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와 함께한 수학 일기
알렉산더 즈본킨 지음, 박병하 옮김 / 양철북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돌 무렵 어설프게 걸음마를 하기 시작한 이후 난 아파트 벽에 써 있는 56동 ,38동 등의 숫자를 읽는 아이가 되었고 그것을 신기하게 여긴 동네 어른들이 저것은 몇 동이냐고 손가락으로 물으면 정확하게 읽어서 아저씨 아줌마들 사이에서 '수학신동'으로 소문이 나게 되었다. 그것이 당시에 103동 127동 등 숫자 100이 넘어가는 것을 돌을 갓 지난 아기가 읽는 것을 처음 본 어른들의 놀라움 덕분이었는데 요즘은 그런 아기보다 더 뛰어난(?)아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공감하게 된 부분이 바로 논리적 사고능력을 길러주기 위한 선행학습이 목표가 아니라 실제 자신의 아이들에게 수학이란 학문으로 이끌어 주면서 일어났던 일,갈등이 있는 그대로 다 나와 있기에 관심이 생겼고 읽는 재미가 컸다. 왜냐하면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를 읽는 듯 너무나 그 정신과 실생활에서의 수학적 감각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께서는 작은 슈퍼마켓에 나를 데리고 다니며 장을 보실 때에도 카운터에 도착하면 계산원이 전자계산기를 두드리는 동안 내게 "이게 총 얼마지?" 하고 물으시면 나는 조금 전 어머니와 돌아다니면서 플라스틱 바구니에 물건들을 담으면서 본 가격을 재빨리 더하기나 곱셈을 해서 계산원보다 빨리 대답을 했다. 그러면 거의 동시에 계산을 마친 계산원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고 나는 별 것 아닌데 사람들이 알아주니 우쭐거리는 기분에 하루가 즐거웠다. 우리 어머니는 그렇게 나에게 실생활 속에서 수학, 덧셈이나 뺄셈, 곱셈 등을 이용해서 계산하는 즐거움과 효율성을 직접 느끼게 하셨다. 그리고 가족들과 동그란 케이크를 나누어 먹을 때에도 제일 어린 나에게 칼을 쥐어 주며 가족이 2개 씩 먹을 수 있게 나눠 볼 수 있냐며 기회를 주셨고 자전거 바퀴가 서로 크기가 다른데 왜 똑같이 굴러갈까라는 정말 생각해도 또 생각하게 되는 문제도 내 주셨다.   

 

 

반복적인 어머니와의 이 생활 속 경험들이 학교에 입학해서 처음 산수책을 받았을 때에도 어렵거나 낯 선 느낌대신 얼른 도전해 보고 싶고 풀어보고 싶도록 나를 능동적인 아이로 만들었다.왜냐하면 나는 훨씬 어렸을 때부터 늘 어머니께 질문을 받아왔고 어머니는 내가 틀린 답을 내 놓아도 야단을 치거나 무시하거나 하지 않고 언제나 힌트를 주시며 조금 더 생각할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해 주셨기에 나는 산수라는 것은 틀려도 별로 창피하거나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런데 이 책의 저자가 자신의 아이들에게 우리 어머니께서 나에게 하신 것처럼 자꾸 생각해 보라고 안내하고 있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지만 문제를 내는 사람이 있고 생각하는 어린이가 있으니 언제나 퀴즈를 풀듯 게임을 하듯 어른과 어린이 모두가 흥미진진하게 즐거운 것이다.

 

 

만약 처음부터 지루한 사칙연산이 빼곡히 찬 학습지형태의 문제집을 들이밀었다면 어땠을까? 빈칸을 채우는 문제에서부터 한 줄짜리 연산의 정답을 기입해야 하는 그런 문제들을 보여주었다면 아마 수학적 재능을 가진 아이라 할지라도 그 지루함과 '내가 왜 이런 재미없는 문제를 풀어야하지?" 라는 가슴 속 항변에 수학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 생활 속에서 수학이 알려주는 개념과 이론, 공식을 도입하면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생활을 재미있으면서 유용하게 할 수 있다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면서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그 편리함과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마치 컴퓨터를 이용하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요즘 아이들 스스로가 컴퓨터에 손이 가듯이 말이다. 편리하고 재미있는 것, 그것이 바로 수학이다. 

 

수학의 재미,

이 책은 그 수학의 재미를 가르쳐 주고 있다. 가장 어려워 하는 기하학을 도입하면서도 꼭 빨리 정답을 맞추라는 식의 흐름이 아니라 두 건물 사이에 놓인 다리 위로 지나갈 수 있는 길은 몇 가지가 되는가 식의 문제가 나온다. 길은 딱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이다. 곡선으로 갈 수도 있고 직선으로 갈 수도 있고 최단거리로 갈 수도 있고 돌아서 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단순히 학교에서점수에 따라 서열을 가리기 위해 단 하나의 답만이 나오는 문제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정해진 시간 안에 다 풀도록 채근질하는 것과는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

 

경쟁해야만 하는 과목이 아니라 알면 알수록 재미있고 다른 방법은 없을까를 스스로 고민하면서 뇌가 발달해 가는 과목이 바로 수학이다. 그래서 수학을 배운 사람과 그렇지 않고 기계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사람의 생활과 사고방식의 차이는 성장하면서 크 격차를 갖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수학의 가치를 정확하게 이해한 사람이다. 그가 아버지로서 자신의 아이들을 아끼는 마음에서 음악이나 체육 등 당장 학습효과가 멋진 연주실력이나 기량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과목들을 가르치기 보다 쏟아 부은 시간에 비해 눈에 보이는 효과가 미미한 수학이란 기이한 과목을 가르친 것은 타당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수학은 생각하는 힘을 갖게 만들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예상치 못한 일들이 하루에도 여러 개 그것도 겹쳐서 일어난다. 그 때마다 누군가에게 가서 도움을 요청하거나 누군가 더 똑똑한 사람에게 기대어 일을 해결할 수는 없다. 자신 앞에 닥친 일을 자신이 바로 해결해야 하기에 생각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고 그 문제를 풀어야만 하는 것이다. 어떻게 해결할까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무척이나 길고 복잡해서 중간이 포기하기가 쉽다. 그것이 우리가 수학문제를 푸는 것과 매우 닮았다. 가정이나 이론들을 겹쳐서 낸 문제들 앞에 그 복잡한 사슬을 하나 둘 씩 헤치고 마침내 답을 찾아내는 그 인내심과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이 수학이나 인생 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부모가 세상에 없어도 자식에게 스스로 사고하며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것, 그것이 바로 부모의 지극한 사랑이며 수학을 가르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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