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의 일요일들 - 372일간의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일주
손수진 지음 / 씨네21북스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먼저 고백하자면, 너도 한번 떠나보면 인생의 의미를 알게 될거라며 싸이월드 잠언을 써내리는 여행기는 내 취향이 아니다. 여행중에 만난 모든 사람들이 사랑스럽고 친절하고 애닳은 인간들인 건 더욱 인정 못한다(나도 여행 꽤나 해봤지만, 여러분. 그런 저자들은 여러분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일하는 <씨네21>의 칼럼으로 대기업 광고를 씹었다가 직장도 잃을 뻔한 광고쟁이 손수진이 사표를 내고 통장을 털어 1년간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그녀가 너도 한번 떠나보고 도인이 되어 돌아오라는 여행기를 쓰지 않을거란건 분명했다. 심지어 유럽과 북미를 모조리 제외하고 아시아와 중동과 아프리카와 남미라는 고행길을 선택했을 땐 더더욱 확신했다.
  

맙소사. <서른 살의 일요일들>은 기대했던 것 보다 더욱 아찔한, 거의 쥘 베른식 모험이다. 처음 도착한 발리에서 그녀는 잭나이프를 든 강도 가족에게 여행자금을 털리고, 중국 윈난성에서는 대중 앞에서 궁뎅이를 까고 볼 일을 보고, 가슴을 만지고 도망가는 인도 남자들의 낭심을 족족 걷어차고, 삐끼삐끼붐붐(무슨 의민지는 다들 잘 아시리라)을 하자는 시리아의 영감에게 "야 이 개새끼야!"라고 소리지르고, 암내 가득한 아프리카 사람들 사이에서 버스로 수백킬로를 달리고, 페루에서 기니피그 구이를 먹고 고산병으로 그걸 욱욱 토하면서 우유니 사막에 선 뒤, 여행의 끝자락에서 "평생 즐겁게 살게 해주세요!"라고 소리친다. 잠언이 아니라 모험과 여정으로 꾹꾹 눌러담은 이 책은 한국의 서점에서 좀처럼 보기힘든 진짜 여행기다. 
 

나이 서른 다섯이 넘어간 순간부터 나는 세계여행이라는 오랜 꿈을 버렸다. 돈도 있고 돌아올 곳도 있지만 용기라는 게 도무지 나질 않았다. <서른 살의 일요일들>의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다시 꿈을 한번 꿔보기로 했다. 나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될 것 같다는게 아니다. 삐끼삐끼붐붐과 잭 나이프 강도들과 지구에서 가장 더러운 화장실을 마주하고도 살아돌아와 책도 쓸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 책의 제목은 오마주의 의미로다가 <마흔 살의 일요일들>이라 이름 붙이겠다.
<씨네21> 김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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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ore 2011-08-24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여행기, 기대할께요! :D
여행에 게으른 저에게 글로 알려주시면 정말 기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