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명문가의 규수인 예원은 어린 시절 정혼자였던 원이 가문이 망하게 되자 매우 낙담하게 됩니다. 원의 가문은 부마가 되는 것을 부친이 거부하자 왕의 노여움을 사서 원은 금혼령을 받고 집안이 역적으로 몰락하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을 흠모하고 있던 예원은 그가 자기 집으로 오자 노비인 원에게 존대말을 쓰며 원이 다시 일어나도록 돕습니다.원도 예원을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둘은 팔관회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사고를 치게 되는데 이것을 예원의 어머니가 알게 되고 원은 죽을 뻔합니다. 원은 송으로 도망가서 고려왕과 같은 고관이 되어서 오고 결국 둘은 다시 만나게 되며 이야기가 시작이 되는데요.우선 이 작품의 장점은 나름대로 어휘에 있어서 한자어를 적재적소에 잘 넣었다는 것입니다. 한자어를 다양하게 사용하면서도 용례에 어긋난 것이 없고,문어체와 함께 자연스럽게 글에 녹아들어 유려하다는 느낌을 줍니다.다만 고전문학 느낌이 나기 때문에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것 같습니다.아쉬운 점은 배경만 고려이지 조선시대를 기반으로 쓴 것이 너무나 분명하다는 점입니다. 부마를 거절하다 노비가 된 사례는 조선시대 태종의 것이고, 양반이라는 신분 자체도 조선시대에 존재했던 것이며, 그 외에도 많은 것들이 고려시대보다는 조선시대에 매우 가깝습니다. 고려시대에는 왕비에게만 썼던 호칭인 옹주를 조선시대처럼 사용하는 것도 모자라 아예 정신옹주 일화를 작중에 그대로 갖다 썼는데 이럴 바에는 가상국가로 배경을 설정하는 게 낫지 않았나 싶습니다.게다가 후반부에는 분명 송나라 시대에서 명나라 공녀 이야기가 나오는 등 작품 내에서 몇백 년의 시간을 이동하는 설정오류까지 보여줍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맨스로서의 감정선은 비현실적이긴 하나 괜찮습니다. 둘은 처음부터 서로를 좋아했고 끝날 때까지 한결같습니다. 남주인 원도 여주인 예원도 육체적으로 서로가 처음이었고 정신적으로도 서로가 처음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변치 않습니다.현실적으로 이런 사랑은 없지만, 장르소설 특성상 많은 독자들이 꿈꾸는 낭만을 잘 그려냈다고 생각합니다.제목 부분을 좀 더 동양물이라는 걸 알 수 있도록 지었다면 더 많은 독자들이 이 작품을 볼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제목이 장벽 역할을 할 것 같아 표제 선정이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