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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도서관 말고 다른 장소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일은없었다. 사생활의 영역에서 타인과 접촉하는 걸 썩 즐기지 않는 모양이라고 나는 짐작했다. 그리고 그건 솔직히 내게도 오히려 고마운 일이었다.
도서관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혼자 먹을 간단한 식사를 차리고, 남은 시간에는 오로지 독서용 의자에 앉아 책을 읽었다.
집에는 텔레비전도 없고 스테레오 장치도 없었다. 재난 방송을 듣기 위한 트랜지스터라디오가 있을 뿐이다. 노트북 컴퓨터가 있긴 했지만 원래도 잘 쓰지 않았기에, 의자에 앉아 좋아하는 책을 읽는 것 말고는 달리 할일이 없었다.
책을 읽으면서 유리잔에 스카치위스키를 따라 온더록스로한두 잔 마셨다. 그러다보면 점점 졸음이 쏟아져 대개 열시쯤이면 잠자리에 들었다. 깊게 자는 편이라 한번 잠들면 다음날아침까지 거의 깨지 않았다.

고야스 씨는 한때 자신이라는 존재의 의미를 잘 파악하지못해 고뇌했지만 이제 그런 건 아무려나 상관없었다. 부모에게서 한 덩어리의 정보를 물려받아, 자기 나름대로 약간의 수정과 가필을 하여 다시 자기 아이에게 물려준다-결국 자신은 단순한 일개 통과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긴 쇠사슬의 고리 하나일 뿐이다.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설령 인생에서 의미 있는 일, 널리 회자될 만한 일을 이뤄내지못한다 한들 뭐 어떻단 말인가? 자신은 이렇게 어떤 가능성을- 그저 가능성일 뿐이라 해도-아이에게 물려줄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지금껏 살아온 의미가 있지 않은가.
그건 그에게 싹튼 완전히 새로운 시각이자, 지금껏 해보지못한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해보니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 망설임과 울분이 사라지고 거의 난생처음으로 마음의평화를 얻을 수 있었다. 그는 그때까지 남몰래 가슴에 품었던모든 야심을, 혹은 몽상과도 닮은 희망을 접고, 지방 소도시의중견 양조회사 4대 경영자로서 안정된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역동적인 움직임이나 신선한 변화 같은 건 주위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불만을 갖진 않았다. 자신이세상의 새로운 흐름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막연한 초조함도어380

느새 사라졌다. 그에게는 확실한 생활 기반이 있고, 돌아가야할 아담한 집이 있고, 그곳에서는 사랑하는 아내와 그 뱃속에서 건강하게 자라는 태아가 기다리고 있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그는 전망 좋고 평탄한 대지같은, 중년기라는 영역에 발을 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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