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곶의 찻집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샘터사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인간은 누구나 살아가는 동안 여러 가지 소중한 것을 잃지만, 또 그와 동시에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얻기도 하지요. 그 사실만 깨닫는다면, 그다음부턴 어떻게든 되게 마련이에요. (53쪽)

일찍이 불가에서 인생은 곧 고苦라고 했던가. 그러하기에 삶의 여정 가운데는 더없이 따스한 위로가 필요할지 모른다. 모리사와 아키오의 <무지개 곶의 찻집>은 여러 화자들과 여러 사건들을 통해 상처 입은 영혼들을 향한 위로와 좀 더 나은 내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희망에 관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아무도 오지 않을 것 같은 어느 외진 해안 절벽에 다다르면 엉성하지만 묘하게 따스하고 포근한 느낌이 감도는 작은 찻집이 사람들을 맞이한다. 사랑하는 아내이자 엄마를 떠나보낸 어린 딸과 젊은 도예가, 취업난에 절망하며 방황하는 청년, 사업에 실패하고 아내와 자식과도 이별한 채 도둑이 되어버린 칼갈이 장인, 사회에서 설 자리를 잃고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지 못한 채 바라보기만 하는 애달픈 중년의 사내.

 

그곳으로 이끌린 사람들은 하나같이 삶의 희망과 용기를 잃고 자기만의 깊은 상처를 안은 채 신음하고 있다. 그들 앞에 나타난 곶 찻집의 주인 에쓰코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세상에서 가장 정성스럽게 만든 커피와 각자에게 특별한 의미가 되어줄, 희망이 되어줄 음악을 선물하며 그들의 상처를 보듬고 그들의 영혼을 위로한다. 인생은 많은 것을 잃기도 하지만 또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만나게 되는 것이라고.

 

산다는 건, 기도하는 거예요.(…)인간은 말이죠, 언젠가 이렇게 되고 싶다는 이미지를 품고, 그걸 마음속으로 기도하는 동안에는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하지만 꿈과 희망을 다 잃고 더 이상 기도할 게 없다면, 자신도 모르게 잘못된 길로 가기도 하지요. (146쪽)

저자 모리사와 아키오의 문체는 지극히 소박하고 담담하다. 그럼에도 자칫 무미건조할 수 있을 이러한 문체가 마치 이슬을 머금은 잎사귀처럼 촉촉하고 싱싱하다. 또한 곳곳에 녹아 있는 많은 은유와 상징들이 읽는 이를 즐겁게 한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자마 <카페 ‘곶’ 여기서 좌회전>이라는 팻말이 느닷없이 나타나 발견한 이를 당황스럽게 만든다는 설정은 곧 인생이라는 고단한 긴 터널 가운데 때론 생각지도 못한 유쾌한 사건을, 소중한 인연을, 인생의 전환점을 만나게 됨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소제목으로 사용한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인생의 절기를 뜻한다. 행복의 두근두근 네 살의 노조미는 봄으로,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청년 겐은 여름으로, 다시 한 번 좌절을 딛고 일어설 쉰 살의 사내는 가을로,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다니는 겨울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주인공 에쓰코의 이야기가 담긴 마지막 챕터가 ‘여름’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아마 이 책을 읽은 모든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을 마지막 챕터에서의 에쓰코는 정황상 칠순이 넘은 노인이다. 더 이상 찻집을 운영하기도 힘들 만큼 노쇠해진 그녀는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녀가 그토록 간절히 기다렸던 무지개의 정체를, 무지개의 의미를 깨달은 후 다시 주방 앞에 서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만든다. 칠순이 넘은 에쓰코의 이야기를 ‘여름’에 담은 저자의 의도가 숭고하기까지 하다. 에쓰코는 그곳에서 여전히 상처 받은 이들의 영혼을 따스하게 어루만지며 위로할 것이다. 산다는 건 기도하는 것이며 희망을 버리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고 말이다.

 

과거를 그리워하는 건 자신이 살아온 여정을 받아들였다는 증거가 아닐까? 괴로웠던 일까지 포함하여 여태까지의 인생을 통째로 긍정하기 때문에 너희는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그 당시를 추억할 수 있는 거란다. 겹겹이 쌓아온 과거의 시간이 바로 지금의 너희니, 과거를 그리워한다는 것 자체가 자신을 긍정하고, 받아들이고,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해. (2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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