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차영차 그물을 올려라 - 어부 일과 사람 5
백남호 글.그림 / 사계절 / 201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년 겨울, 만화 식객의 매력에 푹 빠져서 처음 한 두권 사서 읽던 것이 어느새 이십 여 권이 훌쩍 넘어버렸다. 가장 큰 특징은 특별하다고 느끼지 못할뿐더러 시시하다고 여겼던 일상의 먹거리들을 아주 섬세하고도 귀하게 다루는 태도에 있었다.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간추려서 독자에게 알려주는 성실함에도 놀라웠지만 무엇보다도 전혀 새롭거나 신선하지 않을 것 같았던 '평범한 일상'의 비범함을 일깨워 준 것에 있었다. 그래서 직업에 대해 알려주는 시리즈인 ‘영차 영차 그물을 올려라!’를 보니 첫 장부터 식객이 떠오른 것이었다.



두꺼운 점퍼를 입고 털모자로 무장한 채 새벽 시커먼 바다로 출항하는 모습에서는 바다란 어떤 곳일까란 기대감과 호기심보다도 정말 두렵고도 거대한 자연의 힘이란 느낌이 들었다. 항상 안전하고 흔들림 없이 반듯반듯하게 구역이 나뉘어진 도시에서 태어나 살아 온 아이와 나는 바다란 낯설고 어려운 곳이었다.


특히 바다의 이미지가 여름철 해수욕장을 중심으로 거대한 콘도미니엄과 알록달록하고 비치파라솔, 화려한 수영복을 입은 인파로 북적이는 휴가지로 고착화된 아이에게는 더더욱 바다라는 곳에 대한 소개가 첫 장부터 어마어마하게 큰 차이를 느끼게 하였다.



바다가 얼마나 크고 넓은지를 잘 알려주는 것은 역시 그림이었다. 배로 사십 분을 더 가서 어제 쳐 놓은 그물을 걷어 올릴 때 도루묵이 얼마나 걸렸을까 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은 그림으로만 보아도 충분히 실감이 되고도 남음이 있었다. 단순히 도루묵을 많이 잡고 적게 잡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물에 걸린 도루묵을 배 위로 끌어당길 때의 어부들의 그 가장으로서의 묵직한 책임감과 거칠고 사나운 바람과 파도와의 한판승을 의지적으로 인내하고 있는 모습은 바다에서 먹고 사는 사람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해 주기에 충분했기때문이다.



도시 아이들에게는 바다는 언제나 휴양지-노는 곳이었는데 이 책 영차영차 그물을 올려라를 보면서 바다가 이렇게 다른 곳이었다는 것을 처음 본 것이다. 바닷가에 며칠 머물면서 입에는 여전히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빨고 다니고 근처로 이동하려고 해도 여전히 자동차에 의존해서 다니는 아이에게 속이 안 보이는 시커먼 바다 위에 작은 배를 타고 그 몇 배나 되는 무거운 그물을 어부아저씨들 몇 명이 달라붙어 온 힘을 다해 끌어당기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진짜 바다의 모습이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망망대해에서 본 육지와 마을의 새벽풍경이었다. 반짝이는 불빛이 점점이 모여져 있어 더 멀고도 작게 보이던 그 육지의 모습은 정말 낮에 본 세상과는 딴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웅장하고 거친 바다에서 부는 된바람에 비하면 육지는 참 오밀조밀하고 살랑살랑 부는 간들바람같이 느껴졌다.



바닷가의 아침풍경 또한 이채로웠다. 서로 안부를 묻고 답하는 어부들에게서 교양이나 예의대신 살 냄새가 났고 일찍부터 서둘러 도루묵을 사러 나온 아주머니들의 수다소리 높은 경매장 풍경은 화기애애함을 넘어 활기참과 삶의 의욕을 불러일으켰다. 일을 마치고 부두에서 매서운 바람을 맞아가며 상에 둘러 앉아 함께 먹는 찌개와 도루묵구이의 맛이 어떨까도 궁금했는데 그림으로만 보아도 끝내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생선을 벌여 놓은 좌판을 구경하면서 우리의 바다에 이렇게나 다양하고 많은 물고기들이 살고 있었다니 놀랍기만 했다. 바다의 오염문제에 대해 아무리 귀로 많이 들었어도 관심 밖이었는데 이렇게 눈으로 많은 물고기들을, 단순히 식용생선으로서만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생물로서의 다양한 어종들의 물고기들을 보니 바다가 물고기들의 삶의 터전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소중해졌다.



바다에서 도루묵을 잡는 어부들과 그 가족들의 생활모습을 통해 어촌마을과 마을사람들의 애환을 실감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바다라는 공간을 자주 접해보지 못한 채 그저 여름에 해수욕이나 며칠 다녀오면서 색색의 튜브와 수영복을 입은 도시사람들만 실컷 구경하는 곳이 바다가 아니라 진짜 바다는 우리가 미쳐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할 만큼 수 많은 바다생물들이 사는 터전이고 또한 거기서 나고 자라서 바다가 몸의 일부인 것처럼 자연스럽고 편한 사람들이 주인으로서 는 곳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남진호에서 바다를 향해 그물을 던지는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그렇게 크고 무겁고 막대한 그물을 매일 던지는 어부들이 바다에 갖고 있는 꿈과 희망, 그리고 기대감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노력한대로 거두워지는 것도 아니라서 어떤 날은 아무리 노력해도 빈 그물을 거둘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계절에 따라 어떤 날엔 날이 흐려서 바다에 나가지 못한 날이 나간 날보다 더 많았을 것이다.매일매일이 얼마나 긴장되고 불안하고 힘이 들었을까! 그래서 이런 변덕스러운 바다의 성질을 보면서 삶은 단순히 예쁘고 위용있게 장한 것이 아니라 못나고 위험하며 무섭기까지 한 것이 진짜 삶이라는 진리를 배웠다.

처음엔 우리가 사는 세상의 다양한 직업에 대해서 사실적이면서도 재미있는 그림과 함께 배우는 것 정도를 기대했었는데 정작 책을 덮을 때에는 바다, 그리고 어부의 생활을 통해서 진짜 바다를 보았고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헤쳐나가야할 인생의 망망대해까지 조금 이나마 배울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