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내게로 왔다 1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시가 내게로 왔다 1
김용택 지음 / 마음산책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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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서울에 살면서도 무슨 복福인지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개나리며 벚꽃이며 라일락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찬 기운을 털어낸 포근한 봄바람에 묻어오는 꽃내음은 잠시나마 도시의 소음과 거친 눈동자를 토닥여준다. 4월의 길목에서 만나게 되는 이 따사롭고 아름다운 시간이 찰나의 순간처럼 아쉽기만 하구나. 일 년 중 한 차례 찾아오는 봄의 향기처럼 인생의 길목에서 마주하게 되는 아름답고도 찬란한 순간은 아마도 나를 찾아온 시의 향취에 흠뻑 취하는 순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친구야, 왜 시인들은 인간의 외로움에 대해서 그토록 많은 시들을 써내려갔을까. 시인들이 외로움을 많이 타서일까 아니면 인간이란 본래가 외로운 존재이기 때문일까. 시인 정호승은 신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고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마을로 내려오고 종소리마저 외로워서 저 멀리까지 울려퍼지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라고,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정호승의 ‘수선화에게’ 中)이라고 냉정한 듯 몰아붙이는 이 시인은 사실, 우리들의 심연 속에 자리 잡은 서글픈 외로움을 그 누구보다 이해해주고 있으며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는 인간의 외로움을 따뜻한 마음으로 보듬어 주고 있다. 인생 어디쯤에선가 눈이 내리면 씩씩하게 눈길을 헤쳐 걸어가고 비가 내리면 담담하게 빗길 속으로 나아가라는 당부와 함께. 그래, 산다는 것은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는 것(신경림의 ‘갈대’ 中)임을 알고 있는 또한 알아주는 시인들의 시 한 편이 있어 인간이기에 짊어져야할 이 외로움이 사무치도록 쓸쓸하지만은 않구나.

친구야, 너에게 시가 어디서, 어떻게 찾아왔는지를 묻는다면 무어라 대답할까. 칠레의 시성詩聖 파블로 네루다는 모르겠다고, 도대체 어디서 왔는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다고 읊조린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느 날 시가 그를 부르며 찾아왔다는 것. 이 도무지 알 수 없는 존재와 대면하면서 그는 어렴풋이, 뭔지 모를 첫 줄을 써내려갔다. 그리고 그는 보았지. 풀리고 열린 하늘을, 휘감아도는 밤과 우주를 그리고 신비의 모습에 취한, 심연의 일부인 네루다 자신을 보았다(파블로 네루다의 ‘시’ 中). 그의 심장과 영혼은 그렇게 열렸고 네루다가 쓴 시는 지금도 우리의 영혼을 고동치게 한다. 시인 김용택은 저문 들길에 서서 무엇인가를 기다렸고 그러던 어느 날 시가 그에게로 찾아왔다. 저 깊은 산속에서, 그의 어두운 발등을 밝혀주는 환한 목소리로 시가 그를 불렀다. 나에게 시는 어디서, 어떻게 찾아왔을까. 어린 시절 아버지가 읊어주시던 김소월의 초원 중 어느 한 구절을 타고 날아들었을까. 네게 생일 선물로 받은 기형도의 시집 가운데서 나를 불러 세우는 시인의 목소리가 있었던 것일까. 알 수는 없지만 4월의 길목에서 어김없이 찾아오는 라일락 향기처럼 인생의 길목 어딘가에서 시의 향기를 만나게 된다. 시는 나에게 또한 너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그렇게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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