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보다는 비관에 가깝고 자주 울어 내어머니도 나를 질겁하곤하였다.하여 에밀리디킨슨의시처럼내가 만약 누군가의 마음의 상처를 막을수 있다면 헛되이 사는것은 아니라는 마음으로 살았다.허나 세상사람들은 내맘 같지 않아 마음의 상처가 생길때는 곧잘 울곤 하였다.인생의 넘이 넘이를 건널때마다 울곤하였던나,이제 아이들이 자라고 에미마음으로 살아야지 하던차에 요즈음 내가 자주 읽는 책들이 저자의 책이다.젊은날엔 저자의 책이 신산하고 심란스러워 외면하곤 하였는데 같은 에미여서 그런가 저자의 새끼를 향한 본능적인 모성이 절절히 느껴진다.에미 마음으로 세상을 보듬을수 있다면 ,친정엄마의 흘리는 듯한 말속에도 삶에서 우러나오는 진실이 있음을 이제와서야 느껴지니 육신은 늙어가는데 이제야 알아지는 인생의아이러니.전남 곡성 산골 근처에 살며 저자가 느꼈을 그 삶에 질곡들을 고스란히 전해지며,남자들은 모두들 어디로들 가버린것인지.해가 지는 저녁에 서서 지금도 아지못할 설움에 눈물 짓는 나를 저자는 알리라고.세상 한곳에 맞장구쳐주는 그 누군가는 있다는 생각에 삶이 팍팍해도 일상이 너무나 길고 요원해도 살아낼수 있는 것은 아닌지.
이 주를 기다려 받아본 책을 하루만에 읽고 또다시 살아보리라 결심해본다.
내게도 그시절이 있었다.지금은 아파트 촌이 되어버린 그곳에 내게도 어린날 뛰어놀던 뒷산이 있던 그 산동네에서 살았다.주소가 산88번지로 끝나던..그것이 무허가 집이었다는 사실은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알았다.다만 다른것은 지은이의 부모와 다른것....아버지는 술주정 폭력이 난무하던 그곳에 유일한 위로는 책을 보는것 산에 올라가 노는것이었다.우리형제들은 그곳을 그리워하지않는다.다만 그 척박한곳에서도 나는 꿈을 키웠고 39살이된 지금의 아이들에게 그곳을 이야기한다.그리고 추억에 젖게된다.아프고 춥고 가난하고 학용품 살돈이 없었던 그시절이 내인생에 많은 도움을 준다.어떠한 시련이 와도 견딜수 있는 힘이랄까.이제와서 보니 추억이 없던것보다 나을까.옆에서 책을 읽는 내아이는 다만 본인이 경험지 못한 내용을 신기해하며 읽고있다.인간이 산다는것은 어떠한 환경에도 굴하지않게 강인한 힘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다만 가난해도 굴하지않게 가슴 따뜻하게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따뜻한 인간성만 잃지않는다면 말이다.그러나 지금은 겉은 모두 안락하게 살지만 마음은 모두다 산동네에 사는 사람들보다 더 저질이다.사람이 안락해지면 타락한다고 책은 더읽지않고 인간성은더 없어지고 있다.그리고 모든것은 보여지는 물질로 판가름 난다.마음을 잃지않고 추억을 잊지않고 사람 냄새나는 세상으로의 나의기원은 잘못된것일까.사십이되어가는 이시점에 읽은 이책은 많은 생각을 주게한다.다만 삶은 끊어지지 않고 이어가는것 살아가는것이 중요하다.살면서 사랑하면서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않는 삶을 살고싶다.타협하지 않는......
나는 이미 두아들의 어미이다.그리고 나의 첫아이는 사춘기에 접어 들었다.내 남편도 한어미의 아들이다.굉장히 사랑하고 한편으로는 연인으로도 생각하는 그런 아들이다. 남편과의 불행은 아이에게 광적으로 집착하는 모습으로 종종 보여진다.폴의 어머니의 지성으로는 집착할수 밖에 없었을것이다.내 시어머니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불행했던 남편과의 사이에 아들은 남다를수 없었을것이다.결혼 초의 적대감도 이와 같은 맥락 에서 이지않을까 싶기도 하고,그래서 폴은 미리엄과의 오랜 연인임에도 불구하고 헤어지게 된다.그러나 나는 그를 쟁취했다.내것으로....하지만 친정어머니의 우려대로 사랑 의 댓가는 혹독했다.하지만 난 두아이의 어미가 되어있다.아직까지 이어지는 시어머니의 집착과 이미 남편은 그의 연인인가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의지한다.그래서 나는 한국을 떠났다.내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나는아이들에게 따뜻한 엄마이고 싶다는 생각만 한다.너무 희생에 지쳐 내모습이 없는 그런 엄마도 싫고,남편과 다정하며 세상은 따뜻한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고 또 그렇게 보여주고 싶다.그리고 아이들이 자라면서 시어머니를 이해한다.자식이란 또 다른 나의 모습이다.나의 거울이라고나 할까.내 삶을 반영하며 아이들은 자라서 다른 사랑을 찾을것이고 세상에 나갈것이다.나는 그들에게 작은 밑거름만 되어주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어머니입장에서 읽은 이책은 아들을 키우는 엄마들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 들었다.비록 내아들이 자라 불후의 명작을 남기지 못하더라도 난 내아들이 폴처럼 사는것은 싫다.가슴이 따뜻하며,자신을 아끼고 사랑을 하고 사랑을 지키는 그런 남자로 자라기를 바란다.자식이란 바라만 보아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그런 존재인것 같다.
오늘 대중화장실에서 멈칫하는 나자신을 볼수 있었다.어딘가에 몰래 카메라가 있지않나.스미스에게 있었던 텔레스크린이 작동 되고 있지 않나 하는 두려움,작가의 예언은 어느새 적중하고 있다.우리는 전체주의는 아니어도 두려움에 떨고 있다.더 견고하고 육중한 문을 달고,함부로 문을 열어서는 안되는 서로를 경계하며 믿을수 없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윈스턴 스미스 같은 인간은 멸종된 사회,오브라이언은 말한다.윈스턴 스미스 에게 자네는 마지막 인간이라고.인간에게 가할수 있는 모든 형벌 인간이 목적을 위해 이렇게 잔인 해질수도 있을까 하는 생각....그는 모진 고문과 세뇌끝에 연인 줄리아를 배반하고 당이 원하는 모든것을 받아들인다. 언젠가 어떤시에서 자유에는 피냄새가 난다는 구절을 읽은적이 있다.자유를 지키려는 인간의 의지와 한 인간의 파멸의 모습...과연 오웰의 소설은 인간에게 던지는 강력한 경고이다.그 경고는 고도의 정보사회일수 있고,독재권력,자신이 만들어 놓은 불신의 함정일수도 있지만 그 희망은 절망적이다.오웰의 소설처럼 현실이 맞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에 떨게 된다.작가는 알고 있을까? 우리가 지금 1984년,작가가 예언한 사회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음을.....
옛 서적을 읽으면 오래토록 향기가 난다.마치 향싼 종이에서 나는 향내 처럼 자신을 돌아보고 옛 사람의 자취와 향기에 젖는다.날씨가 비가오고 무덥고,여름의 중턱이다.그런데,완당평전을 읽고 있으면 더운지도 모르겠고 저절로 시원함을 느낀다. 시원한 대나무 숲에 온 느낌이다.자신이 수양되는 기분이랄까? 유홍준씨의 책은 박식함에 치밀한 자료와 우리것에 대한 무한한 자긍심과 흠모의 정을 느끼게 해준다.그러면서 읽으면 저절로 가슴이 뿌듯해진다.완당선생님이 쓰신 현판중에,남병길의 호인 유재 현판은 그 글씨와 내용의 풀이가 읽을수록 가슴에 와 닿는다.기교를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조화(자연)로 돌아가게 하고녹봉을 다하지않고 남김을 두어 조정으로 돌아가게 하고재물을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백성에게 돌아가게 하고내 복을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자손에게 돌아가게 한다.이런 남김의 정신으로 여유있게 삶을 영위 한다면....책을 읽는다는것은 물론 지식의 얻음이 크겠지만 자신을 돌아보고 고찰한다는것이 더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어제 추사고택에 다녀 왔다.사랑채와 마당 그 고졸한 분위기가 그 전날 비가와서 그런지 마당에는 떨어진 감이 날리고 소나무 바람소리가 왠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뒤돌아서면 금방 소년 완당의 모습이 보일듯이......완당이라는 거목의 일부분을 본 이기분은 그분의 향기로 오래토록 기억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