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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겐 노조가 필요해
김유미.반지수 지음 / 사회운동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만화를 그리는 사람들도, 80년대부터 꾸준히 사회 운동을 해왔던 사람들도 이젠 기억하지 못하는 역사가 있다. 영화, 연극, 노래 등이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노동 운동과 함께 할 때 만화 역시 함께 했었다는 사실 말이다. 전국 각지의 대학에서 발간되던 교지가 서서히 학교의 어용 언론에서 벗어나 자치 언론으로 변모할 때, 대다수의 교지는 같은 대학에서 활동하던 만화 동아리 사람들과 연대하여 노동, 사회 운동을 그리는 만화를 그린 적이 있었다. 진입장벽이 높은 영화나 연극 같은 매체와 달리 만화는 상대적으로 만드는 것도, 퍼트리는 것도 용이해 전국가톨릭농민회 등을 비롯한 단체는 ‘우리의 삶을 말하는 만화 그리기’를 중요한 활동 커리큘럼의 하나로 잡기도 했었다.
그러나 한동안 그 역사는 사라진지 오래였다. 80년대에서 90년대로, 다시 2000년대로 오면서 점차 사회 운동을 말하는 만화도, 노동을 말하는 만화도 보이지 않았다. 간혹 일부 노동조합이나 <참세상>에서 활동하는 작가를 종종 볼 수 있기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 역시 곧 사라졌다. 노동과 사회 운동을 말하는 작품은 ‘인권’이라는 틀 아래에 묶여, 국가인권위원회가 가끔 제작하는 만화 옴니버스 작품집에서만 종종 찾을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출현은 각종 사회 문제를 더욱 심화시켜 <내가 살던 용산>, <먼지 없는 방>, <섬과 섬을 잇다> 같은 르포 만화를 출현시켰다. 노동을 다룬 만화 중에서는 가장 유명할 최규석의 <송곳> 역시 이러한 배경 아래서야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에겐 노조가 필요해>(또는 월간 <오늘보다>에 연재된 <단결툰> 시즌 1)를 주목해야하는 이유는, 단순히 노동을 소재로써 다룬 것을 넘어 1990년대 이후로는 사실상 사라진 상태였던 노동 ‘운동’과 만화 간의 연대를 복원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날이 갈수록 노동 운동이 어려워지는 마당이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차가운 대지를 뚫고 노조라는 이름의 뿌리를 박으려 시도한다. <너에겐 노조가 필요해>는 그러한 도전과 시련, 그리고 인내의 기록을 인터뷰와 더불어 만화로써 기록을 시도한다.
아무리 같은 기록일지라도 인터뷰로 보는 것과 만화로 보는 것은 결코 같지 않다. 만화는 그림이 어우러지며 글보다 좀 더 독자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기 쉽고, 비슷한 종합 예술인 영화에 비하면 공간적-시간적 제약이 훨씬 덜하다. 그러기에 많은 운동들이 만화와 함께 하려 했었고, 약 20년 만에 한동안 끊어졌던 연대가 다시 살아난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러한 특성은 좋은 시너지를 발휘한다. 연재가 거듭될수록 좀 더 서사적인 전달을 위해 글-그림 작가가 모두 노력하는 모습이 느껴졌고, 단신으로만 들었던 노조 활동가의 이야기를 더욱 진솔하게 느낄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비록 그림 작가는 바뀌었지만, 새롭게 시작될 <단결툰> 시즌2도 ‘꽃길’을 걸을 수 있길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