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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지구인 플래닛 워커 - 22년간의 도보여행, 17년간의 침묵여행
존 프란시스 지음, 안진이 옮김 / 살림 / 2008년 9월
평점 :
2007년 12월 7일 서해안 태안군은 지옥으로 변했다. 태안 앞바다에서 유조선 허베이스피릿호와 해상 크레인이 충돌하여 대량의 기름이 유출되었고 이는 종전까지 한국 해상의 기름유출 사고 가운데 최대 규모로 알려진 시프린스호 사건보다 3배 많은 기름이었다. 유출된 기름으로 형성된 시커먼 기름띠는 사고 당일 만리포와 모항 등으로 유입되었고 사흘 후에는 가로림만 입구와 천수만 입구까지 확산되었으며 기름띠는 안면도까지 유입되었다. 기름이 굳어버린 덩어리 일명 타르 볼은 대한민국 해안 전역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되었고 한 해을 넘긴 2008년 1월에는 전라남도 진도와 해남 그리고 제주도 해안까지 퍼진 것으로 보고되었다. 태안과 서산, 당진군 등 6개 지역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었고 60만 명에 달하는 자원봉사자들은 태안으로 향했다. 그 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고, 어떤 것을 느꼈었는가. 그리고 내 삶은 과연 이 엄청난 재앙 앞에서 생각하고 반성하고 변화했는가. 아니,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현장에서의 엄청난 기름 냄새와 추위와 분노와 짜증으로 점철되었던 기억은 지금의 내 자신을 변화시키지도, 고무시키지도 못했다. 부끄럽게도.
1971년 1월 1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만에서 발생한 기름유출 사고는 한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플래닛 워커>의 저자 존 프란시스는 해안으로 밀려들어오는 기름과 입과 폐로 타르를 들이마신 채 시커멓게 죽어가는 새와 물고기와 바다표범의 모습을 보면서 끔찍하네, 조심해야겠다, 바보 같은 인간들을 운운하며 분노한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단순하게 살아야 한다, 그리고 더 이상 기름을 사용해야 하는 자동차를 타지 않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현대 사회에서 그것도 아메리카라는 그 엄청나게 넓은 땅덩어리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자동차를 타지 않겠다는 것은 아, 자동차를 타지 않는군요가 아니라 일종의 사회와의 단절을 뜻하는 것이며 철저한 비주류의 길이자 아웃사이더가 되는 것이고 좋게 표현하면 은둔자가 되는 것이고 실질적으로 표현하자면 외톨이, 낙오자 혹은 사회로부터 등한시되는 외골수의 고집스러운 사회운동가가 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실제로, 차를 타지 않는 그에게 조롱과 비난의 화살이 꽂혔고-아마, 나 역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남들이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기 위한 퍼포먼스가 아니냐는 비난을 받아야했다. 그는 사람들과의 논쟁이 무의미함을 느꼈고 그의 입마저 닫아버리게 된다. 프란시스는 17년을 그렇게 오로지 도보와 침묵으로 사는 삶을 선택했다. 도대체 이러한 삶이 무엇을 의미하며 그 지향점이 어디란 말인가. 그저 한 사람이 차를 타지 않고 침묵한다는 행위가 무엇을 그다지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인가.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자신의 삶이 달라졌다고. 도보와 침묵의 삶을 선택한 순간 자신은 순례자가 되었고, 자신의 이러한 행위가 환경에 대한 일말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자연과 생태계와 이 대지를 돌보고자 하는 인간의 책무를 깨닫게 하고자 자신의 신념대로 노력한 것이라고 말이다. 나 혼자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가 아니라 나 혼자만이라도 인간이 만들어 낸 병폐를 고쳐보고자 노력하는 해결책으로써 선택한 행위였고, 잃어버린 것을 찾아 뒤로 되돌아가는 동시에 새로운 것을 찾으려고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고백한다. 그는 그렇게 미국 전역의 해안과 도시와 사막과 평원을 순례한다. 밴조를 연주하면서.
17년간의 침묵의 서약을 끝내면서 프란시스는 이제 환경을 위해 입을 열었다. 비영리교육기관을 열어 순례라는 개념을 기반으로 환경과 생태계 보전, 평화를 위한 교육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바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플래닛워커’는 이렇게 창설되었다. 그의 행위를 두고 옳고 그름의 판단을 하기 이전에 혹은 실용성과 비실용성을 논하기 이전에 프란시스의 순례자의 삶과 침묵의 서약이 지니고 있는 그 의미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자연은 인간 없이는 존재하지만-아니 오히려 인간이 없다면 better! 이라고 외치겠지만-인간은 자연 없이는 존재가 불가능하다. 그의 논문에서처럼 지금 인류의 모습이 어떠하며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에 관한 대답은 이제 전인류의 과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으며 아름다운 지구인이 되기 위해 내 자신 스스로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