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 18 - 장 담그는 가을날
허영만 지음 / 김영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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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행본 식객을 끊을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자면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단순히 봉주와 성찬의 운암정운영권을 두고 둘러 싼 대결구도가 중심이 아니라 훌륭한 식재료를 찾아 얼마나 이 산천지를 두로 돌아다니는 지 작고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구석구석을 실감나는 그림과 에피소드로 펼쳐서 보여준다는 점, 그리고 음식을 두고 떠오르는 사람들과 그들과 나눈 삶과 눈물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에 식객은 문화와 사람을 이 한 권에 풍성하게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나이가 들면서 더욱 좋아지는 것이 있는데 그 중의 한 가지가 아버지인 것 같다. 말씀도 별로 없으시고 자상함과는 거리가 먼 아버지가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이해가 되는 것은 내가 철이 들어간다는 것일까! 그래서 유독 아버지에 대한 일화가 많은 이 18권이 특별히 애틋하다.


86 화-말날에서 몇 년 전 민속촌에 있는 전통장담그기 행사에 가서 보았던 햇볕 쨍쨍 내리쬐는 넓은 옹기마당이 떠올랐다. TV에서 촬영 왔다며 직접 메주를 큰 독에 넣으라고 해서 쑥스러워하시면서도 진지하게 메주를 넣으시던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고 우리도 이렇게 넓은 마당이 있는 집이 있다면 직접 된장, 간장을 담글 수 있을 텐데 하시던 푸념도 기억이 난다.


  

음 식의 기본이 되는 발효음식인 된장에 대한 일화를 보며 전 재산을 전통장 만들기 사업을 위해 땅을 사고 옹기를 사는 데 털어버린 외곬의 아버지의 뜻에 반대하던 자식들이 조금씩 그 연로하신 아버지께 가까이 다가가는 모습이 짠하면서도 보기 좋았다. 쉽고 빠르게,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해 내는 것만이 능력으로 인정받는 이 세태와 비교하면 아버지와 자식들 간의 갈등은 너무나 당연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것에 대한 깊은 애정과 자긍심을 갖고 있는 아버지의 뜻을 받드는 것은 역시 이윤추구와는 별 관계가 없는 같은 피를 이어받은 자식들 밖에 없는 것 같다.



그 리고 마지막에 나온 90화- 아버지의 바다는 만화로 읽어도 너무나 아픈 이야기였다. 작가가 실제로 2003년에 처음 만난 선재도에 사는 김연옥씨와 그의 장님이 된 아버지의 실화를 2007년에야 세상에 알릴 수 있었는데 대장장이, 목수, 뻥튀기장수 등 온갖 밥벌이를 하며 가장으로 살아가던 아버지가 실명을 하고나서부터는 바다로 나가서 어부가 되었다는 이 이야기는 그 아버지의 뒷모습 한 컷이 전해주는 쓸쓸함과 무거운 짐을 멘 힘겨운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지금 경제위기 속에서 더더욱 쪼그라드는 늙으신 부모님의 힘없는 얼굴이 떠오르게 만들었다.



<나는 어부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라는 김연옥씨의 책을 꼭 사서 읽어보고 싶다. 코에 호스를 꽂고 누워있는 아버지 옆에 죄책감을 안고 서 있던 그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바로‘갱국’이었다. 나는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지만 갯벌에서 하나하나 캐 낸 그 작디작은 갱을 망치로 하나하나 부수어 속 알맹이만 꺼내 국을 만들어야지만 먹을 수 있는 그 갱국을 먹을 때마다 눈 먼 아버지가 자식을 위해 흘린 땀과 눈물이 생각이 나서 제대로 먹을 수 있을는지...


이 렇게 찡한 이야기 밖엔 웃으면서 시끌벅적하게 나눌 수 있는 이야기도 들어 있어서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아기 다다시의 ‘신의 물방울’만큼 자세하고 현란하지는 않지만 와인에 대한 기본지식과 맘 편히 즐길 수 있는 초행길을 알려준 89화-불고기 그리고 와인도 재미있을 것이다. 하지만 18권은 단연 감동이 우선순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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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15 - 돼지고기 열전
허영만 지음 / 김영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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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장동 시장에 가 본 기억이 있는데 어려서인지 어머니의 손을 잡고 가서인지 식객에 나온 것처럼 그렇게 ‘살벌한’ 느낌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런데 페이지를 넘길수록 절대 사진을 찍을 수 없고 조선시대의 백정의 후예란 피해의식이 알게 모르게 저변에 깔려 있는 음산한 느낌에 돼지역시 소만큼이나 다루기 힘든 소재란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가장 놀란 점은 소를 잡을 때와 돼지를 잡을 때의 차이였다. 소는 도살장에 데려가면 처음에는 죽지 않으려 반항을 하다가 곧 그 순응하며 죽을 줄 알면서도 도살장 안으로 순순히 걸어 들어가는 반면 돼지는 죽는 순간까지‘발악’을 하며 꽥꽥 울어댄다는 것이다. 끝까지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돼지가 전기충격에 의해 실신을 하게 되면 돼지의 멱을 따서 피를 쏟아낸다는 사실은 놀라움을 지나쳐 이제 제대로 살벌함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 래서 매일 죽음을 대하는 그 도축업자들은 표정도 손가락 마디로 모두 험하게 되어 버릴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허영만작가는 자신의 직업을 세상에 드러내길 꺼려하는 그들에 대해 고마움을 갖고 글을 쓴 것 같다. 그 고충을 직접 보며 다소 느꼈기 때문이겠는데 나 역시 삼겹살집에서 1인분에 몇 천 원씩 받는 고깃값에만 관심을 가졌지 돼지의 생목숨을 끊어서 가공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까맣게 모르고 지내다가 15권을 보면서 처음으로 그 삶의 애환을 느낄 수 있었다.


73- 순대일기는 가벼우면서도 우리나라의 순대족보를 다 훑은 것 마냥 신이 났다. 어린시절, 어머니가 순대장사를 하는 친구를 기억한다. 그 친구는 늘 말이 없고 자신의 집에도 놀러오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집에 놀라오라는 것도 늘 거절하기 일쑤였다. 참 사교성이 없는 녀석이라 생각해도 하굣길엔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같이 가던 친구였다. 그런데 그 이유를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자신의 몸에서,집안 곳곳에 배여있는 순대냄새를 친구들에게 창피했던 것이었다. 집에서 순대를 직접 만들어 나가 장사를 하던 얼굴도 모르는 그 친구의 어머니와 늘 내성적이었던 그 친구가 오늘 새삼 떠오른다. 

 

 

순대의 역사부터 함경도 아바이순대, 그리고 무엇보다 가끔씩 먹어왔던 ‘당면순대’ 만드는 과정이 어찌나 그림에 피가 튀는지 사실은 보기가 힘들 정도로 리얼했다. 그것도 외국인 노동자의 손으로 만들어지는 공장을 보니 그렇게 뜨끈뜨끈하게 먹음직스럽게 나오는 순대가 모두 이런 공통적인 과정을 거쳐 나온다고 생각하니 좀처럼 입맛이 살아나지 않았다. 모르는 것이 약이라고 가감 없이 실제의 모습을 들여다보니 어째 중국집 주방을 본 것처럼 식욕이 없어져버렸다.


오 래 전부터 먹어 온 음식에 대해 더 특별한 것만 찾고 새로운 퓨전음식을 찾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는데 이제는 점점 우리 고유의 음식이 귀해지고 사라지기 일보직전에 있다는 위기감을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을 내어 요리를 배우고 싶은 이유가 처음에는 단순히 나중에 사람들이 편안하고 즐겁게 찾는 음식점을 내고 싶은 생각에서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우리 음식은 곧 우리 생명 자체인 것 같다. 사라지기 전에 그 맥을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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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14 - 김치찌개 맛있게 만들기
허영만 지음 / 김영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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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가는 대중음식점에서 맛 볼 수 없는 귀한 ‘은대구’요리가 2008년이 막바지에 이른 요즘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대구도 귀한데 은대구를 먹고 싶다면 삼청각에 다시 가야하나?


그 래서 더욱 66- 대구에 관심이 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흡사 어디선가 들어본 스토리가 나오니 내심 속은 기분도 없지 않았다. 여름향기에서 심장이식을 받은 여자가 그 심장의 주인이 사귀었던 남자랑 사랑에 빠진다는 그 이야기처럼 주인공이 대구를 좋아하던 심장기증자의 고향에 찾아가 이곳 저곳의 대구를 먹어보아도 항상 ‘2% 부족해!’ 라며 얄미운 의미심장한 소리를 해 대는 통에 그 마을 대구음식점 아주머니의 자손심을 팍팍 긁어 놓다가 마침내 그 죽은 심장기증자의 어머니가 끓여준 대구를 먹고 완벽하다는 말을 남긴 채 떠난다는 결말은 역시 개운치가 않다. 하지만 대구의 시원한 모습과 그림에서 보여주는 음식점거리는 무척이나 가슴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14 권에서 가장 탄복할 만한 것은 68-김이었다. 김이 이렇게 복잡하고도 사람의 정성을 먹고 탄생하는 지는 꿈에도 몰랐다. 특히 지주식과 부류식으로 나뉘어 생산되는 김 양식장의 모습은 정말 가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서해안에서 질 좋은 김을 생산하기 위해 김 양식이 그렇게 많은 과정을 거쳐 힘들게 행해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왜 일본관광객들이 한국에만 오면 그 흔한 김을 사가느라 난리를 치는 지 이해가 되지 않았었는데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서로 품질 좋은 김을 확보하기 위해 유통업자들끼리 치열하게 신경전을 펼치는 모습하며 양식업자들이 실패를 한 후 마지막까지 남은 한 가정에서 기르는 김에는 절대로 파래가 끼지 않는다는 점까지 매우 사실적이면서 현장감 넘치는 현지의 모습을 보았다.

 

쉽고 편하게 돈을 버는 일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 참이 먼, 그래서 어리석다는 비웃음을 사기에 충분한 그 험한 '일'을 노부부가 즐겁게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농담을 주고 받는 모습에서 행복을 찾고 풍요로움을 찾아 처와 자식을 먼 타국에 보내 놓고 홀로 지쳐가는 '기러기가장들'이 떠올랐다. 나는 아직도 세상살이를 몰라도 한 참을 몰라서 그런지 가족이란 아무래도 같이 잠을 자고 밥을 먹고 다투는 애환을 고스란히 한 통에 얽혀 돌아가는 삶을 나누는 것이어야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강한 바람이 불수록 더욱 강해지는 가족의 연대의식이 너무나 아름답고 숭고하게 다가왔다.



너무 편하게 아무렇게나 밥에 싸서 먹고 간장에 찍어 먹고 기름에 구워먹는 김 한 장을 산지에서는 바람 좋은 곳에 한 장 한 장 발에 널어 말리다가 강풍이 불자 다시 돌아가 흩어진 그 김발을 주워주는 모습은 왠지 마음을 찡하게 했다. 어민들이 얼마나 정성을 기울여 만드는지 처음으로 그 모습을 보니 감사한 마음이 저절로 생겼다.  


편하게 봉지를 뜯어 아무렇게나 구겨 먹을 수 있는 하찮은 음식이 아니라 한 장 한 장 향기를 맡아가며 먹는 것이 제대로 먹는 것이라는 것도 새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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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9 - 홍어를 찾아서
허영만 지음 / 김영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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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객을 읽으면 마음이 너그러워지는 것 같다. 만화라서 시간 때우는 정도, 기분 전환하는 정도가 아니라 이상스럽게도 비판과 정죄로 날카롭게 내가 속해있는 사회와 국가를 보던 눈이 옛 생각과 사람들과의 추억에 젖어 촉촉하게 빛이 나는 것 같다.



9권은 특히 재미있는 내용이 많아서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데 41-갓김치와 42-홍어를 찾아서, 43-한과 편이 연속으로 상념에 젖어 내 눈을 쉬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갓김치는 허영만작가의 고향의 대표음식이라 무엇보다도 관심과 신뢰가 갔던 것은 사실이다. 서울태생이라 늘 배추김치 밖에 모르던 내가 지방에 내려가 사는 동안 라면을 먹을 때 옆방에 살던 후배가 여수 어머니가 부쳐 준 갓김치라며 자랑스럽게 김치를 펼쳐 놓고 먹으라고 권했다. 집 음식이 그립던 나는 후배를 믿고 이상한 풀잎처럼 생긴 그 김치를 먹었는데…….맛이 예상과 전혀 달랐다. 우리집에서 늘 먹어왔던 배추김치보다 훨씬 짜고 젓갈냄새가 상당히 났다. 무엇보다도 매운 맛이 강해 단 맛을 좋아하는 내 입맛엔 김치 없이 라면만 먹는 것이 훨씬 편했다.

 

그런데 서울에 돌아와서는 이상하게도 그 갓김치가 먹고 싶어졌다. 항암효과가 있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가끔 갓의 맵고 쌉싸름한 맛과 향이 정이 많던 후배의 얼굴과 함께 그리웠던 것 같다. 여수 돌산갓은 매우 귀한 것이라 들었는데 9권에서 보면서 제대로 된 돌산갓김치를 꼭 한 번 먹고 싶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직 한 번도 여수를 가 본 경험이 없는데 취재일기를 보며 ‘여수’의 바닷바람과 짭짜름한 냄새도 직접 맡으면서 갓김치를 먹고 싶어졌다.




식객은 맛을 찾아 자꾸 돌아다닌다. 나처럼 한 곳에 머물러 있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사람에겐 딱 좋은 삶인데 그런 면에서 허영만작가가 정말 부럽기 그지없다. 게다가 2년 전부터 꼭 가보고 싶은 국내여행지 1위에 올려놓고 있는 흑산도에 갔다는 것을 42- 홍어를 찾아서를 통해 눈으로 보면서는 부러움이 지나쳐 질투가 날 지경이었다. 그 높은 마을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그림을 한 참을 멍하니 보고 또 보았다. 마음속으로 흑산도의 풍경을 상상해 보았다. 오밀조밀하게 들어선 집들과 전봇대, 그리고 자유롭게 싸다니는 동네 강아지들까지 도시와 달리 숨통이 확 트일 것만 같았다. 홍어와 가오리의 구분법은 참으로 유용했다. 명절 때마다 할아버지께 바칠(?) 홍어를 사느라 아버지와 수산시장을 돌아다녀보면 내 눈에 그게 다 그냥 회색빛 가오리처럼 보였고 그 비싼 홍어를 집에 사 들고 와서 말리는 동안 실로 엄청 대단한 냄새가 나서 상한 홍어를 사 왔다며 어머니께서 무척 구박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림을 여러 번 비교해서 보면서 제대로 배워서 내년 설에는 상인들에게 속지 않고 좋은 홍어를 골라서 할아버지께 드려야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홍어 중에서도 흑산도홍어를 최고로 친 다는 것은 익히 들은 바지만 그 값이 엄청나게 비싸서 아직 한 번도 흑산도홍어는 본 기억조차 없다. 그런데 그 맛이 다른 홍어가 따라갈 수가 없을 정도로 찰지고 뛰어나다니 흑산도에 가면 기필코 주머니를 털어서라도 부모님께 흑산도홍어의 진수를 보여드리고 싶다. 내가 홍어잡이 배가 7척이나 있다는 흑산도에 가고 싶어하는 것은 단지 홍어 때문만은 아니다. 섬이라서 발전이 덜 된 면도 있지만 바로 그 점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70년대의 모습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제주도처럼 인공적인 관광지의 분위기가 아니라 소박하면서 정갈한 마을과 사람들, 맑고 푸른 하늘을 보며 마음까지 정화된다는 그 흑산도에서 참 인간으로서 자연을 만나고 싶어서이다. 물론, 맛집이 많다는 것도 가고 싶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43-한과는 마지막 그림을 보며 홍어도 안 먹었는데 코끝이 찡해져버렸다. 노숙인 생활을 하는 실직 가장이 명절에 자신의 아이들과 처 앞에 몰래 정성껏 잣으로 편지를 쓴 한과바구니를 놓고 사라지는 그 모습에서 지금의 경제위기의 한파 속에 갈 곳을 잃은 가장들을 본 것 같아 더 현실 같았다. 2005년 설 무렵에는 그래도 이 보단 나았었는데 지금은 더 추운 것 같다. 설이면 늘 맛있는 한과를 종류별로 조금씩 사 주시던 어머니가 생각이 난다. 우리 음식은 혼자서 우아하게 별미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다 함께 모여 먹기에, 그리고 자식의 입에 더 넣어주려 먹고 싶은 것도 참는 어머니가 계시기에 우리 음식엔 항상 가족과 눈물, 사랑이 배여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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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5 - 술의 나라
허영만 지음 / 김영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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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덕분에 은근히 알딸딸한 기분으로 읽어도 될 만큼 마음까지 풀어져서 기대가 컸는데 첫 번에 나오는 21- 반딧불이를 보고서 망신스럽게도 눈물이 나서 곤혹스러웠다. 만화를 보다가 너무 웃어서 눈물이 난 적은 몇 번 있었어도 진짜 감동을 받아서 목구멍이 따끔따끔해지면서 눈물이 난 것은 머리털 난 후 처음 경험해 보았다. 정말 잘 그렸다! 허영만작가의 그림을 인정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생각 못했었는데 어떻게 인간의 가장 연약한 몸과 그 몸에 깃든 진하고 큰 사랑을 이토록 애절한 어머니의 눈빛에 담아 표현했을까! 많이 놀랐고 또 당황스러웠다. 이야기가 아닌, 그림을 보고서 더 많이 감동을 받은 것 같다. 저 손짓과 표정, 아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불편한 몸을 이끌고 나오는 어머니의 간절하다 못해 마지막 희망이 담긴 그 눈빛에 내 마음이 움직였다. 그리고 그 시 한 편은 전혀 예상치 못했는데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도 그랬었나? 부모님께 먼저 다가갈 때는 꼭 내 필요를 채워달라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었나? 그냥 보고 싶어서 안부가 궁금해서 먼저 연락한 적은 없었나를 따져보았다. 참 부족하고 못난 자식을 그 품에 품어주시고 길러주신 우리 부모님이 보고 싶다.




22- 매생이의 계절은 워낙 tv를 통해서도 잘 알려진 매생이국을 소재로 한 것이라 큰 기대는 안 했는데 성찬과 봉주의 매생이대결의 결말이 압권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라 반전의 묘미를 한껏 느낄 수 있었다. 또, 매생이 삽화가 어찌나 사진같이 정밀하던지 그 그림에 자꾸만 눈이 갔다. 어떻게 하면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맛보다도 그 향긋하며 정돈된 여자의 머리처럼 보이는 매생이가 눈에 어른거린다. 




25-청주의 마을에 나오는 두 형제, 김일목과 김이목은 그 생김새부터가 너무나 웃음이 나올 정도로 기가 막힌 캐릭터들이었다. 모여라 꿈동산에서나 보았을 법한 대두(大頭)와 메기의 입술 같은 두꺼운 입을 가진, 점 하나 빼면 똑 같이 생긴 두 형제가 상봉하는 장면은 꽁트 중의 꽁트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재미는 무척이나 그리고 너무나 생생하고 자세한 청주만들기 과정이었다. 어느새 한 번 마셔본 기억도 나지 않는 우리술 청주를 떡밥을 만들어 내 손으로 직접 빚을 수도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술을 빚는다는 그 표현도 멋스럽고  술에 미친다는 것도, 그 지루하리만큼 기다리고 애 간장을 녹이며 술이 다 익을 때까지 마음을 정화시키며 기다리는 그 모습도 도를 닦는 도인이 된 것처럼 신선했다. 헌데 술은 취하기 위해, 기분을 내기 위해, 혹은 우울한 사람에게 기운을 북돋아 주기 위해 마시는 게 기본인데 어찌 만드는 과정은 도 닦는 수준일까 모르겠다. 24-탁주에서도 그렇고 술의 나라에 그려진 술은 모두 우리 전통주이고 쌀을 기본으로 한 다는 점에서도 친구들과 마셔 본 평범한 알코올과는 좀 다른 것 같다. 손으로 직접 백세를 하는 과정을 보면서 저렇게 힘들게 만드는 술이니 조금씩 아껴 마셔야하기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성찬이 술까지 잘 만든다는 것은 좀 과한 설정 같다고 느꼈지만 탁주를 통해서 갈라진 마을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만든다는 이야기엔 충분히 공감이 갔고 제발 그렇게라도 서로 풀고 화해하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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