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복숭아 - 꺼내놓는 비밀들
김신회 외 지음 / 글항아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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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비밀이지만 나에게 이런 면이 있어, 나는 이런 점이 부족해, 나는 이런 사람이야' 하고 조잘조잘 자신의 이야기를 수줍게(이게 포인트인 것 같다) 내어놓는 아홉 사람의 이야기다. 은밀한 취약점을 '복숭아'에 비유한 책의 제목이 너무 적절하고도 매력적이어서 나는 이 책을 읽어보기로 결정했다.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면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도 한낱 범인들의 입장에서는 대단한 사람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면이 대단할 것만 같다. 이를 테면, (진부한 표현으로) 원빈은 화장실도 가지 않을 것 같다는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다 같은 사람인데 누군가의 능력치는 신의 그것과 같을 정도로 위대하고 놀랍게 느껴져서 감히 아무런 단점이나 비밀도 없을 것 처럼 느껴지는 그런 신비로운 환상. 그래 그것은 환상일 뿐. 모두가 내면에 의외의 비밀을 갖고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

겉을 보고는 그 내면을 잘 알 수 없는 것이 맞다. 우리는 각자 모두가 '의외로'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 무언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집착한다거나 소홀히 하는 자신만의 무언가가 있다. 그래서 '의외'라는 수식어가 붙기 쉽다. 나는 '사실' 이래. 나는 좀 '의외로' 이렇지. 책을 읽는 내내 작가님들의 그것과 나의 것이 얼마나 비슷하고 다른가를 생각하며 읽다보니 책장이 사르르 넘겨지는 재미가 있다. 

김신회 작가님의 사랑을 모른다는 구절에서 그게 사랑이에여! 외쳐보게 되고, 남궁인 작가님의 노래실력 묘사에서 낄낄 웃다가 그가 그것 빼고 모든 부문에서 완벽하다는 점을 상기하고 약간 정색하게 되고, 임진아 작가님의 긴장하는 성격에 공감하고, 이두루 작가님의 영해능력에 관한 고찰을 읽으며 내 영해능력이 어떠한가 떠올려보았다. 최지은 작가님의 과자 이야기에 낄낄거리고 웃다가 마지막 홈런볼 2개 부분에서는 무릎을 치며 빵 터졌고, 서한나 작가님의 요가와 김사월 작가님의 필라테스 이야기를 보고 또 진지하게 다시 운동을 해야겠다 생각해보고, 이소영 작가님의 식물 세밀화가의 성격 이야기를 읽고 나 역시 비슷한 부분에서 닭이 먼저인가 계란이 먼저인가 생각해보게 됐다. 마지막 금정연 작가님의 야구이야기는 웃다가 웃다가 살짝 눈물이 날 뻔 하며 책을 덮어야 했다. '눈이 부신 기억' 때문에.  

사실, 책을 절반쯤 넘겼을 때는 진지하게 '나의 복숭아'가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생각해보게 되는데, 여기서 다시 고개를 드는 새로운 생각이 있었다. 진짜 비밀이 아니라 내보일 수 있는 비밀이어야 하겠다는 점이다. 자기소개서에 썼던 나의 단점 항목이 생각 나 혼자 웃었다. 단점이지만 아주 치명적이지 않아야 하는 의외의 비밀같은 것. 내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물렁물렁한 복숭아 중에 어떤 복숭아를 꺼내어 보여줄 수 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이쯤에서 다시 소개 문구를 본다. 가장 나에 가까운 그 모습이 나를 지탱한다, 고 쓰여있다. 나는 지금껏 정답지를 이미 받아놓고 문제만 한참 들여다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느리다. 살다 보니,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행동이 느린 편이라는것을 알게 됐다. 이번엔 리뷰를 써야겠다고 생각하다가 일주일 만에 겨우 노트북 앞에 앉았다. 느리게 행동하는 나는 이러한 면을 자소서 단점 항목에 '신중하고 섬세하다'고 적었던 것 같다. 사실은 그 뒤에는 지나치게 생각을 많이 한다는 점, 그리고 남들보다 현저하게 부족한 가용 에너지가 있다. 나라는 발전기를 돌리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는 매일매일 연료를 넣어도 밑 빠진 독처럼 그렇게 에너지가 부족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느려지고, 또 느려진다. 이게 내가 보여줄 수 있는 복숭아인 것 같다.

책장을 다 덮은 다음에는 개운한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을 떠올렸다. 난 모든게 단점 뿐이고 서투르다며, 나는 왜 이렇지, 하고 투덜투덜대는 내 친구들과 함께 책을 보다보면 야,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 남들도 다 비슷하다니까 맞아, 하고 고개를 함께 끄덕여줄 것 같다. 

나만 그런게 아니야. 모두가 내보이기 부끄러운 면이 있지만 그게 나야, 그런 나를 받아들이는 순간이 정말 나를 사랑하게 되는 순간인 거야! 정답은 쉽고, 또 헤쳐나갈 길은 구만리 같다. 그래도 위로가 된다.


*북클럽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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