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여자들
설재인 지음 / 카멜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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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가 만든 여자들.. 이란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소설책은 낸것이 이번이 처음이라는 작가의 소개글을 읽고 솔직히 별 기대 하지

않고 읽기 시작했다.

첫 작품이니 뭐 그렇고 그렇겠지..라고 생각했던 나의 선입견이 정말 쓰잘데기 없는

편견이었구나 라는 생각을 한것 채 십여페이지를 넘기기도 전이었다.


그리고 찬찬히 다시 저자의 약력을 살펴보게 되었다.

아니 뭐 하던 사람인데 이렇게 글을 잼나게 쓰는거지? 첫 작품 맞아?


설재인 작가는 서울대 수학과를 졸업했다.

세상 어렵다는 서울대 그것도 수학과..라니 게다가 외고에서 수학교사로 일을 했다는 그녀의

이력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돌연 교사를 그만두고 무급의 복싱 선수가 되었다는 부분에서는

끄덕이던 고개가 민망할 정도로 갸우뚱해진다. 게다가 글을 쓰는 작가라니..


개연성이라고는 1도 없는 직업들의 휙휙 건너뛰는 그녀의 이력이 특이하다 못해

경이롭게 느껴진다.

문학과도 아니고 수학과이고 복싱 선수인데 글을 쓴다니.. 다시 읽어봐도 대단하다.

글러브를 낀 손으로 펜을 잡고 쓴 글이 이토록 매력적이라니 놀라웠다.


13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책은 한편 한편 세심하고 특별하고 기발하다.

무섭도록 섬뜩한 소설도 있고, 가슴이 뻑뻑할 정도로 공감되는 소설도 있고, 여리고 슬프다가

지독히 독하다.

핑크색이었다가 뻘건 색이었다가 검정색이었다가 파란색이기도 한 그녀의 소설들은

기존의 작가들에서 볼 수 없었던 신선함과 독창성이 있다.

문체는 간결하고 담백하다. 그래서 더욱 독한건 독하고 여린건 여리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났다.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도록 문손잡이를 아주 천천히 돌려 열고,

거실을 슬금슬금 걸어 안방 문 앞에 섰다.

귀를 문에 바짝 대고 숨을 참았는데, 방 안에서 두명의 여자가

내 멈춘 숨을 대신 쉬어 주는 것만 같았다.

숨소리는 빨랐고 웃음소리, 울음소리, 간지러운 소리, 예쁜 소리,

예뻐하는 소리, 희숙이 혜순이를 부르는 소리,

그리고 가끔은 무서운 소리도 났다.

-앤드 오브 더 로드웨이 중-


저는 차장님의 손끝을 보고 말았는데요.

손끝에 그런 게 있었어요.
검은 머리카락 몇 올이 달린 살가죽 같은 게요.
그 작은 조각이, 차장님의 손가락 끝에 달랑달랑 매달려 있었죠.

손톱 밑은 김장한 것마냥 약간 벌건 주황색으로 물들어 있었고요.
그러고 보니 파우치도 아까보다 불룩해져 있었어요.

-내가 만든 여자들 중-


김찬혁이 내 교복에 가래침을 뱉었다.

박호제가 헐리 돌려 봐, 쌍년아, 저번 축에서 춤추던 것처럼

돌려봐, 하고 웃었다.

너희 엄마가 학부모 상담와서 담임한테 꼬리 친다며, 하고 최가영이

내 머리를 몇 번씩 치기도 했다.

이은영은 내 이어폰을 빌려 가더니 남에게 팔아 버렸다.

-앨리 중-


임펙트가 강한 소설들이 뿜어내는 열기들에 말려들어 나는 13편의 소설들을

소리도 없이 읽고 있었다.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그녀의 소설들 속에는 아픔과 연민, 고통과 분노, 사랑과 좌절을

겪는 주인공을 만났다. 단편이 끝날때 마다  나는 그 주인공들의 그 다음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그 다음은? 지금은 잘 살고 있는거야? 괜찮아졌어? 결국 부장을 죽인거야?

너네 두 사람은 다시 만난거지? 아냐? ... 이야기의 뒤가 미치도록 궁금해지는 건

참 오랫만이다. 몰입도 최상의 상태로 읽었던 13편의 단편들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도

둥둥 거리며 내 머리 주변을 맴돈다.


노래는 내가 들어서 좋은 곡이 명곡이고

영화는 주인공이 누구든 상관없이 무조건 재미있어야 명화이고

책은 그 뒤가 궁금해서 안달복달 해야지 명작이라는

나의 지론에 미춰볼때..

설재인 작가의 소설집 '내가 만든 여자들'을 정말 잘 만든 명작이라고 나는 얘기하고 싶다.


무덥고 습했던 지난 몇주..

날씨에 지쳐 축쳐져 있던 나의 세포들을 빠릿하게 일어켜 세워줬던 소설이어다.

설재인 작가의 또 다른 소설을 목메며 기다리게 될 줄은 몰랐다.

부디 너무 오래 기다리지 않게 해줬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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