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노트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80가지 생각 코드 지식여행자 11
요네하라 마리 지음, 김석중 옮김 / 마음산책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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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마치 갈릴레이가 말한 것처럼 되어 있는 앞의 명문구는 전설로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인간이 자기 힘으로 도달한 신념을 협박 때문에 뒤집는 것은 불가능하며, 머리와 마음속까지 지배당하지는 않는다는 비유로도 쓰이고 있다. 그래서 이 전설에는 사람들을 격려하는 힘이 있다. (80쪽)
중학교 사회 과목 수업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선생님께서는 갈릴레이의 명언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갈릴레이의 제자들 혹은 후세에 사람들이 그의 비겁함을 변명하기 위해, 옹호하기 위해 만들어 낸 말이지 정말 그가 한 말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중학생이었던 당시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게 지어낸 이야기라니. 하긴 살벌하기 그지없는 종교재판을 받고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서 겨우 살아남은 갈릴레이가 정말로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했다면 재판 결과와는 상관없이 그 자리에서 도로 체포되어 신성모독죄는 물론 법정모독죄, 괘씸죄까지 적용되어 끔찍한 화형에 처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역사에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종교재판에서 지동설을 부인하고 풀려나는 순간 자신의 진술을 번복하고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진술하여 결국 화형에 처해졌다’라고 기록되었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허구임이 분명한 이 명언이 어째서 지금까지도 갈릴레오를 대표하는 명언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교양 노트>의 저자 요네하라 마리는 이에 대해 그런 무시무시한 상황 속에서 함부로 자신의 뜻을 표출할 수는 없었을 테지만 적어도 마음속으로는 아무리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곱씹고 또 곱씹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자신의 노력과 열정으로 확립한 신념이 억압과 협박으로 인하여 외부적으로는 굴복할지 몰라도 결코 머리와 마음속까지 지배당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갈릴레이의 이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사실이든 그렇지 않든 전설로 남아 있는 것이다. 지동설을 부인했던 갈릴레이를 과연 비겁한 겁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금은 구 사회주의 국가들의 수도에도 다국적 호텔 자본이 속속 진출해, 도쿄 한가운데에 있는 고급 호텔과 비교해도 손색없이 외양과 내실을 자랑하고 있다.(…)하지만 호텔 울타리를 벗어나 펼쳐지는 세계에 한 걸음이라도 발을 들이면, 너무나도 극명한 대비에 현기증이 날 것이다.(…)선진국 사람들은 피부로 느끼는 쾌적함과 편리함을 위해 얼마나 많은 자원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인가.(…)선진국은 딱 이 호텔처럼 개발도상국의 거대한 바다에 붕 떠 있는 고독한 섬 같다. (126쪽)
요네하라 마리는 아버지를 따라 러시아와 체코 등 동구권 나라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러시아어를 전공하고 러시아어 통역사가 되어 역시 여러 나라를 다니며 많은 경험과 이야기를 축적했다. 사회주의자였던 아버지와 동구권 나라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저자는 무너져가는 사회주의 국가들을 보며 일종의 회환과 아련함을 느낀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회주의 국가가 사라진 것에 대한 회환이 아니라 유년시절의 세계가, 추억의 보금자리가 사라진 것에 대한 아련함일 것이다. 그리고 구 사회주의 국가들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들 역시 그들만의 소박함과 아름다움이 밀려드는 자본주의에 의해 상처받는 모습들을 보며 느껴지는 아픔들을 이야기한다. 흔히들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 사이의 너무나 깊은 갭, 선진국이 그렇지 않은 나라들에게 행하는 21세기의 착취와 상처들. 글 곳곳에서 상처받고 사라져가는 유년시절의 보금자리들을 돌아보며 느껴지는 안타까움과 아련함이 묻어난다.


“별은 언제 어느 때에도 하늘에서 사라지지 않는다고, 그 남자는 말했다. 낮별은 밤별보다도 밝고 아름다운데, 태양의 빛에 가려져 영원히 하늘에서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없다.(…)그날 밤부터였다. ‘낮별을 보고 싶다!’ 하는 강렬한 소망에 사로잡힌 것은.” 현실에 존재하는데도,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반대로 압도적인 현실로 인식되던 것이 그저 껍데기에 불과한 경우도 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의 뒤편에 놓인, 틀림없는 또 하나의 현실, ‘낮별’은 그러한 모든 것들에 대한 비유였다. (16쪽)
요네하라 마리는 참 많은 글들을 썼고 많은 에세이를 출간했다. 그녀의 글들은 유쾌하지만 깊이가 있고, 지적이지만 재미있고, 소소한 이야기들이지만 그녀만의 시각으로 다르게 보기를 통해 특별해지고, 블랙유머를 즐기고 냉소적이지만 그 안에 따뜻함이 담겨 있다. 2006년, 요네하라 마리는 56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난소암으로 사망하기 직전까지 그녀는 책을 놓지 않았고 끈임 없이 글을 썼다. 현실에 존재하는데도 눈에 보이지 않는, 실상은 밤별보다도 더 밝은 낮에 뜨는 ‘낮별’의 이야기를 통해 그녀 자신이 글을 쓸 때, 다른 이들이 미처 보지 못했던, 깨닫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태양의 빛에 가려져 영원히 하늘에서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없는 낮별을 발견해 내고자 했던 요네하라 마리. 별은 어떤 순간에도 하늘에서 사라지지 않고, 보이지 않지만 사실은 너무나 밝게 빛나는 낮별을 요네하라 마리는 글을 통해 그 존재 또한 하나의 현실이며 실재임을 알려주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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