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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정원, 고양이가 있어 좋은 날
이시이 모모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샘터사 / 2018년 11월
평점 :
연말에 손에 잡힌 한 권의 책.
송년을 위한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라든지, 마감을 위해 몰려든 일을 처리하기 위해 바쁜 시간을 보내다 보면 그 사이 한 권의 책을 읽기가 그토록 어려울 수 있다.
때로는 그동안 정신없이 밀려든 일과 속에서 휴식을 취하려다 보니 책이 멀어지는 수도 있다. 예부터 선생님과 부모님을 통해 독서의 중요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활자가 대중에게 보급된 시대 이후로 지금의 시대만큼 한 권의 책을 읽기가 어려웠던 때가 있었나 싶다.
그럼에도 2018년이 마감되는 시점에 한 권의 책을 붙잡을 수 있어 행복했다.
번역서라서 책에 담긴 내용 그 자체로만 이해할 수 있었던, <책과 정원, 고양이가 있어 좋은 날>
다소 낯선 이름, 이시이 모모코는 책날개 속의 저자의 약력을 보았을 때 가벼이 흘려보낼 인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서문과 에필로그, 추천사 하나 담기지 않은 책에서는 저자가 가진 명성에 얽매일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일본에서 쌓아온 저자의 명성보다 책에 담긴 내용 하나하나에 몰입하며 독서할 수 있었다. 설령, 내 청춘이 아끼고 매료되었던 소설가 에쿠니 가오리가 사랑했던 작가였다 할지라도 나는 누가 썼든 간에 글 자체를 받아들여 독서에 임했다.
당신은 알고 있나? 당신의 소박한 하루하루도 후세에 기록으로 남겨질 수 있다는 것을.
이시이 모모코가 일본 문학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떠나 <책과 정원, 고양이가 있어 좋은 날>을 읽어 보았을 때, 누구에게라도 주어진 시간과 경험이 문학적 가치가 있을 수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저자가 누구인지, 어떤 지위에 있는지가 아니라 누구라도 자신이 경험한 시간, 세월, 순간을 소중히 다루며 기록으로 남겨 놓았을 때, 그 진가를 언제라도 인정받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시이 모모코를 잘 알지 못하는 나 같은 외국인이 이 책을 읽었을 때, 저자의 영향력 때문에 독서의 평가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기록적 내용을 통해서 책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되었다.
80년, 90년 전에 전쟁을 겪은 한 명의 인물이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가 역사적 사료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문학적 차원에서 대중이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영화 <박열>과 관련된 가네코 후미코의 저서와 같이 세계대전과 일제강점기 시대에 우리가 알고 있던 제국주의 일본의 모습이 아닌 일본 서민의 모습을 다시금 이번 책을 통해 이해할 수 있었다.
저자만이 경험했던 거대도시 도쿄와 당시의 농촌 사이에서 극심한 차이를 저자의 경험도 바라볼 수 있었다. 한 가정의 모습이 세세하게 다루어지고, 도전적인 귀농과 당시의 청년성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들도 문학적 가치를 담는다.
역사 교과서가 미처 보여주지 못한 생생하고 자세한 모습들이 이 책에서 전해진다. 마치 일기처럼 전해진 한 권의 책은 읽다 보면 회고록과 같다는 걸 알게 된다.
한 명의 기록자가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은 큰 행복 요인이 되지 않을까 싶다. 101세로 생을 마감은 이시이 모모코는 그 행복을 놓치지 않았다. 혼자만 간직한 것이 아니라 후세에까지 전해져 바다 건너 타국의 독자에게까지 읽히게 되었다.
우리는 독서를 할 때 대단한 무언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책장을 펴는 때가 있다. 하지만, 책이 꼭 지식과 비법 등을 전해주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책이 전해 줄 수 있는 잔잔한 감동을 이 책을 통해서 느껴볼 수 있길 기대한다. 너무나 바쁘게 사는 나머지 우리의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행복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오늘 지금 이 순간을 기록하면서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