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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역사 - 소리로 말하고 함께 어울리다
로버트 필립 지음, 이석호 옮김 / 소소의책 / 2025년 6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증정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클래식에는 문외한에 가까웠지만, 젊은 시절 꽤 오랜 시간 록밴드에서 기타를 연주해 온 나에게 음악은 언제나 중요한 관심의 대상이었다. 대중음악에 익숙한 취향이었지만, 언젠가는 음악사의 큰 흐름 전체를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은 오랫동안 마음 한편에 남아 있던 숙제 같았다. 로버트 필립의 『음악의 역사』는 그 오랜 갈증을 채우기에 가장 적합한 책이었다.

저자 로버트 필립은 영국의 음악가이자 음악학자, 작가로서, BBC 예술 프로듀서와 오픈 대학교의 선임 교수로 활동하며 음악 전반에 대한 깊은 통찰을 쌓아온 인물이다. 방대한 지식과 복잡한 역사를 풀어내는 그의 글은 전문적이면서도 지나치게 학술적이지 않다. 음악에 대한 애정이 문장 곳곳에 묻어나며, 음악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도 부담 없이 읽어낼 수 있도록 배려되어 있다.
『음악의 역사』는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의 전자음악에 이르기까지, 단순한 연대기나 작곡가 중심의 나열이 아니라 시대정신과 음악 간의 상호작용에 주목한다. 얼핏 클래식 중심의 구성처럼 보이지만, 읽는 동안 오히려 록, 재즈, 대중음악과의 연결점을 지속적으로 발견하게 된다. 바흐를 설명하면서 힙합의 샘플링을 떠올리고, 쇤베르크의 무조성과 현대 록의 실험성 사이에서 공통점을 발견하며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된다. 일부 대중음악에 국한된 이해로 스스로를 음악 애호가라 여겨왔던 나는, 이 책을 통해 음악이라는 길고도 풍성한 이야기 속에서 내가 보고 들어온 것이 얼마나 작은 일부였는지를 실감하게 되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책 후반부에서 다룬 블루스와 재즈, 그리고 그 이후 빅밴드와 비밥으로 이어지는 흐름이다. 필립은 이를 단순한 장르적 변천이 아니라, 사회적·문화적 의미를 지닌 역사로 풀어낸다. 블루스는 억압받은 이들의 정서를 담은 음악이었고, 재즈는 그 토양 위에서 예술성과 즉흥성을 꽃피웠다. 빅밴드는 전쟁과 경제위기 속에서 대중에게 위로가 되었으며, 비밥은 체제에 대한 저항과 자유의 상징이었다. 고전 음악의 이야기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이 대중음악에 대한 서술은 장르 간의 경계를 허물고, 음악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준다.
『음악의 역사』는 클래식 애호가는 물론, 음악을 조금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다. 장르의 틀을 넘어, 시대와 사회, 그리고 인간의 감정이 어떻게 음악이라는 언어로 이어져 왔는지를 성실하게 보여주는 이 책은, 진지한 — 혹은 더 진지해지고자 하는 — 음악 애호가들에게 더없이 훌륭한 가이드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