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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와 아미 컬처
이지행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19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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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먼 미래에 지구를 탐사하던 신인류가 무너진 20세기 건물더미를 발견했다.
그들은 건물 더미에서 당시 인류가 쓰던 물건들을 찾아냈다.
물건이 발견될때마다 그들은 흥분하며 그 쓰임새에 대해 다양한 이론과 추측을 쏟아냈다.
어느날 그들을 혼란에 빠트린 물건이 나타났다. 학자들과 전문가들이 덤벼들어 격한 토론을 벌인 뒤에 결론을 냈다.
'20세기 인류의 목걸이 겸용 머리 장식' 이라고!

전에 어디선가 들었던 이야기다.
이제 방탄소년단(BTS)이 전세계적으로 관심을 받는 건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그들을 좋아하고 말고는 상관없다,
방탄소년단이 무엇을 입고 무엇을 마시고 무슨 노래를 듣는지, 심지어 공항을 스쳐지나는 짧은 영상에서 그들이 신은 신발에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한마디로 방타소년단은 사람들을 움직이는 힘이다.
그리고 그 힘은 그들을 지지하는 팬, 아미에게서 나온다.
이러다보니 방탄소년단과 아미를 분석하고 그 힘이 움직이는 방향을 가늠하려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생각을 쏟아내고 있다.
그 사람들이 내놓는 분석 가운데 머리가 끄덕여지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때로는 변기커버를 머리장식이라 선언하는 느낌도...
진지하고 핵심을 파악하는 연구가 참 드믈다. 그런 분석에 늘 목마르다.
<BTS와 아미컬처>를 읽고 정말 기뻤다.
방탄소년단이 아니라 그 팬덤 아미를 주인공을 했기 때문이고 저자 이지행교수가 연구자이자 아미인 아카-팬이어서다.
저자가 인용한 헨리 젱킨스의 말처럼 ' 팬덤에 대해 아는 모든 것은 팬덤 안에서 배운 것'이니 직접 경험했거나 보고 들은 것을 썼을 거라 믿으니까.
책을 읽다가 웃고 때로 감동받아 먹먹했다.
아미를 비롯한 K팝 팬덤의 투표 능력을 '트럼프 당선을 위해 마치 기계처럼 리트윗 했던 러시아 봇들의 양쪽 뺨을 후려치는 수준(19쪽)'이라 하고 '현재 타 팬들이 아미를 가장 재수 없어 하는 이유 1위는 아마도 방탄의 음악과 서사에 대한 과도한 의미 부여 또는 과잉 해석 같은 부분일 것(47쪽)'이라는 말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다.
저자는 이러한 과잉(?) 반응 자체가 방탄현상의 특이성이라고 말한다.
"팬들 각자의 인생 단계 어디서 만났느냐 하는 타이밍, 그리고 이시대를 감싸고 있는 대중 정서와 얼마나 조응하는가 하는 타이밍, 그 타이밍이 바로 시대의 아이콘을 만드는 관건인 것이다.
만약 문화연구자로서 방탄이 다른 가수들과 비교해 무엇이 그렇게 특별하길래 주목하느냐 묻는다면, 그들에 대한 이런 집단적이고 끊임없는 과잉반응 자체가 바로 주목할 만한 현상이라고 대답하는 게 맞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곳은 바로 현상이 또 다른 현상을 만들어 내는 포스트모던 세계이기 때문에(48쪽)"
저자는 글로벌한 취향의 공동체 아미가 방탄소년단을 홍보하고 인정받게 하기 위해 피땀눈물을 흘리며 노력했던 일들을 열거했다.
전세계를 아우르는 다양한 사례들은 단순히 정보나 기록을 넘어 헌신적이고 감동적이다.
아미들이 "일단 앨범만 내. 나머지는 우리가 할게.(70쪽)'라는 열성적이고 맹목적 지지자이기만 한 건 아니다.
자선 활동과 정치 사회적 이슈에 적극 개입해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결국 단순한 소비자 집단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장해 아미를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주체로 만들어 내는 것은 방탄의 메세지, 그리고 거기에 녹아 있는 사회적 주체로서의 성장 서사인 것이다. (134쪽)"
"이들(방탄소년단)의 성장 서사는 단순한 공감을 넘어 팬들의 삶에 실제적인 변화를 일으키게 하는 뭔가가 있다.
변화에 대한 열망은 단순히 팬들의 개인적인 삶에 머무르지 않고 시회 전반에 대한 변화의 열망으로 확장된다.
'개인이 행복해지기 위해선 우리 하나 하나가 모여 만든 사회라는 곳이 변해야 한다. 그러니 사회에 뭔가 변화를 초래할 수 있도록 우리가 움직이자.'
바로 이것이 한낱 소비자 주체로 취급되어 왔던 팬덤이 사회적 주체로 거듭나는 순간이다. (147쪽)'
방탄소년단과 아미들은 계속 변화하고 있다. 물론 변화와 성장이 같은 말은 아니다.
"지금 방탄과 아미 현상을 만들어 낸 독보적인 힘은 기존 K팝이 가진 배타성을 극복하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확장해 온 데 있으며 그 현상을 만들어 낸 주체는 다름 아닌 아미다.
어쩌면 방탄만큼이나 아미 역시 성장과 변화를 만들어 온 아이콘임을 스스로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 (184쪽)"
거대한 공동체 아미, 그 안에서 아미들은 함께 움직이며 유대감을 느낀다.
현 사회에서 우리는 개인의 존엄성을 존중받지 못하고 자신이 바라는 걸 생각할 여유도 없다.
우리 대부분은 최고의 위치에 오를 가능성이 없고 돈 걱정없는 삶을 꿈꾸지도 못한다.
목적이나 의도없이 기쁘고 즐거웠던 일이 얼마나 있었을까?
우리는 지친 피해자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방탄소년단이 말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런 자신을 사랑하라(198쪽)'
"꼭 그렇게 살지 않아도 괜찮다. 너 자체로도 괜찮다.(199쪽)"
아미는 이런 위로에 마음을 열고 함께하는 공동체다.
그 안에서 잃어버렸던 놀이의 기쁨을 느끼고 행복을 나눈다.
방탄현상과 아미컬처 바탕에는 자발적으로 이어진 다양한 개인들이 있다.
"유대가 상실된 시대에 혼자 감당해야 했던 불안과 우울을 동시대의 아미들과 함게 견디고 있다는 동질감.(199쪽)'
방탄소년단과 이미들이 세계 음악 시장 구조를 흔들고 흐름을 바꾸고 있다.
이런 변화는 연대를 통해 가능하다.
변화를 이끌어낸 경험을 통해 우리는 성장한다.
<BTS와 아미컬처>는 이런 변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 봐야 할 책이다.
사람들이 진정 바라는 게 무엇인지 알고 싶은 사람들도.
방탄소년단 노래 '소우주'의 가사 처럼
우리 모두는 ' 한 사람에 하나의 역사 한 사람에 하나의 별. 70억개의 빛으로 빛나는 70억 가지의 world'이며 서로를 보며 꿈을 꾸는 사람들이다.
저자의 말대로 방탄소년단과 아미는 쉼 없이 아무도 가지 않았던 미지의 길을 가고 있다.
문화비평가로서 그걸 그냥 흘려보낼수는 없을 거라 생각하다.
머잖아 나올 이지행 교수의 다음 책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