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국민의 탄생 - 근대 일본, 책 읽는 국민을 만들다
나가미네 시게토시 지음, 다지마 데쓰오.송태욱 옮김 / 푸른역사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설 연휴를 바삐 보낸 후 마지막 빨간 날의 대미를 교보문고에서 장식했다. 주말엔 한번씩 빠지지 않고 하는 일 중 서점 나들이가 있는데, 설이 낀 주말이라 내내 들르지 못하다가 어제 잠깐 짬이 나 가보게 된 것이다. 참고로, 서점 나들이와 도서관 서가 산책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 중 하나이다. 어쨌든 한 두 시간 정도 신간을 훑어보다가 몇 권의 책을 읽게 됐는데, 그 중 나가미네 시게토시가 쓴 <독서국민의 탄생>에 대해 몇 마디 적을까 한다. 


<독서국민의 탄생>은 제목 그대로 일본의 근대 역사에서 '독서국민'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 지를 실증적으로 밝히고 있는 책이다. 저자 나가미네 시게토시는 각종 통계자료와 삽화, 사진 등을 적절히 이용하면서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근대 국민 형성과정을 '독서'에 중점을 두고 이야기하고 있다.

책을 뽑아 읽게 된 이유를 들자면, 현재 일본의 '독서력'의 기원을 알 수 있을 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였는데, 이러한 궁금증은 책을 읽으며 많은 부분 해소할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은 일본 역시 출판계가 불황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880331 ) 과거 10년전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독서를 많이 하는 나라로 일본을 꼽았고, 왠만한 책들은 모두 번역이 될 만큼 탄탄한 독자층이 형성되어 있었다. 많은 이들은 이러한 일본의 '독서국민'이야 말로 일본의 경제를 일으킨 숨은 저력이라고 이야기한다.  


일본의 독서국민은 어떻게 탄생되었는가?

<독서국민의 탄생>은 근대 일본의 독서국민 탄생기이며 형성기인 메이지 30년대(1897년~1906년)에 주목해 일본의 독서 문화가 어떻게 정착되기 시작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근대에 등장한 신문, 잡지, 소설 등이 보급, 유통되기 시작하면서 전국 단위의 독서권이 형성되었고, 이를 철도의 등장과 함께 고찰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근대의 상징인 철도의 등장으로 이동하는 동안의 '무료함'이 탄생하면서 신문과 잡지, 소설은 급속도로 많은 독자층을 형성할 수 있었다. 이러한 무료함이 곧 상업화되면서 기차역, 기차내의 독서실, 피서지와 호텔 내의 독서실 등이 급속도로 생겨났다. 또 이때에는 개인들의 독서습관이 서로 부딪치는 일도 잦았다. 근대 이전의 독서방식인 음독습관이 공중공간에서 실례가 되기 시작했고, 이로인해 '묵독'이 새로운 독서습관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과거에는 공자왈, 맹자왈 하면서 공부하던 습관이며 음유시인이나 이야기꾼이 있었던 것과 비교하면, 근대를 거치면서 이같은 독서습관은 대중적(대중을 상대로 한) 영역에서 지극히 개인적 영역으로 침투해 들어간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대중공간이 점차 늘어나면서 가능해졌다. 대중공간에서 근대적 '개인'이 탄생한 것이다.


근대 국민 탄생을 위한 대대적인 노력

여기까지가 사회적, 산업적 변화에 따라 이루어진 독서국민의 탄생기라면, 책의 후반부는 일본이라는 근대국가가 만들어내고자 했던 독서국민을 다루고 있다. 청일전쟁(1894~1895) 이후 일본은 2등 국민이라는 컴플렉스의 벽을 넘을 수 있었고, 이때부터 1등 국민을 기치로 교육에 큰 관심을 쏟는다. 여기서 1등 국민은 새로운 활자매체에 익숙해야 하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국민이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독서 장치의 보급은 상업적으로 매력적인 일일 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하나의 과제가 된다.

일본은 근대 국민을 만들기 위해 신문 구독을 장려하고 관, 민은 대대적으로 신문종람소를 만든다. 또 교육을 마친 국민들의 지적 능력 저하를 막기 위해 도서관을 대대적으로 만들면서 도서관 수가 급증한다. 당시에는 이렇듯 민, 관이 각자의 필요성으로 독서국민을 만들기 위한 전방위 노력을 취하면서 독서 문화가 파급되고, 도서관이 대거 설립될 수 있었다. 도서관 이용자가 늘어나면서 공중의 개념이 생기고 근대적 독서습관이 전국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듯 근대 일본은 독서 습관을 몸에 밴 '독서국민'의 탄생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독서 국민의 탄생은 현재의 일본을 독서 강국으로 만든 토대가 되기도 한다. 저자는 책의 서문에서 근대 국가의 형성 과정을 인쇄매체의 보급과 연관시킨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를 언급하기도 하는데, 근대 국가, 국민의 형성을 신문, 소설과 같은 인쇄매체의 등장과 연결시키는 아이디어는 베네딕트 앤더슨에게서 많은 부분 빚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에 이르러서는 이같은 베네딕트 앤더슨의 아이디어는 상당 부분 일반화되어 있고 각 개별 국가에 대한 것이 아닌데다, <독서국민의 탄생>이 일본국민의 독서력의 형성과정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한 자료가 된다. 

★ 그밖의 책 
<상상의 공동체> 베네딕트 앤더슨 (나남, 2004년)    
<근대의 책 읽기>  천정환 (푸른역사, 2003년) 
문화변동과 사회적 소통 양식 전반의 변화를 이끈 원인인 동시에 그 결과였던, 책 읽기의 한국 근대사에 대한 기록. 20세기 초의 책 읽기가 걸어온 모험의 도정을 상세히 살펴보며, 책 읽기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담아냈다.

<상상의 공동체> 단 한 권으로 연구사에 큰 족적을 남긴 베네딕트 앤더슨의 말에 의하면, "한 나라의 국민이란 그 나라 신문이 배달되는 범위까지의 영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근대 국민의 탄생이 인쇄매체와의 지대한 연관성 속에 있음을 간파한 이 말이야말로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국가'와 '국민'이 무엇인가를 핵심적으로 요약하고 있다.

<독서국민의 탄생>은 이러한 국가, 국민의 형성기를 일본의 메이지 유신 30년의 상황을 통해 살펴보게 한다. 하지만 현재의 일본을 가능하게 한 독서국민은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바로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 때문이다. 신문의 등장으로 근대 국가/국민이 구성되었다면, 새로운 미디어는 이것을 해체하고 있는 것일까, 혹은 또다른 '상상의 공동체'를 예고하는 것일까. 지켜볼 일이다.
★ 출판사 리뷰
 
책 읽기, 멀찍이 앞선 이웃나라 일본

“책은 정신의 음식이다”(소크라테스), “방에 서적이 없는 것은 몸에 영혼이 없는 것과 같다”(키케로), “자손에게 만금을 물려준다 해도 그것은 한 권의 경전을 주는 것만 못하다.”(한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책은 언제나 명징한 삶을 위한 최고의 도우미 가운데 하나로 꼽혀왔다. 아니, 단순한 도우미가 아니다. 책은 인쇄물로 유통되는 형태의 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 삶 자체이자(클래런스 데이), 인간의 무수한 정신을 담은 그릇으로서 인간과 같은 존재라고 칭송받기까지 한다(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

책이 지니는 이 같은 중요성 때문인지 국가에서도 책 읽기를 ‘당위’의 차원에서 논하며 각종 지원책을 쏟아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독서는 각종 다른 오락거리에 밀려 문화생활의 후순위를 점하고 있다. 전체 인구의 40% 정도가 1년에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는 통계청의 ‘2009년 사회조사’ 결과는 이러한 우리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반면 이웃나라 일본은 어떤가. 초등학생의 연간 도서관 대출 건수가 1인 평균 35.9권(열흘에 한 권씩 읽음)으로 53년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한다(일본 문부과학성 사회교육조사). 너무나 대조적이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낳았는가. 인터넷 등으로 여가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40%), 시간이 부족해서(38.3%) 책을 읽지 않는다는 우리나라 국민(2008년 국민독서실태조사)과 출퇴근 시간에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일본 국민의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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