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슬픔을 훔칠게요 - 김현의 詩 처방전 ㅣ 시요일
김현 지음 / 창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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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어쩔수 없이 슬픈 사람이 된다. 누군가가 슬픔을 주입하지 않아도 등산을 하고 정상에서 야호를 외친 뒤 다시 내려와야만 하는 등반객처럼 결국 바닥으로 내려오고 만다.

p.84

우정이란 그의 집에 찾아온 슬픔을 내 집으로 불러들이는 거군요. 또한 우정이란 내 집으로 찾아온 기쁨을 그의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기도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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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을 쌓는다고 하니 우정이란 감정이 실제로 눈에 뵈는 가시적인 대상으로 느껴진다. 우리의 우정은 너무나도 작아보였는데 서로 고통스러울 때는 어마어마하게 커다랗게 보였고 너무나 크게 생각할 때는 티끌보다 작게 느껴졌다. 내 삶에서 우정이 전부였던 순간은 정말 짧았지만, 우정이 전혀 없다고 느낀 순간은 찰나도 없었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사랑만큼 우정도 깊어지길 원했고 사랑이 모조리 내 삶을 앗아갔다고 느꼈을 때 우정만이 내게 남았다고 믿고 싶었다.

아마도 이 책은 내게 작은 소음이라도 건네고 싶었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악조건 아래에서도 그래도 비벼볼만한 나무의 그루터기라도 있을거라는 희망, 콘트리트 틈을 비집고 기어코 싹을 틔우고 마는 들꽃의 애절한 생명력이 네 곁에 존재한다고 말해주고 싶었는 지도 모른다.

p. 118

말을 시원시원하게 해놓고 뒷일을 나 몰라라 하는 사람과는 두 번 다시 말하고 싶지 않지만, 하고 싶은 말을 잘하진 못해도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과는 언젠가 또 한번 말하고 싶어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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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많이 하고파 진다. 나이가 들면 내면에 쌓인 설움이 늘어나나 보다. 이야기하지 않으면 힘들고 지치고 서럽다. 혀끝에서 말이 휘돌고 얽힌다. 하고픈 말을 다하면 속 시원할지는 몰라도 내 시원함 덕분에 네 마음이 좀 차가워졌을거다. 내가 말을 많이 할수록 누군가에게는 쓰라리거나 아프거나 서로의 차이를 절실하게 경험하며 절망할 수도 있을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듣는 자의 모습으로 남기로 했다. 상대의 이야기를 들을 때 내 감정이 조금 더 따뜻해지길 바래서이고, 상대의 눈빛을 볼 때 나의 마음이 1도 정도 더 온기를 찾길 원해서 이기도 하다.

당신의 슬픔을 훔칠게요는 나를 조금 더 살아있게 만드는 책이다. 우울의 근원을 다독이고 싶게 만들었다. 한해의 시작에 이 책을 읽었으니, 한해가 마무리 될 때쯤 다시 읽어야겠다. 1년을 허투루 보냈다는 증명이 아니길, 시작과 종말을 같은 마음으로 마무리하길 원해서 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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