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치고 잘 뛰네 - 남자들의 세상 속 여자들의 달리기
로런 플레시먼 지음, 이윤정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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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4월 15일 자 한 신문사 헤드라인에 눈길이 갔다.

“여자만 수영복 입고 뛰라고? 美 육상팀 경기복 논란”

기사의 첫 줄을 읽어보니 “2024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공개된 미국 육상 선수들의 경기복이 성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남성 경기복과 달리 여성 경기복만 노출이 과하다는 이유에서다.”라는 내용이 이어졌다.

미국, 육상, 경기복, 성차별. 어째 낯설지 않은 단어였다. 나이키는 올해 7월 파리 올림픽에서 입을 여자 육상 선수 경기복으로 골반이 보이게 깊게 파인 ‘하이컷 수영복’을 선보였는데 그건 육상 선수의 경기복이라기보다는 수용복과 같았다. 나이키는 문제의 ‘하이컷 수영복’은 다양한 선택지 중 하나라고 반론에 나섰지만 그 숨겨진 의도를 피해 가기엔 부족한 변명 같은 답변이었다. 미국의 전현직 선수들은 논란의 경기복을 보고 불편한 심기를 SNS에 표출했고 "이 옷이 정말 기능적으로 좋다면 남성들도 입어야 할 것"이라며 전 미국 육상 선수 로렌 플레시먼도 지적의 목소리를 냈다. 과연 이것은 누구를 위한 복장이었을까? 나도 운동할 때 나이키를 즐겨 입는 한 사람이다. 이번 기사를 통해 여자 선수들을 향한 성 상품화 노력을 그치지 않는 스포츠계 산업의 민낯을 본듯해 씁쓸해졌다.

우이천에 쏟아져 내리는 벚꽃 러닝은 내가 봄날에 부릴 수 있는 유일한 사치인데 올해 3월 서울 국제마라톤 대회를 앞두고 부상을 입는 바람에 작년과 같이 ’사치런‘을 즐길 수 없어 못내 아쉬워하며 봄을 보내고 있다. 그런 중에 만난 책 <여자치고 잘 뛰네>는 제목부터 호기심을 일으켰다. 달리지 못하고 있는 나의 지금에 뭔가 모를 위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했다.

<여자치고 잘 뛰네>의 저자인 로렌 플레시먼은 미국 역사상 가장 화려한 경력을 가진 장거리 달리기 선수 중 한 명으로 현재는 은퇴해 코치와 작가로 활동 중이다. 러너들에게 잘 알려진 스포츠 잡지인 <러너스 월드>에 칼럼을 기고하며 여자 선수들의 보이지 않는 ‘어둡고 복잡한 속살’을 드러내고 변화를 도모하는 데 힘을 보태고 있는 그녀도 한때는 스포츠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몸을 외면해야 했던 ‘여자 선수’중 한 명이었다. 그러면서 선수로서 피할 수 없는 부상에 직면하며 자신의 몸을 돌아보고 소중한 일상을 회복해 나가려는 용기 있는 진심과 솔직함을 한편의 에세이에 담아낸 그녀의 이번 책 <여자치고 잘 뛰네>는 알지 못했던 여자 육상 선수들의 고충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여성의 몸은 2차 성장을 거치면서 남성의 몸과 다르게 변해간다. 생산을 위한 필수 요소들로 변화되면서 남자 선수들과의 다른 호르몬을 장착하게 된다. 그 시기는 남자 선수와 달라지는 기량 차이를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다. 월경의 시작은 여자 선수로서는 반갑지 않은 몸의 성장을 나타내는 변화다. 이때부터 여자 선수들은 자신의 몸을 배려하거나 남성과 다른 훈련 방식을 요구할 수조차 없는 불안전한 시스템을 쫓아가야 한다. 이러한 여자 선수들의 다른 생체리듬에 맞는 시스템과 코치는 아직도 드물다고 하면서 로렌은 자신의 책에서 여자 선수들만의 고충을 털어놓는다.

‘자기 종목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는 여성 운동선수들은 비운동선수에 비해 신체 만족도가 높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반대다.‘ 그 이유로 ’서구적인 미의 기준을 사람의 가치로 보는 문화적 영향’과 ‘스스로 몸을 해하지 않고는 달성하기 힘든 수준의 이상적인 체중의 존재’를 꼽았다. 이상적인 체중을 달성하기 위해 선수들은 섭식장애를 겪기도 한다. 저자는 책에서 '2022년까지만 해도 NCAA(전미 대학 체육협회)는 여자 대학 운동선수의 35퍼센트가 거식증의 위험에 처해 있었고, 58퍼센트가 폭식증의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에도 공식적인 정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몸으로 달리고 성과를 내야 하는 그녀들은 정작 제 몸의 변화를 외면해야 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책장을 덮는데 같은 여성으로서 연민이 한가득해졌다.

대한민국과 같이 육상이 비인기 종목으로 분류되는 나라에서 ‘멋진 몸매, 탄탄한 근육과 엉덩이, 깊게 파여진 여자 선수들의 가슴팍이 잘 보이는 출발선이 잘 보이는 자리가 최고의 관중석’이라는 이 불편한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직도 여자로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의 사각지대는 너무도 폭넓고 다채롭다.

여성은 위대한 남성을 탄생시킨다.

위대한 여성을 탄생시키는 것은 무엇일까?

남성이 추구하는 야망의 소용돌이를 피하는 것?

혼자가 되는 것?

<여자치고 잘 뛰네> 中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여성의 질문과도 같은 저자의 물음을 이 화창한 떨어지는 봄 꽃잎에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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