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 - 정태남의 유럽 문화 기행
정태남 글.사진 / 마로니에북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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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의 교양 과목 하나가 문득 생각난다. 아마도 그 과목의 과목명이 ‘서양음악의 역사’였던 것 같은데 가벼운 마음으로 선택했던 교양 과목 하나가 그 학기 최고의 복병으로 등장하여 학기 내내 나를 괴롭히고 천대하고 멸시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황당무계한 음악용어들과 중세 이후로는 기보조차 하지 않는 고대의 악보들, 르네상스 이전 작곡가들의 생소한 이름들과 음악의 제목들. 그리고 서양음악이라고 하면 독일이 전부인 줄 알았던 나에게 “천만해, 서양음악이 아닌 서양음악의 ‘역사’를 공부하려면 서양의 문화를 알아야 하고 그러려면 기독교 문화를 이해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로마를 알아야 하고 라틴어 정도는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라는 교수의 청천벽력 같은 발언은 이제 과목 취소조차 할 수 없는 시점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결국 팔자에도 없던 고대 악보 해독(?)하기와 라틴어 읽기, 더불어 로마라는 나라를 배워가면서 한 가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던 것은 로마라는 나라 앞에는 “유구한, 장대한 그러나 과격한, 잔인한 하지만 찬란한 역사를 가진”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주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바로 이 로마를 저자는 제3자의 마음과 건축가의 눈으로 캄피돌리오 광장, 콜로세움, 트레비 분수, 포폴로 광장, 판테온, 베드로 대성당 등을 산책하며 글과 카메라에 담아낸다. 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로.



<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의 저자는 이 책의 첫 번째 챕터에서 과거 로마의 위상을 단 두 음절로 정의한다. 세계의 머리. 물론 저자가 만들어 낸 말은 아니지만 혹자는 이러한 표현을 차용한 것에 대해 굴절된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비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로마라는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조금만 살펴보거나 혹은 이 책의 덮을 때쯤이면 세계의 머리는 아닐지언정 과연 과거 유럽의 머리였음에는 분명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지 않을까. 언젠가 로마에 가게 된다면 반드시 가보고 싶은 곳이 바로 트레비 광장이다. 그리고 그 트레비 광장 전면에 세워져 있는 트레비 분수. 교통의 혼잡스러움과 소음을 헤치고 베네치아 광장 근처의 어느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면 어디선가 아련히 물소리가 들여온다고 한다. 마치 도시가 아닌 골 깊은 자연 어딘가로 인도받는 느낌을 받으며 그 물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갑자기 확 트인 광장이 눈 앞에 펼쳐지고 어마어마한 크기와 규모의 트레비 분수가 전면에 등장한다.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 낸 이 엄청난 분수는 과거 로마를 중심으로 모여들던 세계 각국의 사람들의 목을 축이는 역할을 했다는데 중요한 것은 로마의 수로가 얼마나 발달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주는 건축물이자 과히 세계의 머리였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상징물이라는 사실이다. 이 분수에 동전을 한 번 던지면 다시 로마를 찾게 되고, 동전을 두 번 던지면 사랑을 찾게 된다는 전설을 가진 트레비 분수에는 동전이 그득하다. 트레비 광장을 비롯한 콜로세움과, 포폴로 광장, 판테온, 베드로 대성당 모두 규모의 웅장함과 장구한 역사로 그리고 너무나 찬란한 아름다움으로 인간을 압도한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내가 정말 로마에 압도당한 것은 규모와 크기 때문이 아니었다. 로마의 심장, 포로 로마노에 가면 로마의 영웅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바로 율리우스 카이사르. 줄리어스 시저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그의 신전과 동상은 로마의 중심 포로 로마노에 세워져 있다. 카이사르는 영웅이었고 로마 시민들로부터 존경 받았지만 독재자였고 그 만큼 적도 많았다. 결국 그가 신임했던 브루투스에게 암살당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가 화장된 곳에 세워진 그의 신전 또한 오랜 세월의 흐름 속에서 폐허로 변해 그 유적지는 참으로 고적하고 쓸쓸하지만 지금까지도 누군가 찾아와 폐허로 변해 버린 카이사르의 화장터 위에 꽃을 두고 간다. 로마의 그 으리으리하고 엄청난 건물들과 유적지들 가운데 굳이 이런 곳을 손꼽는 이유는 뭘까. 그건 아마도 눈에 보이는 화려함과 웅장함보다는 로마인들의 그 대단한 자긍심에 주목하라는 것이리라. 자신들의 문화를 사랑하고 선조들의 위대함을 되새기면서 로마의 역사와 문화를 살피고 지켜나가는 로마인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Rome이라는 단어 그 자체에 대한 무궁한 자긍심. 바로 로마인들의 이러한 자부심과 자긍심이 오늘날의 로마를 계속해서 보전하고 지켜나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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