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절망조차 금지되어 있다 - 키르케고르 아포리즘
쇠렌 키르케고르 지음, 이동용 옮김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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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고르의 글을 보며 절망에 대해 묵사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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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 - 사람의 뇌가 반응하는 12가지 스토리 법칙
리사 크론 지음, 문지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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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잘 안다고 생각한다. 앉아서 직접 써보기 전까지는.”

문학을 전공하는 나로서 사실 탐탁지 않은 책이다. 고전의 아름다움이 아닌 결국 통계와 뇌과학이 이끄는 대로 대중이 원하는 이야기를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해 논하고 있으니 말이다. 마치 글쓰기의 소피스트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저자는 인간은 이야기에서 의미를 찾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의미는 인과관계 혹은 플롯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흔히 자극적인 이야기가 판치는 시대라고 비판하지만, 인간이 결국 그러한 이야기에 끌리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들이 양산되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하지만 글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내심 진 기분이 들어 짜증이 나긴 했지만, 결국 모두 맞는 이야기였다.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체르니솁스키, 열린책들)』을 싫어하는 이유가 여기에 다 담겨있으니 말이다.

책은 열두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장에서는 독자를 사로잡는 방법에 대해 말하고, 뒤로 갈수록 점점 구체적인 방법들이 소개된다. 그 구체적인 방법은 모두 우리의 뇌와 관련 있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필독서로 여겼다. 이 책은 뇌과학이 결합한 현대판 『시학』이 될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결국, 우리는 이야기 속에서 살아가고, 이야기를 사랑하니 말이다. 저자는 이야기의 힘을 강조하며, 결국 우리의 뇌가 공통으로 사랑하는 이야기를 만드는 방법론을, 즉 뇌의 비밀을 알려 준다. 그러면서 실제 소설의 단락을 가져와 예시도 보여 주면서 책의 마지막에는 체크리스트까지 수록했다. 다른 글쓰기 책들과 다르게 완전한 실용서와 같은 느낌을 준다. 실질적으로 글을 쓰고 싶을 때, 이 책에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우려가 머릿속을 삼키기도 한다. 이렇게 끌리는 이야기를 쓰는 비법을 AI는 모를까? AI가 소설을 쓴다는 소식을 몇 년 전에 기사를 통해 접한 적 있다. 그 AI에게 이 비법을 입력하면 AI는 우리보다 더 좋은, 흡입력 있는 글을 쓸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우리는 이 정보를 바탕으로 어떤 것을 발전해 나가야만 AI를 이길 수 있을까?

*이 글은 출판사에게 책을 제공받아 솔직히 적은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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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끓는 꿈의 바다
리처드 플래너건 지음, 김승욱 옮김 / 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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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평단] 창비에서 나온 신간 『들끓는 꿈의 바다』의 서평단에 뽑혀 이 책을 읽을 기회를 얻었다. 2019년부터 2020년까지 이어진 호주 산불과 관련된 책이라고 들었고, 그 시기 뉴스를 점령한 호주의 산불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리고 호주 출신 작가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었기에 이 책을 꼭 읽어 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 책은 기대하지 못했던 많은 여운을 남겼다. 하지만 주례사 비평은 하고 싶지 않다. 이 책을 읽고 들었던 생각에 대해서 평소와 같이 몇 줄 적어 보고자 한다. (우선, 스포일러가 존재하지 않는 서평을 간단히 하고, 그 이후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된 감상을 나열하고자 한다. )

이 책은 어렵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문학의 대중화가 일어났지만, 그로 인해 현대문학은 창의성이라는 굴레에 잡혀있다는 생각도 든다. 『율리시스』의 제임스 조이스가 “현대 작가는 모험가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위험하게 써야 한다”라고 말한 것처럼, 이 책 또한 모험을 하고 있는 듯하다. 쉽게 책을 후루룩 읽기에는 흐름을 파악하기란 쉽지않다. 중간중간에 비유와 단서를 숨겨놓고, 심지어는 황당무계한 소재까지 넣어놔 독자를 당황시킨다. 내가 지금 판타지나 풍자 소설을 읽고 있는 것인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착각에 들어갈 때면 다시 중심 서사로 돌아오게 만든다. 즉, 중심 서사의 호흡도 빠를 뿐더러 주변 서사까지 빠르게 진행된다. 집중하지 않으면 놓치기 십상이다. 그러면서 현대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삶과 기후위기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호주의 아웃백, 오지의 바짝 마른 열기가 소설에서도 전달되는 듯하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도시는 호바트(테즈메이니아 섬)과 시드니지만, 소설에서 전달하고 싶은 메세지는 뜨겁게 들끓고 있다. 마치 호주 산불처럼 말이다. 독자는 열기로 인한 아지랑이 속에서 어지럼증을 호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끝까지 꼭 읽어 보길 권한다. 그러면 아지랑이가 사라지고 화재 끝에 다시 자랄 숲이 보일지도 모르니까.


‘삶이란 무엇인가?’

가장 중점이 되는 서사는 역시 프랜시다. 프랜시가 어떤 삶을 살았냐고 물어 본다면, 누구든지 그 시대 여성의 삶을 살았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애나는 그 삶은 결국 속박의 삶이었다고 말한다. 보부아르가 여성은 사회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애나 자신은 터조를 자신의 유리천장으로 삼고 그를 넘어서기만을 바라며 자랐다. 이는 모순적이게도 자유를 위한 속박이나 다름 없었다. 그리고 프랜시도 자유롭기를 바라면서 연명치료로 그녀를 다시금 속박시켰다. 이것이 과연 올바른 삶일 것인가? 프랜시가 죽고 9개월 된 프랜시의 증손녀가 등장한다. 이는 마치 리사 샨이 말한 마시나 이야기와 비슷하다. 하나의 끝난 삶은 새로운 삶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사라져 버린 몸’

애나의 신체 일부가 점점 없어질 , 그리고 남들이 그것에 대해 큰일로 생각하지 못할 , 나는 마치 고골의 『코』를 읽는 같았다. 그리고 전공 시간에 들은 환유와 대유가 떠올랐다. 그녀가 신체 부위를 하나씩 잃을 때마다 화재로, 기후변화로 지구상에 있는 생명이 하나씩 없어졌다. 하지만, 그것을 누구하나 제대로 인지하지 않는다. 그리고 인지를 했다고 하더라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고골이 『코』에서 없어진 코가 자신보다 높은 계급이 되어 돌아다니는 것을 페테르부르크의 관등제에 대한 풍자로 사용했다면, 작가는 애나의 신체를 기후위기로 목숨을 잃고 있는 멸종위기 동물들로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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