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주의력검사 CAT를 받았고 사실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24개의 결과 중 여덟 개가 저하로 나오고 경계가 두 개 있다. 그리고 중증도의 ADHD 진단을 받았다. 꽤 잘 하다가 후반부에서는 집중력이 흐트러져서 잘못 누른 적이 많긴 했다. 보통 사람들은 아니란 말이야? 정신과 선생님은 진료를 하면서 반사적으로 아유, 많이 힘들었겠다.라는 말을 했다. 나는 스스로 ADHD 의심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로 인해 힘든 점을 체감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런 것 또한 ADHD 환자의 특징 중에도 있었다. 자신의 상황을 체념해서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 사실 많은 정신질환 환자들이 그럴 것이다. 몸이 아픈 것이 아닌데 어떻게 이 병을 받아들이고 해석해야 하는지 약간 혼란스럽기도 하다.
정신증을 진단받으면 사람들은 어디까지가 <나>고 어디까지가 <증상>이었을까 하는 혼란에 빠진다고 한다. 책에 나온 여성 ADHD 환자들의 증상 중 나의 증상이거나 증상으로 의심되는 성격적 특성들은 이렇다.
•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지 못해 여러 번 말해줘야 한다.
• 준비물이나 숙제를 잊는 덜렁거리는 아이처럼 보인다.
• 친구의 바뀐 외형을 쉽게 눈치채지 못한다.
• 단짝의 기념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 말을 너무 많이 하는 바람에 자기중심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 다른 사람들과 다른 문제 해결 방식
• 다른 사람들과 다른 이상한 유머 감각
• 물건을 잘 잃어버린다.
• 공상에 빠진다.
• 사내아이 같은 행동을 한다.
• 정리를 못한다.
• 정돈되지 않은 공간에 익숙하다.
• 시간 관리를 못한다.
• 약속이나 제안에 충동적으로 대답한다.
등
내가 타인에게 무신경하고 자기중심적이었던 것이 내 성격이 아니고 병이었을 수도 있다니. 진짜 쩝이다. 쩝. (¯―¯٥) 책을 읽으면서도 진짜 내가 ADHD가 맞나 의심했는데 이렇게 하나하나 적어보니 한둘이 아니고 또 저것으로 인한 문제들까지 일으켰었던 게 떠오른다. 나 진짜 병 맞구나. 평소 성격이 너무 둔해서 스트레스에도 둔하고 심지어 물리적으로도 둔한 편이라 문제의식을 절대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그런데 다시 하나하나 짚어서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는 지나치게 과격하고 충동적인 행동들을 많이 했었고 남자아이처럼만 행동했었다. 어렸을 땐 과잉행동/충동형의 ADHD이다가 자라면서 사회적 성 역할을 체화하고 부주의형이 된 것 같기도 하다. 평소에 물건을 자주 잃어버렸고 우울이 심한 상태가 아닐 때도 내 카드 아빠 카드를 잃어버려서 크게 혼이 난 적도 많다. 휴대폰도 종종 잃어버려서 찾으러 다녔고 캐리어나 가방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자잘하게 물건을 두고 다녀서 외출 전에는 현관문을 여러 번 들락거리는 게 필수였고 회사를 다니면서는 외근할 때 팀원들이 휴대폰, 물통, 겉옷, 가방 등을 챙겨줬다. 또 남의 말의 요지를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하거나 남의 말을 집중을 못 해서 두 번 세 번 다시 묻는 경우도 허다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왕따를 당했던 적도 있는데 그건 정확히 다섯 번째 문항으로 인해서였다. 너무 과한 자신감으로 인해 말을 너무 많이 해서 자기중심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했었다. 방은 늘 어수선하고 물건을 어떻게 두어야 가장 효율적일까를 계산하다 실패하고 모든 물건이 눈에 보이게 두는 편이었다. 회사 책상도 마찬가지로 포스트잇과 자주 쓰는 케이블들이 그냥 책상 위에 정리되지 않은 채 늘어져있는데 내 딴엔 그게 정돈되어 있는 상태다. 대화를 통해 얻는 정보를 기억하는 것에 약해서 전화를 좋아하지 않고 친구든 뭐든 중요한 이야기면 꼭 카톡이나 문자로 해서 글로 남기고 나중에 바로 찾아볼 수 있게 했다. 남들은 중요한 얘기를 왜 그렇게 하냐고 했지만 나는 전화로 하면 절대 기억을 못 했다. 얼굴을 보고 하는 것도 기억 못 하는데 전화? 그건 더 기억을 못 한다. 충동적으로 빠르게 남의 제안에 대답하느라 약속이 꼬여서 수습했던 경험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약속 잡는 것도 너무 어려웠다. 모든 일을 시작할 때 일의 중요도와 순서를 판단하기 어려워서 시간표를 미리 짜두는데 그걸 완성하는 시간조차 남들에 비해 너무 오래 걸려서 시간표를 짜는 것을 포기하고 아무거나 끌리는 대로 시작하고는 했다. 어이없지, 이게 다 내 병 때문이었다니. 나는 원래 그런 애인 줄로만 알았다. 근데 이게 병이라니.
대학을 다니면서 카드를 한참 잃어버리던 시절에는 대학생활도 힘들었고 스스로 나를 관리하는 것도 힘들었고 돈을 충동적으로 썼다. 그로 인해서 우울이 크게 왔던 걸까; 아무튼 그로 인해서 휴학도 했었지만 복학 해서도 카드를 잃어버리고 충동적으로 돈을 쓰고 우울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땐 존 나 힘들었다. 근데 이게 다 ADHD 때문이었다니, 좀 어이없다. 이렇게 다 적고 보니 정말 이 모든 것이 ADHD 때문이었던 것 같고 내가 대학생활을 그딴 식으로 망쳤던 것도 설명이 된다. 다들 내 대학 성적을 보고 많이 놀았겠거니 하는데 나는 하나도 안 놀았고 어쩌다 알 수 없는 우울에 빠져서 아무것도 못 하고 방 밖으로 못 나갔기 때문이다. 근데 그 원인이 ADHD 때문이라면 정말 모든 의문이 풀린다. 나는 그간 학교가 멀어서 환경에 적응이 어려워서 그랬나 보다. 했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기도 하지만 많이 어이없고 짜증도 난다. 책에서도 말했듯이 그동안 내가 ADHD인 걸 모르고 방치된 채로 남들처럼 살지 못하면서 버려진 시간들이 아깝다.
지금은 콘서타 18mg을 오전에 한 번 복용하고 있다. 그러면 아침에 머리가 팽팽 돌아서 정신없이 많은 일을 처리한다. 오후가 되면 집중력이 좀 떨어지는데 그전에 몰아쳤던 것 때문인지 너무너무 지친다. 엄마는 정신과 약이 처음에는 적응 기간이 필요해서 피곤하고 졸리고 지지치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그런 이유로 이번 주에는 운동을 단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아무튼 본인이 ADHD라고 의심되거나 ADHD 진단을 받은 <여성>이라면 이 책을 꼭꼭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