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후, 한국
공병호 지음 / 해냄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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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호씨의 ‘10년 후,한국’을 읽고…物神 섬기는 경제학적 종말론

[국민일보 2004-09-02 16:14]


고대 그리스의 극작가들은 극적 갈등을 전개하다 수습할 수 없게 되면 기중기로 무대 위에 신(神)을 내려 그로 하여금 갈등을 해결하게 했다. 공병호의 무대에도 기계장치를 타고 내려오는 신이 있다. 이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실 이 전능한 분의 이름은 ‘시장’이다. 이 물신을 섬기는 그는 신학자,즉 경제신학자라 할 수 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자본주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시장’을 주셨으니,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로다. 독생자 시장은 혼자 내버려만 두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 천만 국민을 먹여 살리고도 다섯 광주리 가득 이윤을 남기는 존재.

하지만 노무현 정권 하에서 독생자 시장은 ‘포퓰리즘’이라는 군중에게 모욕을 당하시고,‘좌파’라는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달리셨다가,장사한지 10년 후에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니,이 심판에서 ‘우향우’해서 양이 될지,‘좌향좌’해서 염소가 될지 알아서 결정하라는 것. 이것이 ‘10년 후 한국’이 던지는 메시지다.

경제학적 종말론이라고나 할까. 실제로 이 사회에 종말론적 분위기가 번져 가고 있다. 노동시장 유연화로 고용은 불안정해졌다. 경기마저 풀리지 않으면서 이게 장기적 불황일지 모른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이 불투명성 앞에서 경제주체들은 너나없이 불안감을 느낄 수 밖에. 이 책은 바로 그 불안을 먹고 살려고 시장에 나왔다. “살아남고 싶다면 이제 현실을 직시하라.”

앞날이 캄캄할 때 사람들은 미래를 보는 점쟁이를 찾는 법. 하지만 이 점쟁이가 용하다는 소리를 들을 것 같지는 않다. 이 책에서 예측은 빈약하고 처방은 부실하다. 21세기에는 중국이 커지리라는 놀라운(?) 예측에,시장에서 성공하려면 시장을 알아야 한다는 신선한(?) 처방. 하지만 어떠랴. 종말론적 불안감을 가라앉히는 심리적 효과만 낸다면….

공병호씨는 자유주의자(liberalist)가 아니라 실은 자유지상주의자(libertarian)다. 시장의 중요성과 한계를 고루 보는 자유주의와 달리,자유지상주의는 일방적으로 시장의 자유를 주장하는 과격한 입장이다. 참고로 이 책의 저자는 앞서 낸 책에서 개인들 사이의 거래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부당하다며,인간 장기의 자유거래를 주장하기도 했었다. 시장근본주의라고나 할까?

이와 유사한 이념적 극단성 내지 편향성이 그의 책 곳곳에 흘러 넘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의하면 요 몇 년 동안 대한민국이 사회주의의 길을 걸어왔다고 한다. 눈이 오른쪽으로 쏠려 있다 보니,중도적인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사회주의 정권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그의 주장은 늘 ‘자유주의 시장경제냐,사회주의 계획경제냐’라는 극단적인 흑백론 위에서 전개된다. 오늘날 세계 어느 곳에서도 경제문제를 이렇게 다루지는 않는다. 이 무지막지한 접근방법은 섬세한 터치를 요하는 진짜 경제문제들을 이념의 대기 속으로 증발시켜 사라지게 만든다.

가령 그는 성장이야말로 분배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가. 수출은 늘어나도 내수는 없고,성장을 해도 고용이 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닌가. 이 책에서 공병호씨 자신도 어느 기업가에게 고용부문에 투자하는 것을 삼가라고 권하고 있다.

우리 경제가 기로에 서 있다면, 여기서 필요한 것은 냉전시대에나 통하던 자유주의 프로퍼갠더가 아니라,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한 과학적 분석과 합리적 대안일 게다. 만약 이 책이 대한민국 재계의 현실 인식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10년 후,한국’,정말 암담하다.

진중권(칼럼니스트·중앙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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