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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의 탄생 - 포스트-포스트 시대의 지식 생산과 글쓰기
김성익 외 지음 / 돌베개 / 2022년 1월
평점 :
장기균형 블로그
대략 80년대에 출생했고, 90년대에 10대를 보낸, 2000년대 학번의, (이 책의 공저자 중 한 사람인) 안은별이 개념화한 바 있는 ‘IMF 키즈’ 세대에 속한 10명의 ‘인문학 연구자’들의 자기기술지(Auto-ethnography)로 기획된 책이다. 최근 대학에서는 분과별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는 시점인데, 이른바 ‘MZ 세대’인 내가 학교에서 마주할(하고 있는) ‘새로 부임한 젊은 교수’들이 대략 이 세대의 인물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방금 MZ 세대를 검색해보니 ‘MZ세대’는 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출생집단을 통칭하는 개념이라고 한다 – 교수님, 우리 같은 세대였어요!)
‘연구노동자의 자기기술지’에 가까운 글도 있었고 자신들의 연구관심에 대한 시론(試論)을 전개한 글도 있었다. 주목해야할 것은 양자 간의 연결고리이다. 생애의 어떤 국면이 이들을 ‘연구자’로 거듭나도록 했으며, 이들의 학술적 관심사가 각자의 유년기 및 청년기 경험과 어떤 관계를 갖는지가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다. ‘연구자’와 ‘연구대상’의 관계는 분리가능한 것인가? ‘연구’ 내지 ‘공부’가 단순히 직업을 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인식론적 실천이자 매혹적인 사회비판’(오혜진)이거나, ‘재미라는 종교’(김신식)일 수 있다면, 그것은 연구자의 공적, 사적 생애경로와 완전히 분리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은 대학의 ‘연구 행위’에 대한 나의 낭만적인 망상일 뿐이고, 가능하면 ‘전도유망하며’, ‘논문양산이 손쉽고’, ‘국가와 사회로부터의 수요가 상존하는’, ‘돈이 되는’ 분야를 선택하는 것이 연구’노동자’의 보다 합리적이고 영리한 판단인 것인가?
페미니즘(오혜진, 윤보라, 배주연), 경제인류학(이승철), 정치학(양명지), 영문학(김성익), 사회학(김정환)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는 이들의 연구주제는 넓은 의미의 ‘문화연구’에 포함시킬 수 있는 성격의 것들이다. 이들의 연구는 ‘데이터를 가공해서 통계를 돌리는 식’이 아니라, 문헌을 일일이 ‘읽어내며’ 한 땀 한 땀 ‘썰을 푸는’ 유형의 연구다. 그러니까 이들의 연구는 대량으로 ‘양산’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들이 생산해내는 지식이 국가나 사회에 ‘당장의’ ‘즉물적인’ 효용을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들은 자본주의 대학에서 가장 손쉽게 ‘구조조정’ 당할 수 있는 위험에 처한 취약한 존재이며, 자신들의 연구가 어떤 ‘효용’을 갖는가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 모든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대한민국에서 인문학 연구자가 되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고 물어보게 된다. (단, 공저자 중 이승철과 양명지는 각각 서울대학교 인류학과와 하와이대학교 사회학과의 전임교수로 자리를 잡았다)
젊은 연구자들답게 이들의 문제의식은 첨예하고 시의적이라서 이 책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연구주제들의 ‘아카이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미셸 푸코의 통치성 논의를 금융자본주의 및 신자유주의 거버넌스 분석에 접목시킨 이승철의 글과, 첨단 (자연)과학의 발전이 야기한 ‘물질적 세계로의 이행’으로 인해 ‘세계의 텍스트성’이 의심받기 시작한 상황 자체를 인문학이 처한 문제상황인 것으로 규정한 김성익의 글은 두고 두고 읽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