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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권 정치학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정배 옮김 / 대화출판사 / 1996년 11월
평점 :
절판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의 저서 <생명권 정치학>이 여타의 생태계 보존 관련서적이나 환경보호 관련서적과 차이를 둘 수 있는 이유는 생태계와 자연의 파괴의 심각성에만 머물지 않고 왜 자연을 그토록 함부로 대해왔는지에 대한 궤적과 원인 그리고 근거를 명확하게 제시하려 했다는 점이고, 바로 이러한 원인과 근거를 통해 단편적이고 근시안적인 해결책이 아닌 궁극적인 치유와 대안이 무엇인지를 모색하고자 했다는 점일 것이다. 또한 인간을 나무라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로써 지구라는 유기체와 상호공존, 상호의존하는 하나의 생명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오늘날의 인간 존재에도 관심을 기울인다는 사실이다. 리프킨이 이 책을 통해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근대 이후 인간이 추구하는 ‘안정성’이라는 개념은 결코 궁극적인 안정성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이 잘못된 안정성의 관념으로 인하여 인간은 물론 모든 생명체와 자연이 무너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이와 같은 안정성의 관념으로 인한 폐해들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생태학적 각성이 필요한데 이것이 바로 생명권 의식 곧 생명권 정치라는 사상이며 오늘날 생명권 정치 운동의 절박하고 확고한 필요성을 주장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안정(security)을 추구한다. 방법과 방식, 근거와 이유의 차이가 있을 뿐 어떤 형태로든 인간은 끈임 없이 안정을 갈망한다. 리프킨이 우선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고대와 중세 전반과는 다르게 중세 후기를 시작으로 근대 산업화 세계에 들어서면서 안정에 대한 인간의 사고가 자율성을 바탕으로 한 개인주의적이고 경제 중심적이며 물질 중심적으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즉 "오늘날 안정되었다는 것은 재정적으로 자율적인 것을 뜻하며 부(富)를 축적하는 것이 곧 안정이며 자율적인 존재로 나아가는 통과의례"로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재정적 자율성 곧 안정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연과 인간이 단지 수단과 도구로, 자원과 상품으로 전락했다는 것에 있다. 리프킨은 앞서 활동했던 그리고 근대주의 사고관 형성에 크게 기여한 데카르트(R. Descartes)나 존 로크(J. Locke)와 토마스 홉스(T. Hobbes)의 말들을 통해 자연과 인간이 어째서 도구와 상품으로 변모했는지에 대한 그 출발점을 되짚어본다. 데카르트는 “우리는 스스로 자연의 지배자와 소유자가 될 수 있다”고 선언했고 로크는 “완전히 자연에 내맡겨진 땅은 낭비”라고 주장했으며 홉스는 “인간의 노동도 수익으로 바뀔 수 있는 상품”이라고 사유했다. 이러한 서구 근대의 사고관을 전거로 하여 결국 모든 가치를 금전적 값어치로만 매겨지게 되었고, 돈으로 인간 자신의 안전성과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으며 모든 자연과 공유지, 공동체가 난파, 분리됨으로써 도구화, 사유화, 구획화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리프킨이 주목하는 것은 사유화와 구획화 즉 인클로저(encloser)의 개념이다. 자연과 공유지에 울타리를 쳐서 나누고 사유화 하는 것으로 인간과 자연을 분리하고 이렇게 분리된 자연은 수단과 상품으로 변형 되고, 인간은 자연과 공동체와의 관계에서 단절되어 인간 스스로도 수단이 되어버린 채 타인과의 경쟁을 통해 더 많은 자원을 얻고자 분투해야 하는 상황이 오늘날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근대주의의 사상들이 오늘날 자연과 인간에게 처해진 상황의 이론적 토대-이를테면 세계는 면밀히 작동하는 톱니바퀴와 같은 거대한 기계로 생각하게 되었고, 신은 훌륭하고 냉정한 기술자로 변모했다-가 되었다면 이 이론들을 토대로 혹은 이 이론들에 힘입어 민족국가와 다국적 기업들이 자연을 경계 짓고 상품화, 사유화하여 생산과 소비를 확대시킴으로써 오늘날의 환경 위기를 발생케 했고 인간의 노동력마저 상품으로 전락케 했다. 계몽주의라는 기치 아래 민족국가와 기업들의 상호 밀접한 공조관계는 전세계적인 인클로저 운동과 식민지 정복을 가능케 했고 자연에 울타리를 침으로써 자연을 사유화하고 상품화할 수 있었으며 인간 또한 자원이나 도구로 환원되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러한 민족국가와 기업들에 의해 ‘상처받은 인간’에 대한 성찰이다. 리프킨은 인적 자원도 소비되어 왔다고 밝히면서 “시민 위상의 급격한 변화는 지구를 탈자연화시키고 인간을 생산의 도구로 환원”시켰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21세기는 핵무기로 인하여 일반시민 즉 “비전투원이라는 개념이 무의미해졌으며 지구는 하나의 전장이 되었고 모든 인간 존재는 군사적 목표물로 정의”되어 버린 것이다. 인간의 노동이 하나의 상품으로, 돈으로 전락하고 리프킨이 말한 것처럼 인간이 생산의 도구로, 군사적 목표물로 환원되어버린 오늘날의 현실에 대해서 어떤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한다.
리프킨은 60년대 이후 기계주의적 태도, 기계적 의식에 반하는 치유 세대가 등장했다고 보면서 근대 시대를 지배해 왔던 안정성의 개념 곧, 세속적 풍요의 안정성에 도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치유 의식이란 정신과 육체의 분열을 치유하는 것으로 인간의 몸을 부활시키고 자연에 대한 우리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으로 경제적, 정치적 제도를 재구성하고 학문과 과학 기술의 방향성을 다시 설정하는 것이다. 근대 이후 기계론적인 관점으로 지구를 바라보았다면 치유 의식은 치구를 살아 있는 유기체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생태학적 각성은 모든 자연이 상호 연관되어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며 한 개체가 온전히 독립적이고 분리될 수 없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생명권 문화에서 뜻하는 안정성이란 유기적 공동체로의 참여가 목표라고 보면서 인간과 자연은 별개의 독립적인 관계가 아닌 인간 존재가 지구 존재의 일부임을 자각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지구와의 소속감, 일체감을 바탕으로 한 생명권 의식은 자연의 몸을 치유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인간은 “지구를 다시 성화(聖化)함으로써 인간 존재 또한 재성화”하고 생명권의 공간적 틀 속으로 재통합함으로써 기계론적 사고의 변화를 요구한다. 또한 지리권의 개념에서 생명권의 개념으로의 인식의 변화를 요구한다. 생명권이란 살아 있는 물질들의 영역으로서 모든 생명이 존재하고 있는 지구를 둘러싼 땅과 물과 공기의 피막이다. 일차원적인 지리권에서 이차원적인 생명권으로의 전환은 곧 이 생명권 안에서 존재하는 살아 있는 생명체와 지구의 모든 활동이 서로 상호 작용한다는 사실에 대한 인지의 바탕이 된다. 지구는 자기 조절을 하는 하나의 생명 유치체이며 생명의 존속을 가능케 하는 안정 상태 속에서 스스로를 유지하는 살아 있는 생물체이다. 바로 이러한 지구 유기체와 생명권 안에 존재하는 생명체간의 상호 작용의 과정 속에서 계속적인 공생 관계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리프킨의 위와 같은 주장들을 바탕으로 하나의 종합적인 틀로써 구성하고 집약한 것이 바로 생명권 정치학이라는 개념이다. 생명권 정치는 지속력 있는 경제 발전에 근거를 두고 새로운 국제 정치적 제도가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조망하고 보호하도록 고안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새로운 정치적 편성을 요구한다. 즉 구획화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지구 공유지를 개방하면서 지구를 하나의 유기체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국가나 다국적기업은 폭발적 경제 성장이 아닌 지속 가능한 발전을 지향하고, 민족 국가는 권력이나 경제적 이익을 맹렬히 추구하기 보다는 지구의 비무장화와 생명권적 의식을 바탕으로 한 “녹색운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또한 근본적인 에너지 보존 계획과 대체 에너지 전략을 시행하고 지구의 생태학적 안녕에 대한 국제적인 책임감을 공유함으로써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들은 공익적 가치뿐만 아니라 신성한 가치를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공리주의적 생태학과 대조적으로 영적 생태학(spiritual ecology)은 창조의 놀라움과 자연의 경외에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금까지의 기계적론적, 안정적 사고와는 다른 지구적이고 영적인 새로운 안정성으로 나아가는 길이 될 것이며 리프킨이 말하는 생명권 정치학의 핵심이자 진정한 전지구적 성화(聖化)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