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은 희대 지성의 명언을 따르고 섬기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의 삶에서 자기 자신의 통찰력을 기르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인문학은 ‘앓는’ 것이 될 수 있다.(…)앓는다는 건 단지 고통의 차원이 아니다. 그 앓는 시간을 지나 우리는 자신과 세상을 더 깊고 투명하게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프롤로그 중에서)
평범한 일상 속에서, 단조로운 삶 가운데서 시 한 편을 떠올리거나 철학자의 사유가 생각나는 그런 순간, 간혹 있을지 모르겠다. 이 책의 저자는 평이한 일상 속에서, 소소한 사건 속에서 매 순간 인문학과의 마주침을 이야기한다. 목욕탕에 갔다가, 가요를 듣다가, 영화를 보다가, 소설을 읽다가, 엄마와 함께 잠들다가, 뉴스를 보다가, 시를 읽다가, 추억을 회상하다가, 드라마를 보며 훌쩍이다가 그녀는 인문학과 마주친다. 저자가 뜻하는 인문학이란 희대 지성들의 명언이나 공적을 익히고 섬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녹아 있는 인문학적 사유를 발견하고 해석하고 즐기고 통찰력을 기르는 과정임을 이야기한다. 아주 사적이고 지극히 소소한 일상을 통해서 말이다.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진리란 타인과의 진정한 마주침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 했다. 타인과의 마주침은 일어나기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자기 자신의 내면을 볼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을 타인에게 적절하게 표현할 줄 알아야 하고, 타인이 내보이는 기호들을 해석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며, 오해의 순간조차 인내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마주침이 일어나고, 둘 사이에서 진리가 만들어지고, 그 진리를 공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111-112쪽)
이 책의 즐거움은 철학자, 심리학자를 비롯한 인문학자들의 저서, 영화, 드라마, 시, 소설, 수필, 가요 등 다채로운 소재들을 만나는 데 있다. 특히나 엠마누엘 레비나스와 알랭 바디우를 만날 수 있어 반가웠고, 이들의 사유를 통해 일상에서 조우하는 타자와 그 타자와의 관계에 대한 성찰은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인문학이 빛을 발하는 아주 사적인 순간들'이란 이 책의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소소한 일상에서도 인문학은 끊임없이 빛을 발하고 있다. 빛은 길잡이다. 인문학이라는 빛은 삶의 길잡이가 되어주고 좀 더 성숙한 삶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책 속 활자에 붙들려 있는 학學은 죽은 빛이다. <모든 순간의 인문학>은 소박한 일상 속에서 생생하게 빛을 발하는 살아 있는 인문학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삶을 사유하고 통찰하는 지혜를 담백하고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다.
진실로, 모여서 공허하느니 혼자서 충만한 게 낫다.(…)고독은 관계 맺기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고독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혼자인 시간이 관계를 맺는 데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고독에 침잠해봐야 진정한 환대를 그리워하게 되고, 상대를 진심으로 환대하게 된다. 그러므로 고독도 능력이다.(…)자신을 홀로 둘 줄 알아야만 ‘뭔가’를 이룰 수 있다. (157-15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