읽다고 작가의 약력을 들춰볼때는 책 내용이 좋거나 글을 너무 잘 썼을 때이다.

(가끔 넘 임펙트가 없는 책을 읽을때도 들춰보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작가의 이력은 간단했다.

미선 작가, 라디오 작가로 20여년 가까이 일을 해왔고 종전에 [아주 조금 울었다]라는 저서가

있다는 것 정도만이 내가 아는 전부다.

그럼에도 나는 권미선 작가가 왠지 친숙하게 느껴졌다.

그건 작가의 글속에 담긴 그 마음들이 꼭 내마음 같아서였다.

아픔과 슬픔, 상처..그 모든 것을 혼자서 견뎌내고 있는 책 속의 그대가 한때의 나같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나도 그랬다.

어느 순간 내가 한없이 초라하게 보잘 것 없이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극심한 상상실감으로 모든 것이 두려웠고 겨울잠을 자는 동물처럼 그렇게 몇 달 동안 수면을 취하고

깨어나면 주위가 화사한 봄이 되어 있듯 내 기억 속의 아픔도 자동 리셋 되었으며 하고 바랬던 적이 있다.

막막했던 시간을 견뎌내고 내가 좀 더 독해지고 여물어진 뒤 나는 혼자임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혼자일때 더욱 더 당당하고, 더욱 빛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마치 병균과 싸운 뒤 내 몸이 스스로 방어막을 구축하고 항체를 만들어 낸 것처럼..

혼자임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사랑 앞에서도 비굴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랑과 이별과 힘없이 무너져 내리는 아픔과 좌절을 느끼며 힘들어 하는 모든 이들에게 작지만

야무진 격려가 되는 책이었다. 깊어가는 가을날 스산한 바람에 흔들리는 마음 하나 꼭

잡아줄 에세이다.



행복 뒤에 오는 불행이 두려워

마음껏 기뻐하지도 못한 조심스러움,


끝을 알 수 없어 견딜 수 없는 막연함,

방황과 좌절의 시간


어느 날은 좋고 어느 날은 나쁘다.
어느 날은 엉망이고 어느 날은 참을 만하다
.
어느 날은 웃고 어느 날은 운다
.
어느 날은 별로고 어느 날은 괜찮다
.

그냥 그렇게 산다.


세상은  편이 아닌 날들이 많았고
믿었던 사람들은 쉽게 등을 보였다.
하고 싶은 일들은 잘되지 않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은 너무 많이 해야 했다.

우산살이 부러진 우산처럼
 짝만 남은 슬리퍼처럼
아무도 빌려 가지 않는 도서관의 인기 없는 책처럼
반송되어 돌아온 편지처럼
내가 쓸모없이 느껴질 
 마음은 버려진 종이같이 구깃구깃해졌다.

네가 나를 할퀴어도 내가 나를 할퀴지 않게  ,
너를 미워하지 않고

나를  많이 미워하는  그만두게  ,

내가 나에게 마음을 내어 주고
같이 가자며   옮겨 자리를 만들어  ,
생은 견딜 만해지고 나는 내가 괜찮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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