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망가지기 쉬운 영혼들 - 우리가 무너진 삶을 회복하는 방식에 관하여
에리카 산체스 지음, 장상미 옮김 / 동녘 / 2024년 1월
평점 :
[망가지기 쉬운 영혼들 - 에리카 산체스]
2024.02.18. ~ 2024.02.26. (324P)

'망가지기 쉬운 영혼들‘의 원제는 ’Crying in the
Bathroom‘이다.
제목처럼 욕실은 아니지만, 표지에는 푸르스름해 보이기도 하는
보랏빛 공간 속에 머리끝까지 침대보를 뒤집어 쓴 누군가가 램프에 불도 켜지 않은 채 보라색 소파에 앉아있다. 우울증
환자는 청색이나 보라색과 같은 한색(寒色)을 선호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저 침대보 속의 인물은 치열하게 자신을 이겨내고자 했던 과거의 저자일 것이다. 혹은, 그 당시의 저자와 같이 힘든 시기를 겪고 있거나 극복해 나가고
있는 우리 중 누군가 일지도 모르겠다. 뒤집어 쓴 침대보는 자신을 힘들게 만드는 외부의 자극을 차단하거나, 적극적으로 혼자이고자 하는 의지의 발현이거나, 아니면 둘 다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이런 어두운 톤의 그림인데도 보이는 각도에 따라 무지개빛 스펙트럼이 언뜻언뜻
비친다. 멋대로의 생각이지만, 이 무지개가 책의 내용과 관련하여
어떤 희망을 상징해 심어둔 것이라면 이야말로 더없이 훌륭하고 아름다운 표지라고 생각한다.
에리카 산체스(Erika L. Sánchez)는 미국의 시인이자
작가이며, 멕시코 이주노동자의 딸로 멕시코 이민 2세대이다. 그는 일리노이주 키케로에서 태어난 미국인임에도 가난과 피부색 그리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많은 차별과 억압 속에
자라났다. 더한 가난과 고통을 감내해 온 부모의 정신적 외상이 대물림 되어 그의 내면에 자리 잡았고, 식민주의의 찌꺼기와 백인우월주의체제, 남성우월사상이 초래하는 폭력과도
같은 부조리들이 외부적으로도 작용하여 스스로의 가치를 절하하고,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살 자격이 있는지를
의심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그는 바라는 것이 많았고 성취하고자 하는 욕망 또한 강했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그는 글과 그림, 여러 예술 안에서 인생의
진리와 가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것을 복제하고 실현하고자 하는 갈망을 버리지 않고 끊임없이 추구하며
살아간다. 그 여정은 현실과 너무도 동떨어진 길고 외로운 것이기에, 이상과
현실사이의 큰 괴리 속에서 극심한 정신적인 문제를 오래도록 겪는다. 그러나 그는 내면의 빈곤이 가진
크기만큼 그 결핍을 채우고자 하는 강한 ‘인간혁명’의 의지를
갖고 해학적이면서도 가끔은 자학같아 보이기도 하는 유머에 의지하여 많은 고난을 이겨낸다. 물론 스스로를
포기하고자 했던 위기도 있었지만 상당기간 머리통에 전류를 통과시킬 정도의 결정을 하는 것 또한 스스로를 불태울 만큼의 강한 의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결국은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진정 자신이 원해왔던 진실된 삶을 찾아내게 된다. 문학과 미술을 포함한 여러 장르의 예술을 체험하면서도 그 안에서 진실을 발견하고 그 본질을 삶 속에서 실현하고자
했던 그의 모습에서 비범함을 느낀다. 고난과 고통 속에서도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자신과
자기를 둘러싼 세상을 끝내 바꾸어 가는 모습에서 존경심이 느껴진다.
처음 독서를 시작했을 때에는 작가의 걸걸한 입담과 거침없는 단어 선정에 불편함을 느꼈었다. 계속 이럴건가 하는 우려를 갖고 찜찜한 기분으로 읽어가는 동안 어느새 작가와 그 주변인들의 여러 가지 이야기에
빠져들었고 나도 모르는 새에 작가의 삶을 안타까워하고 또 응원하고 있었다. 사랑해 마지않는 딸 ‘소저너’에게 남긴 메시지가 담긴 마지막 페이지를 보고 이렇게도 진실되게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린 이유를 짐작해보았고, 한편으로는 ‘까발린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솔직한 감정과 표현을 실은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다. 어느 정도 자란 딸이 읽었을 때, 과거의 큰 짐을 자신에게 대물림
시키지 않기 위해 엄마가 어떻게 해왔는지를 생생하게 체험하게 될 것이다. 작가는 아마도 그 희생을 알아주기를
바라기 보다는, 세대가 바뀌어도 드라마틱하게 변화할 가능성이 없는 세상에서, 멕시코 이민 3세대의 젊은 유색인 여성으로 살아갈 ‘소저너’가 더욱 훌륭하고 진실된 삶을 자신보다는 힘겹지 않게 찾아낼
수 있게 하는 길잡이가 되길 바라며 이 글을 쓰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훌륭한 배우자인 ‘윌’이 자녀들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는 랩음반 또한 어떨지 궁금하다.
두엔데(duende)와 사우다지(saudade) 사이에서 양극성 장애를 안고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을
미래에 맡겨 원하는 모습으로 태어나고 또 태어나길 거듭했던 작가가 마침내 찾아낸 진실로 원했던 그 삶은 그의 행동에 담긴 힘이 가져온 결과로써의 Karma이다. 그것은 더 이상 차가운 색이 아니고 밝고 따뜻한 무지개처럼
빛난다.
ps.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는 사전적인 의미와는 또 다르게 여러 가지로 확장되어 있거나 너무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있는 듯하여 쉽게 거론하기 힘들다고
생각해왔지만 본문 중에서 어떤 깨달음을 하나 얻은 것 같다. 페미니스트가 여성이어야 하는 것이 아니었구나. 배우자인 ‘윌’과 같은
것이라면 나도 페미니스트가 되어야겠다 생각한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