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사마천 > 사람은 모두 늙어간다 조직 또한 마찬가지다
조직의 성쇠 - 무엇이 기업의 운명을 결정하는가?
사카이야 다이치 지음, 김순호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2년 10월
평점 :
절판


조직도 유기체라 성공과 쇠락을 모두 겪게 된다.
올라가는 성공의 모습만 있으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조직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쇠락 또한 겪게 된다. 견고하게 보이던 대 제국도 무너지고
기업도 도산하며 허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한 둘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조직의 성쇠에 대한 법칙은 없을까?
거창하게 전세계의 문명을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 한것이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라면
이 책 조직의 성쇠에서 사카이야 다이치 또한 일본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나름의 답을 찾아 제시한다.
세계적 대석학의 책과 다른 이 책의 매력은 무엇일까 돌아보면
나름대로 일본인들의 고유한 민족성이 가진 한계를 드러냈다는 점이다.
자신들이 잘 아는 역사의 위인들이나 사건들에서 나타나는 문제는
곧 민족성 불변의 원칙에 따라 현재진행형의 이야기가 된다.

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을 침공해야 했을까?
이는 도요토미의 세력이 지속적으로 성장의 단물에 매료된 중독증 환자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성장을 지속해야만 따르는 부하들에게 당근을 계속 나누어 줄 수 있었기에
이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라도 성장은 해야 한다. 그래서 일본이라는 섬나라가 다 통일되니
밖으로 나갈 수 밖에 없었다.
반면 도쿠가와는 이러한 조직 구성의 문제점을 잘 알고 성장지향적 인물들을 과감히 내친다.
가장 가깝고 충성스러웠던 인물들까지 비정하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렇게 해야만 했다.

대 러시아제국의 해군을 겪었던 쓰시마해전의 성과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일본의 해군은
태평양 전쟁에서 미드웨이 해전에서 참패를 겪게 된다.
과거의 성장 체험에 매몰되어 자기 변혁의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릇 신을 모시고 사는 사회는 변화가 적다.
모든 것을 신의 탓으로 돌리기에 책임지려는 사람도 적다.
결과적으로 자율성은 떨어지고 개선의 노력이 없기에 변화의 움직임 또한 무척 적다.
이러한 사회에서 변화를 외치는 사람은 왕따가 된다.
바로 우리 한반도 건너편의 사회가 그렇다. 살아있는 신을 모시기에 그들은
자신이 하는 노력이 과연 유용한 것인가 물음을 갖지 못하고 그들의 피라미드를 쌓고 있다.

쇠퇴하는 산업을 붙들고 보상만 외치며 물고 늘어지는 경우도 있다.
한국의 농업이 지금 겪고 있는 문제를 일본은 조금 더 앞에서 겪었는데
그 예로 들고 있는 것이 바로 석탄산업이다.
영국도 마찬가지인데 결론은 뻔히 나와 있다. 대처의 승리, 석탄산업의 몰락은
영국,일본,한국 모두 똑 같이 발생한 현상이고 타 산업들에도 고스란히 적용될 것이다.

독서는 창조적이어야 하는데 아마 이 책에서 발견되는 현상들 또한
한국에도 고스란히 나올 수 있는 주제들일 것이다.
독서를 조금 더 나아가면 성쇠에서 나온 교훈으로 성장을 조금도 오래 끌고
쇠퇴를 조금 더 늦출 수 있는 노하우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적 성쇠의 법칙을 기대하며 독서를 계속 발전시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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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따뜻한지식 > 성경으로 세상을 보는 방법을 알게된다!
그리스도인의 비전
리차드 미들톤 & 브라이안 왈쉬 지음, 황영철 옮김 / IVP / 198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세계관이란 무엇이고, 어떠한 조건들(현실성, 내적인 통일성, 개방성)을 갖추어야 하는지 언급한 후, 그러한 세계관 중 하나로 기독교 세계관을 제시한다. 그리고, 왜 기독교적 세계관이어야 하는지 현대의 많은 세계관들과 대조하며 논지를 진행시키고 있다.

이 책은 그리 만만한 책은 아니다. 내용이 딱딱하고 어려워서라기 보다는, 지적으로 정직하게 이 책을 읽으면, 자신의 세계관을 제고하고 ‘성경에 뿌리를 둔 기독교적 세계관’을 쉽게 외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기독교적 세계관의 내용으로‘창조·타락·구속’을 말한다. 창조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응답이고, 지혜는 세상을 설계하시고 명하신 방식으로 볼 때, 창조는 말씀과 지혜로 되었고,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우주적인 창조의 법에 대한 응답으로써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우상 숭배는 하나님의 형상 노릇을 하라는 인간의 참된 사명에 대한 불법적인 대안으로 거짓된 경배에 의하여 왜곡된 나머지 더 이상 하나님의 표준들을 반영하지 못하는 삶이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부르셨기에 자기 혼자서만은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타락.. 변화된 것은 그 흐름의 방향이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통하여 하시는 일은 우리의 삶의 흐름의 방향을 다시 정해주는 것이다. 구속이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우리의 순종을 회복시키시는 것으로서, 이것은 본질적으로 우리를 재창조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원래 의도된 대로의 우리가 될 수 있도록!

문제는 기독교적인 의사, 농부, 사업가, 음악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매일의 일 속에 (직업과 신앙이) 통합된 그리스도인으로 참여하지 못하기에, 기독교적인 대안을 말 할 수 없고,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긴 하면서도, 그들의 신앙으로 자기들의 직업을 변혁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들의 직업에 신앙을 첨가시키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다. 이원론적인 틀은 결코 그런 변혁을 위한 틀을 제공하지 못한다.

학문은 합리적 인간이 수행하는 종교적으로 중립적인 활동이 아님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기독교적으로 학문한다는 것은, 우리의 신앙이 우리의 연구를 인도하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한다는 것이다. 간과하지 말 것은, 피조 세계를 위한 하나님의 배열은 논리로 환원될 수 없다는 것이다. 논리를 모든 피조 세계를 위한 규범의 수준으로까지 격상시키는 것은, 암암리에 논리의 자율성을 주장하는 것이며 모든 것들이 (논리적 사유를 포함한)하나님의 법에 종속적임을 부인하는 것이다.

생각을 하려면, 우리에게는 출발점, 곧 생각을 지탱하기 위한 곳이 있어야 한다. 난 이 책을 통하여, 내 생각의 기반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알았다. 또한, 기독교가 내 안에서만 진리가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진리라는 것에 대해 확신하게 되었다. 진정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성경의 세계관을 채택하는 신앙인이 된다는 것이라고 한다. 한 마음과 한 정신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전 영역의 주인으로 인정하라는 명령을 따르려 한다.

세계관은 현실에 의하여 끊임없이 가르침을 받아야하며,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계시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증가함에 따라 우리의 세계관도 조정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말이 충격적이다.

기독교가 사회와 문화 속에서 구현되는 것..! 나 또한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그 길을 감당할 것이다. 나의 삶이 복음에 대해 질투심을 불러일으키게 하고 싶다.

어떻게 이 세상 속에서 살면서도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을 것인가? '더욱 포괄적이고 통찰력 있는 시각'이 필요하고, 성경적 세계관에 입각한 하나님 나라의 시각으로서, 그리스도에 의하여 구속됨이 필요함을 알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일하시는 성령께서는 우리를 새로운 시각과 새로운 순종으로 이끌 수 있음을 믿는다.

나의 세계관을 내보이고 공개적으로 도전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려 한다. 이 책은 내가 충분히 그럴 수 있고, 그래야 함을 알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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