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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의 베이커리 1 ㅣ 한밤중의 베이커리 1
오누마 노리코 지음, 김윤수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학교는 잡다한 품종의 새끼들이 난폭하게 내던져진 커다란 둥지다. 그 안에서 세상 물정 모르는 새끼들은 어울리고 놀고 배우면서 누군가를 확실하게 밀쳐 짓밟고 이유도 모른 채 지저귄다. 때로는 같은 병에 걸리고, 때로는 이단을 발견해서 공격하고, 또 때로는 동료 새끼를 집요하게 쪼고 괴롭히며 장난삼아 죽여 버린다. 노조미는 또 다른 생각도 한다. 혹은 세상 자체가 커다란 둥지인지도 몰라. 둥지 안에서는 서로 먹이를 빼앗고 장소를 빼앗아. 그게 바로 자란다는 것이고, 자라는 일에 지치거나 질리면 지는 거야. (47쪽)
밤 11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만 문을 여는 기이한 빵가게 ‘블랑제리 구레바야시’. 오누마 노리코의 <한밤중의 베이커리>는 이 빵가게를 배경으로 하나같이 사연 있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뻐꾸기 엄마로부터 버림 받은 채 학교에서는 따돌림을 당하는 노조미, 불의의 사고로 아내를 잃은 빵가게 주인 구레바야시, 구레바야시의 아내를 오랜 시간 연모한 제빵사 히로키, 순수함의 상징인 어린 고다마와 고다마의 대책 없는 엄마 오리에, 은둔형 외톨이로 사람을 엿보는 게 취미인 선한(?) 변태 마다라메, 여자로 태어났어야 했는데 어쩌다 남자로 태어나버린 게이 소피아 등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제각기 깊은 상처 하나씩을 껴안은 채 살아가고 있다. 엄마로부터 버림받고 세상 속으로 내동댕이쳐졌다고 생각하는 노조미가 바라보는 세상이란 더없이 차갑고 사나운, 한없이 두려운 세계이다.
히로키는 빵은 완벽한 존재라고 믿는다. 완벽한 배합과 완벽한 순서와 완벽한 기술로 완벽하게 본떠진다. 사람도 어딘지 모르게 그와 비슷하다. 다른 사람과 섞이고 형태를 바꾸어 숙성되고 개개인이 되어 간다. 다만 거기에는 슬프게도 완벽함이 빵만큼 필요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오히려 사람은 그 불완전함을 사랑하기도 하는 실로 성가신 생물이다. (264쪽)
이 책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에게 펼쳐진 세상 그리고 이 책 밖에 존재하고 있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두렵고 난폭한 세계를 마주하고 있다. 이타심이나 배려보다는 좀 더 이기적인 자세로, 나와 다른 것을 배척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이 난무한 세계 속에서 상처 입은 채 또 상처 입힌 채 살아가고 있다. 저자는 등장인물들과 얽혀 있는 사건들을 하나 둘 풀어내면서 이들이 안고 있는 깊은 상처와 이 상처들을 치유해 가는 과정을 담백하면서도 위트 있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부족하고 불완전한 상처투성이 인물들은 한밤중에 문을 여는 블랑제리 구레바야시를 들려 따뜻하고 달콤한 빵을 먹는다. 그리고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사람의 온기와 사랑을 통해 상처를 보듬고 치유해 간다. 저자 오누마 노리코는 <한밤중의 베이커리>를 통해 상처 하나 없는, 과오 하나 없는 완벽한 삶도, 완벽한 사람도 없다고 위로한다. 사람은 누구나 상처 하나씩, 허물 하나씩 짊어지고 살아가는 법이라고.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이며 그 불완전함을 사랑하는 것이 또한 사람이라고 말이다. 인간의 구원은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 필요한 게 아니라 따뜻한 빵 하나일 수도 있으며 귀 기울여주는 마음, 따스한 눈빛일 수도 있는 것이라고.
길가나 공원, 빵은 어디서든 먹을 수 있잖니. 마주할 식탁이 없어도, 누가 옆에 없어도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어. 맛난 빵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맛난 거란다. (7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