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 경제학 학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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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학과 세계 사회학
정수복 지음 / 푸른역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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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마스 스캔들- 화려한 실패의 지식사회학
이시윤 지음 / 파이돈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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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 지식의 담론사- 발전과 냉전의 얽힘
김동혁 외 지음, 오경환 엮음,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 기획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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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의 좌파적 기원- 냉전시대 경제학 교류의 숨겨진 역사
조하나 보크만 지음, 홍기빈 옮김 / 글항아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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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 관련 책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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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란 무엇인가 (반양장)- 벌린, 아렌트, 푸코의 자유 개념을 넘어
사이토 준이치 지음, 이혜진.김수영.송미정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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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주체 권력- 메를로퐁티와 푸코의 몸 개념
강미라 지음 / 이학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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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정치란 무엇인가- 푸코에서 생명자본까지 현대 정치의 수수께끼를 밝힌다
토마스 렘케 지음, 심성보 옮김 / 그린비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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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와 문학- 글쓰기의 계보학을 향하여
시몬 듀링 지음, 오경심 옮김 / 동문선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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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삼국지 - 글로벌 반도체 산업 재편과 한국의 활로
권석준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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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균형 블로그


미‧중 패권경쟁의 전선이 기술 및 산업 영역까지 번지면서 이제 국제정치에 대해 말하기 위해 반도체 제조기술까지 공부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책은 ‘경제안보’가 화두로 떠오른 최근의 국제정치적 맥락을 비교적 충실히 고려하면서 반도체 산업의 역사와 최근의 기술적 쟁점을 소개하고, 한국 반도체 산업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이 주식 투자자 독자를 염두에 둔 반도체 기술 관련 서적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다만 서술의 밀도가 균일하지 않고 구성도 그다지 유기적이지 않아서 단행본으로서의 완결성은 떨어지는 편이다.

 

1. 반도체 산업 주도권 이행: 미국에서 일본으로

역사적으로 반도체 산업의 주도권은 미국(70년대), 일본(80년대 초‧중반), 한국과 대만(2000년대)으로 ‘서진’해왔다. 2010년대 이후로는 중국이 ‘반도체 굴기’ 기치 하에 그 주도권을 이어받으려고 하고, 미국은 공급망 전체를 재편함으로써 이에 맞서는 모양새다.

반도체는 제품수명주기가 짧은데다 거대 설비투자가 필요해서 신규기업의 진입이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반도체 산업의 주도권이 미국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다시 한국과 대만으로 이동해온 역사는 그 자체로 하나의 논의거리다. 특히 미국으로부터 주도권을 빼앗았다가 다시 한국과 대만에게 주도권을 내준 일본 반도체의 사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통 반도체 산업의 주도권 이행 과정은 기업 간 출혈을 감수하는 경쟁적인 저가공세를 통한 ‘치킨 게임’으로 설명되곤 한다. 반도체 산업의 주도권이 AMD, 마이크론, 인텔 같은 미국 기업으로부터 일본의 ‘반도체 5인방(NEC, 히타치, 미쓰비시, 후지쓰, 도시바)’으로 넘어오게 된 것은 기본적으로 최초의 ‘반도체 치킨 게임’ 결과였다. 일본은 정부(통산산업성, MITI)의 적극적인 산업육성 정책으로 자국 내에 수직계열화 된 독자적인 반도체 산업생태계를 구축하고 있었고, 이것에 기초하여 미국보다 높은 공정 수율과 품질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일본 특유의 장인정신(‘일소현명’)으로 축적해온 기초과학 역량이 그 바탕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여기에 엔저 호재까지 겹쳐 일본 반도체는 막대한 자금력에 기초하여 기존의 강자들과 치킨 게임을 감내할 수 있었다.

미국은 일본 반도체의 약진을 ‘제2의 진주만 습격’이라고 부르며 USTR 제소(1985), 플라자 합의(1985), 미‧일 반도체 협정(1986)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견제했다. 여기에 일본 기업들의 기술적 오판들이 겹쳤다. 후지쓰는 NOR형 대 NAND형 사이의 갈림길에서 NOR형을 선택하는 오판을 범했고, 히타치는 트렌치형과 스택형 사이에서 트렌치형을 선택하는 오판을 범했으며, NEC는 램버스와 DDR 사이에서 램버스를 선택하는 오판을 범했다(삼성전자는 정확히 반대되는 선택 – NAND, 스택형, DDR – 을 한다). NEC, 히타치, 미쓰비시가 힘을 합쳐 세운 엘피다는 높은 수율을 유지하기 위해 고비용의 OSAT(검사 및 패키징 공정)에 집착하는 바람에 2000년대 치킨게임을 버텨내지 못하고 파산하고 만다.

이 기술적 오판들의 기저에는 기술적 완성도를 중시하는 일본 특유의 기업문화가 자리하고 있다. 일본 기업들은 기존의 기술을 과감히 포기하고 ‘파괴적 혁신 기술’을 도입하기 보다, 기존 기술의 완성도를 높여 ‘오버 스펙’ 제품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는 파괴적 혁신을 어렵게 하여 세대교체 주기가 짧은 반도체 제품 특성에 적합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격 인상으로 인한 가성비 저하로 다가올 뿐이었다(20년 동안 고장 나지 않는 비싼 스마트폰을 상상해보면 이해가 쉽다. 2~3년 안으로 신제품이 나올 것이 뻔히 예상되는데 누가 이런 걸 사겠는가?). 일본의 이런 기업문화는 인사조직적으로는 개발 부서에 대한 우대로 나타난다. 제품 순환 주기가 짧은 반도체 같은 경우 시장의 요구 사항에 민감한 마케팅 부서의 의견이 더 중요할 수 있으며, 개발과 양산 부서를 분리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삼성 같은 경우 개발과 양산을 분리하지 않고, 연구개발과 마케팅 부서는 순환 배치하고 있다.

또한 일본 정부의 과도한 개입은 경영 효율화를 위한 사업 분리나 정리를 막아서 일본 기업들이 반도체 산업구조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게 했다. 80년대에는 반도체 산업구조가 ‘집약 소자 재조(IDM)’ 방식에서 ‘팹리스(설계)’와 ‘파운드리(생산)’로 분화되기 시작했는데, 일본은 기술 유출을 우려하여 해외 파운드리 기업에 생산 위탁을 불허하고, 정부가 주도하여 파운드리 회사를 새로 만들고자 하였다(국가 파운드리 신설 프로젝트). 그러나 일본 기업들끼리 이해관계가 어긋나 정부의 파운드리 프로젝트가 흐지부지 되면서 일본 기업들은 IDM 방식으로부터 재빨리 탈피하지 못했고, 이것이 효율성 저하로 이어졌다. 여기에 거시적인 경제위기(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08년 글로벌 금융위기, 11년 동일본 대지진)가 겹치면서 일본 반도체는 한국과 대만에 주도권을 내주게 된다.


2. 한국과 대만: 삼성전자와 TSMC                                     

한국의 삼성전자, 금성반도체, 현대전자는 팹리스와 파운드리로 분화되는 반도체 시장의 흐름 속에서 메모리 반도체를 선택했다. 한국은 산-학-연-관 연합의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인 ‘초고집적 반도체 기술 공동개발사업’(1986)을 통해 메모리 반도체 기술 개발 속도전에 뛰어들었다.  삼성전자는 1996년 1Gb DRAM 개발에 세계최초로 성공하며 업계 지배를 확실히 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일본에 대해서 그랬던 것처럼 1997년 외환위기를 틈타 한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견제를 시작했는데, 한국은 이에 선제적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한다. 이때 LG 반도체가 현대전자에 인수되었고(현대반도체 → 하이닉스 반도체), 하이닉스 반도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쳐 2011년 SK 그룹에 의해 인수되면서 SK 하이닉스가 되었다.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는 현재까지 마이크론과 함께 전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과점하고 있다.

한편, 대만의 TSMC는 파운드리에 집중하면서 급성장했다.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사훈에서 알 수 있듯, TSMC의 경쟁력은 순수하게 파운드리 부문에 집중함으로써 쌓은 고객과의 신뢰이다. 팹리스가 파운드리에 제조를 맡기게 되면 설계기술이 유출될 것을 우려할 수밖에 없는데, TSMC는 이 설계기술을 통해 독자적으로 칩을 생산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삼성전자의 경우 파운드리 사업부가 분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애플이나 퀄컴 같은 팹리스 기업이 삼성 파운드리에 제조를 맡기면 자사의 설계 기술이 경쟁사인 삼성에 노출될 것을 감수해야 한다(삼성전자는 2010년부터 파운드리 사업을 본격화하면서 TSMC와 경쟁하기 시작했는데, 여전히 시장 점유율은 TSMC의 1/3 정도다). TSMC는 이러한 신뢰에 기반하여 다양한 팹리스 업체들과 협력하고 있으며 맞춤형 공정 등을 제공하여 지속적으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와 같은 TSMC의 막강한 영향력을 잘 표현해주는 말이 ‘슈퍼을’이다. 팹리스는 파운드리의 입장에서 고객사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파운드리가 ‘을’의 입장에 놓이게 되나, TSMC는 ‘을’임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갑’의 위치(슈퍼을)를 점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파운드리 사업의 기술적 핵심은 초 미세 노광 공정이다. 반도체 회로의 집적도가 18개월에 2배씩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도 나노 수준에서는 한계에 봉착하게 되는데, 이 기술적 난관을 타개할 대안이 바로 새로운 광원을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DUV 방식으로 7나노 이하의 회로를 그리려면 멀티 패터닝 등 부가기술을 동원해야 하는데, EUV 광원을 사용하면 비용을 절감하면서 7나노 이하의 선단 공정을 구현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트랜지스터 구조도 기존의 핀펫(FinFET)에서 게이트-올-어라운드(GAA) 방식으로 바꿔야 하는데 삼성전자는 2023년부터 3나노 이하의 선단공정에 GAAFET을 활용할 예정이다. 파운드리의 기술적 핵심인 노광 공정에서 7나노 EUV 공정을 도입한 것은 TSMC와 삼성전자 뿐이기 때문에 삼성전자는 TSMC의 유일한 경쟁자가 된다. 그리고 이 EUV 노광장비를 유일하게 공급할 수 있는 또다른 ‘슈퍼을’ 기업은 네덜란드의 ASML이다.

 

3. 중국 반도체 굴기의 기술적 전망

중국 반도체 굴기의 전망도 바로 이 초미세 패터닝 기술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화웨이는 중국 공산당의 전폭적인 지원 및 낮은 임금을 통한 가격경쟁력의 확보에 더해 무차별적인 기술 IP(지적재산권) 침해를 통해 세계 통신장비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다. 화웨이의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이 자체 모바일 AP(기린)나 CPU(쿤펑)를 설계하면 TSMC가 이것을 제조하여 납품하는 것이 중국의 반도체 공급 방식이었다. 그런데 2019년 트럼프의 화웨이 제재, 2020년 세컨더리 보이콧을 포함한 미국의 소재‧부품‧장비 기술 구매 금지 조치가 이어지며 이 공급망에 차질이 빚어졌다. 화웨이 사태 이후 TSMC는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칩 공급을 중단했으며, 삼성전자 등 다른 파운드리도 세컨더리 보이콧 때문에 화웨이에 반도체칩을 공급할 수 없다. 그렇다면 중국정부로서는 자국의 파운드리인 SMIC의 양산능력을 일단 확충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다.

그런데 SMIC의 기술력은 아직 14나노 수준에 머물러 있는데다, EUV 장비를 공급해줄 ASML 역시 세컨더리 보이콧의 영향력 하에 있어서 섣불리 중국에 노광장비를 공급해줄 수 없는 상황이다. 심지어 하이실리콘의 설계 기술 역시 미국이 독점하고 있는 EDA(전자 설계 자동화 소프트웨어)에 기반하고 있어 중국은 독자적인 설계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도 할 수 없다. 결국 미국 주도의 대중국 반도체 봉쇄가 본격화될 경우, 중국이 자체 기술만으로 독자적인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은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직면한 한계는 중국 반도체가 기술 따라잡기 과정에서 선택한 발전 방식이 지니고 있던 문제점이 드러난 것일 뿐이다. 중국은 기술 IP 탈취 뿐만 아니라 ‘천인 계획’이라는 이름의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인재 유치 정책을 통해 선도 기업 출신 엔지니어들의 암묵지(knowhow)에 의지하여 기술 격차를 줄여왔다. 대표적으로 SMIC는 TSMC 출신의 량멍쑹을 CEO로 영입함으로써 미세 패터닝 공정을 28나노에서 14나노로 급진전시킨 바 있다(첨단 기술에 대한 지식이 엔지니어의 암묵지 형태로 옮겨 다닌다는 것이 의외다). 이와 같은 따라하기 식 발전 방식은 미국의 대중국 봉쇄에 속수무책으로, 중국이 미국에 의존하지 않는 자체적인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의미로 천명한 ‘난니완 프로젝트’는 과도한 수사일 뿐임이 드러난다. 다만 중국이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해온 기초과학 연구는 유일한 변수다. 만약 중국이 양자컴퓨터와 같이 ‘게임 체인저’에 해당하는 기술을 먼저 개발한다면 전세는 역전될 수 있다.

최근 미국은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및 칩4 동맹 등을 통해 고도로 분업화되어 있는 현재의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무너뜨리고 중국을 배제한 새로운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최근 삼성전자와 TSMC가 각각 텍사스와 애리조나에 반도체 팹을 건설한 것 역시 미국의 ‘프렌드-쇼어링’을 통한 공급망 재편의 일환이다. 중국이 이 상황을 버티고 독자적인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는데 성공한다면, 세상에는 완전히 다른(서로 호환되지 않는) 기술적 표준을 가진 2개의 반도체 ‘평행 세계’가 공존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일단 기술적으로 말이 안 될 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 양국 모두에게 막대한 비용(시장 축소)을 안길 것이며, 전 세계 모든 산업에 반도체가 필수재가 된 상황을 고려할 때 그 정도의 극단적인 기술적 분기는 없을 것으로 저자는 전망한다. 미국이 실제로 노리는 것은 ‘중국 반도체 시장의 고사보다는 중국의 차세대 반도체 기술 및 고부가가치 시장에서의 1인자 등극을 막거나 … 그 시점을 최대한 미루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4. 한국 반도체 산업이 나아가야 할 길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기적으로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해야만 한다면, 한국은 미국에 대하여 ‘슈퍼을’이 되어야 한다. 미국 주도의 양자 ICT 등 차세대 반도체 개발에 대등한 파트너로서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하고, 미국의 프렌드-쇼어링 시에는 공격적인 미세 공정 팹을 선제적으로 증설하여 TSMC와의 경쟁에서 우위에 설 필요가 있다. 실제로 TSMC는 중국과 같은 중화권으로서 인적 자원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미‧중 양자택일의 국면에서 만큼은 삼성전자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IPEF의 핵심 축인 인도, 아세안, 호주를 적극적으로 우리 가치사슬에 편입시켜야 한다. 인도는 팹리스 및 부품 설계, 호주는 차세대 반도체 개발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으며, 아세안은 인구가 많아 소비시장으로서 중국을 대체할 수 있다는 점을 잘 활용해야 한다.

중국에 대해서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야 한다. 한국과 시장이 겹치는데다 기술격차도 많이 줄어든 만큼, 한국의 대중국 수출 감소라는 추세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굳이 정부가 이를 부추길 필요는 없다는 의미이다. 한편, 중국으로의 기술(암묵지) 유출을 막기 위해 엔지니어에 대한 처우 수준을 최소한 중국 기업이 제시하는 수준 이상으로 격상시킬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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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10개 만들기 - 한국 교육의 근본을 바꾸다
김종영 지음 / 살림터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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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김종영 교수(이하 존칭 생략)의 애독자이다. 그는 이철승 교수와 함께 한국사회의 중요하고 논쟁적인 주제에 대해 현역 사회학자로서 회피하는 기색 없이 ‘정면승부’하는 탁월한 비판적 지성인이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은 연배도 비슷하다.

“지식과 권력 3부작(『지배 받는 지배자』, 『지민의 탄생』, 『하이브리드 한의학』)” 다음으로 김종영이 관심을 기울이는 주제는 ‘교육사회학’이다. 이전에도 강준만(“서울대의 나라”)이나 김상봉(“학벌사회”) 같은 ‘대학교수’들이 학벌문제에 대해 개탄하는 목소리를 낸 적은 있었지만, 대부분 학벌이 갖는 ‘지위재’로서의 성격을 강조하는데 그쳐 구체적인 대안을 도출하는 데는 한계를 보였다. 김종영은 대학 학벌의 ‘지위재’로서의 성격에 충분히 주목하는 동시에, 현대 지식자본주의 사회에서 대학이 지니고 있는 ‘창조적 에너지’도 고려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러한 ‘지위경쟁이론’과 ‘대학사회학의 기술기능론’의 종합에 더해 조지프 피시킨의 “병목사회론”을 참고하여 내린 오늘날 한국사회 교육문제에 대한 김종영의 처방은 “서울대 10개 만들기”이다.

“병목사회론”의 아이디어는 간단하다. 한 사회에서 지위를 얻기 위한 기회구조는 마치 고속도로처럼 되어 있는데, 길이 충분히 넓지 않으면 ‘교통체증’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국과 같이 10대 시절의 평가만으로 이후 인생에서의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다시피 하는 ‘중요한 시험 사회(big test society)’는 고속도로가 극단적으로 좁아 교통체증도 더 심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부여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기회구조 자체를 다원화하는, ‘길을 넓히는’ 개혁이 필요하다. 저자는 작금의 ‘대학 병목체제’를 대학, 공간, 시험, 계급, 직업의 병목으로 분석하고,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통해 한국사회가 ‘교육다원체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사회를 ‘병목사회’로 인식함으로써 기각할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입시파’와 ‘개천용 학파’의 교육개혁안이다. ‘입시파’나 ‘개천용학파’는 ‘입시제도’를 적절히 조작해서 ‘개천에서 용 나는 상황’을 자주 만드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가령, 근시안적인 이해관계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학부모와 사교육 세력 및 교육부 관료들로 이루어진 ‘교육지옥동맹’은 기껏해야 수시-정시 논쟁 정도에 몰두하면서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는데 실패하고 있다. 스타강사 출신 교육정책전문가인 이범이 제안한 ‘공동입학제’도 결국 입시제도 조율에 매달린다.

김창환 교수나 최성수 교수 같은 데이터 사회학자들도 이 ‘입시 논쟁’에 갇혀 공허한 양적연구에 골몰하고 있다. 이들이 주도하는 교육불평등 담론은 교육사회학에서 자주 사용하는 ‘OED 삼각형’(O: Origin,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E: Education, 학업성취/D: Destination, 자녀의 사회경제적 지위)의 틀 속에서 교육이 세대 간 계층이동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었는지를 통계적으로 검증하는데 집착하는데, 저자가 보기에는 이 삼각형 자체가 ‘개천용 학파’스러운 문제설정에 갇혀 있다. 중요한 것은 교육과 소득으로 단순화된 추상적 모형의 통계적 검정이 아니라, 다양한 교육현상들이 서로 맞물려 작동하고 있는 거대한 ‘대학병목 체제’를 넘어서는 일이다. ‘고속도로 비유’를 이어가자면, 대부분의 ‘교육전문가’라는 사람들은 길을 넓힐 생각은 하지 않고, 비좁은 도로에서 누가 끼어들지는 않는지, 새치기를 하지는 않는지, 고속도로에 잡상인은 기웃거리지 않는지 단속하는 일에만 병적으로 집착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반칙이 발견되면 온국민이 단합하여 ‘공분’하는 것만 반복하고 있다. 이런 유형의 교육개혁 논의는 공회전일 뿐만 아니라, 기존의 독점적인 대학 병목체제를 확대 재생산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이래서야 문제가 해결될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서울대를 10개 만들자’는 구호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는 경상대 정진상 교수가 2004년에 선구적으로 제안했던 ‘대학통합네트워크’를 약간 변형한 것이다. 정진상은 서울대 학부를 폐지하고, 국립대들을 ‘통합네트워크’로 통폐합, 학생들에게 동일한 학부강의를 제공하고 졸업하면 동일한 졸업장을 수여함으로써 학부를 유럽처럼 ‘평준화’하여 운영하자고 주장했다. 이후 민교협, 서울시교육청, 사걱세 등이 정진상의 아이디어를 수정 보완하며 다양한 안들을 내놓았지만, 이들은 입시제도, 학제개편 등을 포함한 ‘최대주의적’ 개혁을 지향한 탓에 현실화 가능성을 오히려 낮추었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저자는 미국의 다원화된 ‘캘리포니아 대학체제’를 벤치마킹하여 상향 평준화된 부분적 대학통합네트워크를 선(先)운영하자고 제안한다. 현재의 SKY 독점 대학체제가 극단적인 ‘독점’상태라면, 국립대 10개를 ‘서울대화’하여 상황을 ‘과점’ 상태 정도로 완화하자는 것이다. 당장 독일이나 핀란드처럼 대학을 평준화하자는 기존의 대학통합네트워크론자들의 주장은 국민적 거부감에 직면하여 현실적인 개혁안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지위경쟁이론’에만 의존하여 대학의 ‘창조권력’에 주목하지 못했다. 미국식 캘리포니아 대학 체제는 단순히 상징자본의 공급을 확대한다는 차원에 그치지 않고, ‘연구중심대학’이 창출하는 지식기반의 경제적 가치를 통해 공간 및 직업적 병목현상까지 완화했다는 데에 진정한 의의가 있다. 대학의 사회적 기능으로서 ‘인적자본의 축적’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도 각 지방에 ‘서울대’라는 이름을 가진 연구중심대학 인프라를 설치해서, 궁극적으로 국토 전체를 미국 캘리포니아처럼 성공적인 모델로 만들어보자는 것이 저자 주장의 핵심이다. 지방대 통합은 인구감소 및 지방 사립대 소멸 위험 상황 속에서 이미 진행되고 있는데, 서울대를 여기에 동참시켜 대학 인프라 상향평준화의 모멘텀으로 삼으면 가장 좋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대안은 예리한 상황진단에 비해 뭉툭하고 공상적이다. 이전 저작에서 김종영이 보여준 그의 장기는 질적 연구자로서 인터뷰를 통해 ‘피부에 와 닿는’ 생활세계의 ‘두꺼운 묘사’를 해냈다는 데에 있는데, 이 책에서는 그런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독일이나 프랑스의 대학평준화 체제가 아닌 미국의 다원화된 대학체제를 이상적인 모델로 삼았다는 점에서 독특하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궁극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것은 ‘대학평준화’라는 점에서 저자의 입장 자체가 기존의 ‘대학통합네트워크’론과 어떻게 차별화되는 것인지 모호하다. 저자는 “국가는 상징자본의 중앙은행”이라는 부르디외의 멋진 비유를 들어, 국가가 상징자본의 ‘양적완화’를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장기적으로는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에 사립대도 동참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는데, 그렇다면 이것은 저자가 벤치마킹하자고 제안한 캘리포니아 대학 ‘과점’ 체제와는 상이한 것이다. 캘리포니아 대학체제를 ‘전 국토’에 적용한다면, 그것이 대학평준화와 무엇이 다른 건가?

게다가 그 평준화된 ‘서울대들’이 모두 미국의 대학들처럼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도 이해할 수 없다. 가령, “경상대와 경남과학기술대가 통합했듯이 부산의 국립대인 부산대와 부경대가 통합하여 정부가 3600억원의 추가 지원을 하고 이름을 서울대나 한국대로 바꾼다면 순식간에 연고대 수준의 대학이 된다”는 저자의 주장은 매우 성급한 예단인 것으로 보인다. 연구중심대학이 창출하는 인적자본은 ‘서울대’라는 브랜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수한 인재와 적극적인 산학협력의 축적을 통해 간신히 ‘기대’해볼 수 있는 것이다. 그것도 학부가 아니라 이공계열 대학원에서나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이공계열 산학협력은 그렇지 않아도 수요가 상존하기 때문에 이미 포항공대, 카이스트, UNIST, GIST 등의 성공적인 모델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예컨대 정부가 카이스트와 포스텍이 아니라, 새롭게 만들어질 10개의 서울대 ‘문과학부’에 막대한 재정지원을 할 유인과 정당성은 무엇인가?

저자는 또한 학부와 대학원을 세밀하게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 입시 자체는 학부입학까지의 문제이기 때문에 ‘지위경쟁이론’과 친화적이지만, 저자가 새롭게 강조하고 있는 연구중심대학의 기능은 ‘대학원 문제’인 만큼, 대학체제 개편의 문제라기보다 학문후속세대 양성 문제에 가깝다. 결국 ‘지위경쟁이론’과 ‘대학사회학의 기술기능론’은 한국에서는 종합이 어렵다. ‘학벌’의 개념이 ‘학부 학벌’로 제한되는 한국적인 상황을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법률가가 출세하는 역사가 깊은 한국에서는 로스쿨 문제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국제중 – 명문 특목/자사고 – 서울대 – 서울대 로스쿨”이 내 세대의 파워 엘리트가 밟고 있는 경로이다. 서울대가 10개가 된다고 한들, 지금의 ‘서울대 로스쿨’이 한국판 그랑제콜이 되지 말란 법이 있을까? 요즘 몇몇 대학생들은 학부과정 4년 내내 수험생처럼 "로스쿨 입시"에 매달린다. 저자가 특별히 프랑스의 허울 뿐인 대학 평준화 체제와 거리를 두고 있길래 이 문제도 덧붙여 본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자체는 시도해볼만 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저자가 기존의 대학통합네트워크론이 ‘최대주의적 접근’ 때문에 실패했다고 진단한 것을 떠올릴 때, 저자의 낙관은 어쨌든 과장이라는 점도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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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끄는 짐승들 - 동물해방과 장애해방
수나우라 테일러 지음, 이마즈 유리.장한길 옮김 / 오월의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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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균형 블로그


장애학은 손상(impairment)과 장애(disability)를 구별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손상이 임상적, 의료적 개념이라면, 장애는 사회적으로 구성된 개념이다. 장애학에서 장애란 치료되고 교정되어야 할 ‘생물학적 현상’이 아니고, 실천적으로 극복되어야 할 ‘사회적 구성물’이다. 여기서부터 장애학은 이미 다른 어떤 정치철학의 전통보다도 더 파격적이다. 장애학은 담론이나 이데올로기의 차원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생물학(몸)을 극복할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것(몸)’과 ‘정치적인 것’의 경계를 해체할 것을 요구하는 페미니즘의 정치학은 ‘장애학’의 수준에 이르러야 진정으로 그 급진적 면모를 다 드러내는 셈이다. 페미니즘이 자신의 논리의 일관성을 지킨다면 반드시 장애학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장애학’은 이런 저런 난잡한 논란에 휘말리며 국내에서는 사실상 그 정치적 생명력을 다한 것으로 보이는 ‘페미니즘’을 급진적으로 전유할 좋은 탈출구가 될 것이다. 최근 국내에 관련 책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는 것은 그런 면에서 바람직하다.

 

수나우라 테일러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장애해방과 동물해방을 연관 짓는 것이다. 그녀에 따르면 장애인 차별과 동물 차별은 모두 ‘인간중심주의(비장애중심주의)’로부터 연역된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에, 이에 반대하는 장애해방운동과 동물해방운동은 최소한 연대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현실에서 장애운동과 동물운동은 서로 충돌하는 아이러니를 흔히 노정한다. 장애운동은 장애인의 ‘인간성’을 강조하는 맥락에서 ‘우리는 개, 돼지가 아니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외친다. 동물운동 역시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 장애를 ‘착취’한다. 동물이 ‘인간과 충분히 닮은 정도의 인지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동물권 옹호의 흔한 논거이다(동물의 ‘쾌고감수능력’이나 ‘의식의 유무(신경전형성, neuro-typicallism)’ 문제는 동물에게 ‘의식’이 있으므로 동물을 ‘물건’대하듯 대해선 안 된다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이것은 암묵적으로 인지능력이 부족한 지적 장애인과 자폐아를 차별하는 것이다.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강력한 안티테제인 것처럼 여겨지는 두 운동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중심주의에 ‘의존하여’ 당사자들의 권익을 옹호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폭로된다. 이런 방식으로는 두 운동 모두 불완전하고 타자-배제적인 주장만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장애인과 동물의 교차성(intersectional)이다. 가축화된 동물은 많은 경우 ‘장애’를 가지고 있다. 더 많은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더 많은 계란을 낳기 위해, 더 많은 고기를 제공하기 위해 수많은 동물들이 강제로 신체를 개조 당하기 때문이다. 장애인들 역시 쉽게 ‘동물화’ 되곤 한다. 저자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 장애인들의 뒤뚱거리는 걸음이나 불완전한 신체가 동물에 빗대어져 조롱당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렇다면 동물윤리를 ‘불구화’하고, 장애인들이 ‘동물임을 주장’하는 것은 장애운동과 동물운동이 연대를 모색할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것이 보다 근본적으로 ‘인간중심주의’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의미의 ‘해방’을 쟁취할 길일 것이다.

 

이 책은 명징한 주장을 담고 있지 않다. 논증보다는 저자의 개인적인 일화와 감상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저자가 제시하는 비거니즘이나 돌봄윤리 같은 ‘대안’은 강렬한 문제의식에 비해 소박하고 식상하다. 그럼에도 이 책은 그야말로 ‘지축을 뒤흔드는’ 파괴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피터 싱어와 저자의 대담을 담은 12장이다. (이 대화는 거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속 대심문관만큼의 전율을 일으킨다 - 그리고 저자 수나우라 테일러의 화두는 다분히 ‘도스토예프스키적’이다. 이 경우 대심문관은 피터 싱어이고, 예수 역할은 테일러가 하고 있는 모양새가 되겠다) 장애인 당사자이기도 한 테일러에게 피터 싱어는 그의 장기인 ‘사고실험’을 변주하여 질문한다. ‘만약 2달러짜리 알약만으로(그만큼 간단하게) 당신이나 당신의 자녀의 장애가 완치될 수 있다면, 그 약을 먹지 않을 것인가?’ 이 질문은 곧 ‘장애’를 갖고 살아가는 것이 조금의 ‘좋음’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다. 테일러는 이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자신의 장애는 세계를 감각하는 방식을 다양화함으로써 세계에 대한 자신의 예술가적 인식에 ‘도움이 된다’고 밝힌다. 장애란 곧 다양성이고, 장애의 존재는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을 다양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라면 고통스러운 삶일지라도 그 나름 지속할(견딜) 가치가 있다.

 

나는 이 문제의식을 확장하여 ‘고통받는 삶은 지속되어도 좋은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당도했다. 장애문제란 곧 고통의 문제이다. 이 지점에서는 저자의 한계도 엿보인다. 강렬한 12장에 뒤이어 저자는 고통받는 동물들을 구출해내는 일의 당위성을 강변하는데, 이것은 결국 ‘고통받는 삶이 지속되어선 안 된다’는 공리주의적인 주장으로 회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자기분열은 이론과 실천을 구별 짓지 않고자 하는 ‘장애학’의 필연적인 귀결이다. 장애인의 삶이 ‘고통스럽다’는 ‘사실’과, 그런 삶이 ‘존재해도 좋다(혹은 존재해야 한다)’라는 ‘가치’의 문제는 동일선상에서 자기-완성적으로 제시되기 어렵다. 이 모든 것은 물질적 세계에 살아가면서도 고도의 의식세계를 지닌 인간이 부닥칠 수밖에 없는 근원적인 딜레마이다.

 

이 딜레마를(그리고 저자의 급진적인 문제의식을) 보다 잘 드러내기 위해 말기 암 환자의 삶을 예로 들어보자. 먼저, ‘암’은 장애인가, 손상인가부터 문제시된다. 우리는 암을 ‘손상(질병)’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기를 쓰고’ 이를 예방하거나 치료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 견뎌야 하는 환자들의 삶은 장애인의 고통스러운 삶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장애학의 관점에서라면 이런 삶은 (‘손상’이 아니라) ‘장애’의 차원에서 보다 넓게 사유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테일러는 우리가 암을 두려워하고, 제거하거나 예방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사실 자체를 ‘암환자에 대한 차별’이라고 보고 있는 셈이다. 암을 가지고 살아가는 ‘고통스러운 삶’은 제거되거나 지양되어야 할 것이 아니고 적극적으로 추구될 ‘가치 있는 삶’이다 – 이를 테면 이들 암 환자의 삶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을 다양화한다’.

 

‘장애’의 자리에 ‘질병’, ‘고통’, 혹은 ‘가난’과 같은 단어를 번갈아 대입해보면 장애학의 문제의식(또는 ‘인간중심주의의 극복’이라는 화두 자체)이 참으로 어렵고 묵직한 문제라는 사실을 반복해서 깨달을 수 있다. 이 책의 어떤 대목에서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듯이, 장애학의 종착점은 무정물인 ‘돌멩이의 존엄성’까지도 존중하는 수준의,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완전한 전복’ 그 자체가 될 것이다.

 

수나우라 테일러의 문제의식은 들뢰즈-가타리의 ‘동물 되기’나 크리스테바의 ‘abject’와 괴물의 미학, 또는 최근 소개되고 있는 ‘포스트 휴머니즘’(브뤼노 라투르, 로지 브라이도티)과 관련 지어 음미해볼 수 있을 것이다. 존재와 당위의 문제, 물질과 의식의 문제, 그리고 ‘손상’과 ‘장애’의 차이를 언어철학적으로 다루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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