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밤 세계문학의 숲 4
바진 지음, 김하림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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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20세기 초 세계는 온통 전쟁과 증오, 가난과 배고픔, 슬픔과 고단함으로 가득한 세계였다. 중화사상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중국 역시 이 세계를 피해 가지 못했고 패배자의 입장에서, 피지배자의 입장에서 이 세계를 견뎌내야 했다. 예술은 고통 속에서 꽃 피운다고 했던가. 이 시대를 기점으로 중국의 3대 문호라 일컫는 루쉰과 라오서 그리고 <차가운 밤>을 남긴 바진의 문학작품들이 탄생하게 된다.


바진의 생애 마지막 소설 <차가운 밤>의 주인공 원쉬안은 성실하지만 가난하고 유순하지만 나약한 인물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공습경보에 따라 몸을 숨겨야 하고, 상사의 눈치를 보며 적은 월급도 감지덕지해야 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를 힘들게 하는 것은 그의 어머니와 아내 수성이다. 보수적이고 낡아버린 가부장제의 관습을 간직하고 지켜나가는 원쉬안의 어머니와 대학교육까지 받은 그의 아내 수성은 서로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또한 이해하지 않으려 한다. 바진은 고부간의 갈등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몇 천 년 간 이어져 온 중국의 오랜 구습과 그것을 수용치 않고 타파하려는 새로운 사상과의 갈등과 충돌을 그렸다. 이것이 <차가운 밤>의 첫 번째 테마이다. 

 

유약하기 그지없는 원쉬안은 그 사이에서 그저 슬퍼할 뿐 아들로서, 남편으로서 그 어떠한 역할도, 책무도 감당하지 못한 채 몸도 마음도 병들어 간다. 또한 그가 몸담고 있는 세상은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각박하고 피폐해지기만 할 뿐 그가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임신한 아내가 죽어갈 때조차 회사에서 일을 해야 했던 원쉬안의 친구를 통해서, 병든 몸을 이끌고 회사에 나가 자리를 지켜야 하는 원쉬안을 통해서 바진은 담담한 듯 그러나 처절하게 전쟁의 비참함을 이야기한다. 이것이 <차가운 밤>의 두 번째 테마이다.

 

원쉬안은 그의 아내 수성을 사랑했다. 그녀가 떠나지 않기를,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다정히 저 문을 넘어서서 돌아오기를 고대했지만 그녀는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아내 수성을 원망하지도 증오하지도 않았다. 원쉬안은 그저 미안할 뿐이었고 그녀를 사랑할 뿐이었다. 어느 덧 전쟁은 끝이 났고 일본의 항복으로 중국은 승전을 축하하는 경축행사와 승리의 축포가 터졌다. 그러나 이 축포는 중국의 서민들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전쟁은 끝이 났지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원쉬안에게는 사랑도 기쁨도 행복도 가족도 건강도 돌아오지 않았다. 원쉬안에게 세상은 여전히 차갑고 외로운 곳일 뿐이다. 이것이 <차가운 밤>의 세 번째 테마이자 바진의 <차가운 밤>이 더없이 차가운 밤이 되는 이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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